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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앞두고 글을 쓸 수 없을 때

by 오르

오늘은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을 소개해볼까 해요. 저흰 매주 글 한 편을 쓰고 온라인으로 모여 피드백을 나눕니다. 글쓰기 마감은 화요일 오전 10시. 이 시간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쫄깃쫄깃해집니다. 리더인 저는 멤버들의 글이 올라오기를 노심초사하며 기다리죠. 물론 저 역시 외줄 타듯 간질간질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페널티가 있어요. 내가 페널티를 이행하는 건 상관없는데 이게 '연대 책임제'여서 한 사람이라도 글을 제시간에 올리지 못하면 모두가 페널티를 나눠서 감당해야 해요. 멤버들은 다른 글벗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씁니다.


'마감'은 글쓰기를 놓지 않기 위해 만든 약속입니다. 계속 쓰기로 결정했으니 마땅히 지키려 애씁니다. 숙제를 미리 해두면 마음 편하다는 건 초등학생도 알 거예요. 하지만 이래저래 세상 사느라 바쁜 어른들은 일주일에 글 하나 쓰는 게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글을 쓰지 못할 이유, 써지지 않을 이유를 이겨내느라 바쁘거든요. 째깍째깍 시곗바늘은 움직이는데 손가락은 부동자세입니다. 머릿속은 하얗습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갑갑합니다.


이 모임은 4년째 진행 중입니다. 3년 넘게 함께 한 성실한 멤버들이 대부분입니다. 글쓰기 기초부터 배워서 매주 글 한 편씩 꾸준히 써온 터라 결코 글을 못 쓰지 않습니다. '좋은 글은 어떠하다'는 걸 알고 있고, 자신의 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오히려 글 쓰는 게 어려워질 뿐입니다. 어떤 주제든 자신만의 시각으로 기본 이상의 글을 거뜬히 쓸 수 있지만 대충 쓰고 싶지 않은 욕심이 큽니다.


잘 쓰고 싶다는 고민은 쓸 게 없다는 고충을 만들어냅니다. 사실 우린 무엇이든 쓸 수 있어요. 아무거나 써도 상관없어요. 가장 쉬운 건 '내 이야기'입니다. 요즘 일어나는 일들, 주변 사람들, 머릿속을 사로잡은 고민을 쓰면 됩니다. 어제 일어난 일 가운데 기억에 남는 걸 쓸 수도 있어요. 특별한 게 아니어도 의미를 부여하면 멋진 글감이죠. 무더위에 밥 해 먹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도 성스러운지 쓴다면 남은 여름 가스불 앞에서 마냥 좌절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조금만 시간을 들여 생각한다면 가능한 일이죠.


요즘 저희 모임에서 단연 인기 있는 주제는 직장 이야기입니다. '반장 일지'라는 제목으로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고 있는 글벗이 있는데요. 흥미진진합니다.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현장에 얼마나 에피소드가 많겠어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이야깃거리가 샘솟습니다.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어찌나 생생한지 허가받은 직원들만 출입이 가능한 생산 현장에 초대받는 느낌이에요. 색다른 직업 세계의 이면을 속속들이 볼 수 있어 무척 재밌습니다.


단역 배우 스토리를 쓰는 분도 있어요. 태권도 유단자에다가 박사 학위까지 따고 대학 출강하던 중년 여성은 어느 날 배우로 새로운 꿈을 꿉니다. 실제 연기를 배우고 오디션을 거쳐 2년 사이 영화와 드라마 여러 편에 출연했어요. 단역 배우로 촬영 현장에서 겪는 수많은 사건이 매주 글로 등장합니다. 유명 배우들과 촬영하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들을 수 있어요. 단역 배우로서 겪는 어려움이 왜 없겠어요. 그럴 때마다 글감도 쌓입니다. 현장에서 대기하면서 펜을 들고 끄적였더니 동료 배우가 신기하게 보더래요. 글 쓰는 단역 배우, 얼마나 멋진가요.


삶의 활력을 주는 취미도 훌륭한 글감이에요. 탁구에 꽂힌 직장인은 매주 탁구 이야기를 씁니다. 탁구가 그리 신나는 스포츠였나, 아직도 탁구를 치는 사람이 있나,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저희도 그랬거든요. 그녀가 수년째 초보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괴감이 들 때마다 우리 글벗들은 피드백으로 응원합니다. 글 실력이 나날이 늘어나는 만큼 그녀의 탁구 실력도 나날이 성장해서 언젠가 '탁구 여신'이 될 거라고 저흰 확신하고 있어요. 덕분에 멤버들 모두 탁구에 대한 상식이 두둑하게 쌓였습니다.


일상 이야기를 담백하게 적기도 해요. 좋아하는 빵집, 업무 고충, 버킷리스트, 연애 스토리까지 두루두루 글에 등장합니다. 글이 일상이고 일상이 글로 표현되는 바람직한 경우죠. 누구나 겪는 사소하고 평범한 일이지만 안테나를 세우고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만 쓸 수 있는 글이어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배우고 깨닫는 게 있어요. 같은 하루라도 누구에게는 풍성한, 누구에게는 빈약한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다양한 이유와 변명, 핑계가 도사리고 있지만 어찌 됐든 글을 씁니다. 쓰는 일이 얼마나 스스로 유익한 일인지 알기에 일단 쓰기로 마음먹었고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정했으니까요. 한두 번 마감을 어기고 손을 스리슬쩍 놓아버리면 다시 잡기 힘든 게 글쓰기입니다. 사실 이 글은 화요일 오전, 마감 한 시간 전에 겨우 주운 아이디어로 미친 듯이 썼습니다. 쓸 게 없어서, 아니 쓸 법한 글감으로는 쓰기 싫어서 밤새 몸부림을 친 끝에 겨우 썼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쓸 게 없다면 이렇게 주변의 이야기를 써 보면 되겠구나. 글쓰기 모임과 멤버들을 떠올리면서 신나게 썼거든요!


가끔은 내 생각과 고민을 드러내기 부담스러울 때가 있잖아요. 글을 쓰고 싶고 글을 써야 하지만, '나'를 쓰고 싶진 않을 때요. 그럴 땐 익숙해서 공기 같은 것들, 편해서 감흥이 없던 것들,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것들에 눈을 돌려보세요. 일상을 재발견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글벗들에겐 이 글에 담긴 자신들의 이야기가 소소한 즐거움이 됐구요. 쓸 게 없어 아득한 분들에게 혹시 조금이라도 힌트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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