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근 6년간 내 마음속은 이 일로 인해 온전히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어디서든 들고 다니는 돌맹이처럼 어쩔 때는 조약돌처럼 가볍게, 가끔은 시지프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의 거대한 바위처럼 내 마음 묵직하게 어디 한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돌은 작아지거나 가벼워지긴 하나 결코 없어지지 않았고 난 어디서든 그 돌을 들고 다닌다. 그리고 이 느낌은 내 주변 가족들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남에 있어서 그 일을 예상해서 준비한 뒤 맞이하는 사람은 드물듯이 나 또한 이 일에 대해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였고 사실 6년 차인 지금도 100% 현실 자각 했다고 말은 못하겠다. 조금은 익숙해졌을 뿐, 늘 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암환자의 가족이 된 지 6년차, 지난 6년을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여정이었다. 원래 인생이란 '업앤 다운(up&down)',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라는데 이 말은 그 어떤 여정에도 적용되는 말 같다. 암환자 본인이 아닌 암환자 가족으로서 사는 것은 분명 암환자 본인이 겪는 끔찍한 고통, 기약 없는 기다림의 고통, 삶을 송두리채 흔들어버리고 파괴해버리는 고통에 비해서는 아무 것 아니다. 그 점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난 6년 동안 쉽사리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아픔을 공유하기 쉽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아닌 당사자가 제일 고통스러우니.
나는 나로서밖에 안 살아봤고, 죽었다 깨나도 당사자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내 삶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다 책임지고 살아가야 하므로. 내 아픔은 내가 치유해가며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가며 살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또 이런 내 삶을 알게 되면서 힘을 얻을 수도 있는 많은 암환우 가족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암와 암환우에 대한 책과 논문 그 외 매체들은 쏟아지듯 많다. 하지만 생각보다 암환자의 가족들을 위한 지침서, 책, 영상은 많지 않다.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혼란스러우면 기댈 수 있는 외부의 매개체들이 별로 없어 외롭게 이겨낸 경험이 쌓여갔다. 암은, 암환자는 암환자대로 암환자의 가족은 가족대로 철저하게 외롭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 더 무섭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난 이른 나이에 빨리 알게 된 점들이 많다. 그 점들이 내가 살면서, 살아가면서 나를 지탱해줄 것이며 삶의 수많은 굴곡들을 이겨낼 수 있는 기둥이 되리라 믿게 됐다. 어떤 일이든 10의 10이 다 나쁜 점 밖에 없는 것이 아니더라. 10의 1이라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점들이 존재하더라. 그러므로 앞으로의 내 글이 절대 100% 어둠으로 가득차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지난 6년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 하나하나가 뜻깊었고 영화 같았기에 이 이야기들을 공유하면서 우리 가족, 나의 20대의 초중반의 성장을 공유해보려 한다. 부디 이 글이 한국 200만 암환자와 그 보다 더 많을 암환우 분들의 가족분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힘이 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암환자를 떠올리면 뭐가 생각나는가? 반복적인 항암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져 민머리가 된 머리, 창백하고 푸석푸석한 안색과 피부, 독한 항암으로 인해 끊임없이 구토하는 모습 등등 사회에서 예상하고 알고 있는 암환자의 모습은 대부분 꽤 우울하고 암울하다.
약자를 바라보고 느끼는 그 안타까움, 본능적으로 인간이 느끼는 측은지심으로 인해 사람들은 암환자가 주변에 없더라도, 가족 중에 크게 아픈 사람이 없더라도 그 존재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같이 슬퍼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나도, 우리 가족도 그렇게 생각하던 한국의 수많은 서민 중 한 명이었다.
최근에 친구와 함께 당일치기로 울산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 실내 여행지를 찾고 있었던 우리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울산문예회관 상설 전시실로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독립운동가들이 살아생전 써왔던 모든 글들을 모은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이 있었다.
현애살구 칠언구. '지식을 사용할 때가 되면 독서가 적은 것을 한탄하고 일을 겪어보지 않고는 그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막상 천천히 읽고 감미해보면 크게 와 닿는 문장이었다.
이 김구선생님의 말씀을 내 인생에 적용해보자면 난 절대, 내가 암환자의 가족이 될 것이라 상상을 못했다. 하지만 2017년 7월,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인 우리 엄마가 암환자임을 알게 됐다. 그것도 이름도 생소한 난소암 3기. 부인암 중에 발견되기가 쉽지 않고 발견되더라도 보통 3~4기에 발견되는 암이며 5년 이내 생존률이 50%채 되지 않는 무서운 암이다. 당시 엄마의 나이는 51세였고 난 20살, 동생은 18살이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