완벽주의를 타파합시다
고3 엄마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건 아이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자꾸 커져서다. 쉽게 채워지지 않아서다. "아들, 잘했어! 그동안 애썼는데 결과도 좋아서 감사하다! 고생 많았어." 아이가 지난 5월에 치른 시험 결과를 말해주자마자 엄마 입에선 칭찬과 감사가 쏟아진다. 동시에 머릿속에는 입 밖에 차마 내뱉지 못할 말이 따라붙는다. '음, 그때 모의고사 문제 다 풀었으면 A+도 가능했을 텐데. 계획을 촘촘히 짜고 그대로 했으면 어땠을까.' 칭찬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으면 좋으련만, 나는 자주 뒷말을 생각한다. "잘했어. 그런데…" 그 말이 문제다. 늘 뒤따라 붙는 그 말.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고마워. 당신 덕분에 내 일이 덜었어요."라고 말한 후 3초 후 한 마디를 더 얹는다. "다음엔 싱크대 주변 물기를 좀 털어줘요." 곧이곧대로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는 잘해 낸 일보다 틈이 생겨 완벽하지 못한 상황에 입을 연다. 남편 표정이 달갑지 않다.
비단 가족에게뿐이랴. 가장 많이 지적하고 평가하고 고치려 드는 건 나 자신. 일의 시작이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노트북을 켜기까지 뜸 들이는데 하세월이다. 글 한 줄이 나오기까지 머릿속에선 이미 수십 줄이 써졌다 지워진다. 추운 겨울, 야외에서 꽁꽁 언 자동차 같아서 엔진이 예열되기까지 인내심이 필요하다. 스스로 들들 볶는다. '언제 출발할 건데?!!' 일단 시작하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기,라는 방법이 SNS를 떠돌지만 그건 듣기 좋을 뿐, 진정한 완벽주의자에겐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완벽주의 성향이 다 부정적인 건 아니다. 꼼꼼하고 디테일에 강하다. 책임감 있고 신뢰를 준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높은 기준을 유지한다. 따라서 맡은 일의 완성도는 훌륭하다. 현대사회가, 특히 과도한 경쟁 속에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선 칭찬받는 덕목이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는 자신을 갉아먹는다. 지나친 자기 검열 탓에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기 쉽다. 끝없이 수정하고 미루면서 완성보다 지연되거나 마감에 쫓겨 서두르는 일이 잦다. 결과에 집착하다 보니 과정에서 누리는 즐거움과 경험의 기쁨을 놓치곤 한다. 그래서 자주 스스로 되뇐다. “이렇게 하면 더 좋았을 텐데..."
후회의 정체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게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 탓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도 존재한다. 완벽해야 인정받는다는 믿음도 있다. 결국 완벽주의자는 결과를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비판' 거리로 받아들인다. 일을 마친 후에도 마음이 끝없이 일로 붙들린다.
안다. 왜 그리 피곤하게 사냐고 하는 말도 많이 듣는다. 사람에겐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단점은 고치기가 어렵다. 내가 가진 단점 중 하나가 완벽주의여서 도무지 쉽게 떼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연습 중이다. 완벽을 생각지도 말고 '충분함'을 위해 노력하기. 일을 마친 후에 “이만하면 충분히 괜찮아. 잘했어"라며 오른손을 들어 왼쪽 어깨를 도닥인다. "이건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야. 어떻게 이보다 더 잘할 수 있겠어? 잘했어!" 진심으로 수긍하지 못할지라도, 머리를 비운 채, 있는 힘껏 외친다. 누군가 들으면 오그라들 말이라 주로 홀로 있는 차 안에서, 방 안에서 한다.
"왜 그랬지?" 후회가 올라올 때 하는 말을 바꾼다. "좋아, 다음엔 이렇게 해 보는 거야." 과거의 나를 비난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래의 나를 준비시키는 교훈으로 삼는다. 그러기 위해 적어둔다. 잊어버리고 같은 아쉬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이럴 걸 그랬어.' 대신 '다음에 이렇게 하자'로 바꾸면 자책 가득한 후회가 양질의 셀프 피드백으로 달라진다.
실수해도 된다. 실수하면 어떤가. 실수도 내 일부라고 받아들인다. 쿨하게. 좀 부족하고 못 하면 어떠한가. 어찌 인간이 완벽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불가능하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 완벽할 순 없다! 그 모습까지 품는 태도는 얼마나 성숙한가. 다만 이 멋진 말을 나 자신에 적용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압박감을 털어내고 좁은 틀에서 나 자신을 꺼내주는 시간이.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가벼워진 나 자신을 발견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