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첫 인상'을 만들기 위하여
여행 혹은 맛집 목적지 설정을 하려는데 SNS 후기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때, 우리는 "뺑뺑이 돈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무작정 두 발로 동네 탐색에 나서는 것이다. 이 때 감정의 안테나를 한껏 세워 '끌린다' 싶으면 후보로 점찍어뒀다가 그 날의 컨디션, 기분, 풍기는 아우라, 후각 정보, 드나드는 손님의 표정 등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목적지를 최종 결정한다.
그래서일까. 여행을 다니면서 무심코 '공간의 정면' 사진을 참 많이 찍어두었다. 지금은 스쳐지나가지만 언젠가 목적지로 두게 될지도 모를 정보의 아카이빙이기도 했을테고, 어쨌든 눈길을 끈 '매력적 순간'을 기록해두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기록증'의 대상을 무어라 통칭해야 할지 모를 때는 그적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그냥 예뻐서 찍었지, 문을 찍었다던지- 가게 입구를 찍는다던지- 공간의 정면을 찍고 있다는 목표 의식도 없었다.
어느 날, '파사드'라는 단어를 마주하고 깨달았다. 그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façad (프랑스어) ; 집과 건축물의 정면. 외관, 외모, 혹은 겉보기.
'가게 입구'나 '건물 정면'이라는 직역 의미에 다 담기지 않는 뉘앙스가 있다. 의역하면 '공간의 얼굴'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여지껏 공간의 첫 인상을 기록하고 싶었구나!
'뉴트로'가 트렌드란다. '레트로(복고풍)'의 새로운 해석. 조금 촌스러우면 힙하다고 재평가 받는 흐름. 시간의 이질감이 주는 환상이 아닐까 싶다. 겪어보지 못한 시대로 경험을 확장하는 듯한 착각. 뉴트로 무드가 공간으로 펼쳐질 때는 그 '실재하지 못할 생각'이 경험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니 열광할 수 밖에. <해리포터>의 9와 2분의 1 승강장을 찾던 이들에게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만들어준 경험의 장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고백하자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벨 에포크'시대에 대한 환상, '경성' 모더니즘에 예찬, 개화기 즈음의 문화코드에 열광해왔다. 시간을 건너온 듯한 비주얼 코드는 눈길을 끌어 당기는 매력포인트가 있다.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이 펼쳐지는 묘한 이질감.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여행자의 시선으로 담아둔 장면들.
서울, 대구, 도쿄, 교토에서 마주한 풍경들이 섞여있다. 서양식 현대 건축물에 '기와'라는 요소를 얹을 때, 풍기는 동양적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2층 목조주택 골조를 가진 '가옥'의 형태에 '기와'가 결합되면 만들어지는 인상이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과 일본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코드인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을 지켰다."는 의미에서 아우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비쥬얼 커뮤니케이션에서 '색'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겠는가! 포인트 컬러이기도 하고, 전면 색감일수도 있고. 이 동네 사람들이 "빨강 창문의 집"이나 "파란 기둥 집"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곤 하겠지. 색깔은 '지형물'로 각인시키는 가장 중요 요인이 아닐까 싶다.
위 3가지 갈래 외에도 여러 이유로, 또 때로는 별 이유도 없이 우리는 숱한 공간의 처음을 ‘파사드’로 마주했다. 사진으로, 혹은 무의식 중에 켜켜이 쟁여놓은 공간의 첫 인상. 마땅히 갖추어야 할 요소를 배치하고 받은 최종 도안은 아래와 같다.
실제 구현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4월 중순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