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이 자라나는 봄다운 봄, 청명(淸明)
절기의 흐름으로 보면 '입춘'에 봄을 맞이하고, '춘분'에 낮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청명'에 비로소 음이 양으로 완전히 변하는 때다.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말을 할 정도로 생명력을 힘차게 내뿜는 시기로, 하늘이 맑고 날이 화창해 씨를 뿌리거나 나무심기 적절하다. 식목일이 4월 5일에 자리한 이유다.
'청명'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꼽히는 '한식(寒食)'과 하루 이틀 차이난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세기 때문이다. 한식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특징이란다.
<안재식당>에는 이 맘때쯤 두릅이 상에 오른다. 가게를 오픈한 첫 해, 홍천에서 주말 농사를 짓는 이모님이 한무더기 주신 것이 계기가 되었다. 땅의 기운을 푸릇하게 느끼는 제철 식재료로 이만한 것이 없으니 많이들 좋아해주셨다.
재료에 힘을 실어주려면 조리에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을 곁들여내는 '두릅숙회'를 기본찬으로 제공한다. 쌉쌀한 초록의 기운이 새콤달콤한 장과 함께 입속에 들어서면 그대로 봄기운을 맞을 수 있다.
친한 분들이 오시면 더러 별미로 '두릅 튀김'을 내기도 한다. 이 역시 별다른 기교없이 튀김의 본질에 충실한다. 얇고 바삭한 튀김 옷을 입혀서 '튀기자마자' 낸다. 좋은 쌀로 갓 지은 솥밥이 가장 맛있듯, 좋은 재료를 갓 튀긴 것이니 맛이 없을리 없다. 주방 사정상 상시 메뉴로 내지는 못하고, 한갓지거나 주방장 마음이 나면.. 운으로 먹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봄 향기를 품은 또 하나의 초록이 있다. 알싸한 맛이 특징인 '달래'다. 봄에 나는 것이 아니랄까봐 '달래'는 이름도 '달래'냐. 봄이랑 참 잘어울린다. 이에 더해 콩나물을 넣고 지은 계절메뉴를 우리는 '달콩밥 (달래 콩나물 솥밥)'이라 부른다. 예의 콩나물밥에 송화버섯을 더하고, 짜지 않은 달래장을 듬뿍 얹어 간을 맞춰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달래장을 얹어내는 메뉴로 돼지고기 구이도 있다. 고기를 애정의 눈길로 다루기 때문에 참 맛있게 구워 우리집 '굽달이'로 불리는 안선생이니 믿고 맡겨봐도 좋다. 따끈한 솥밥에 고기를 척척 얹어 먹으면 보약이 따로없지, 뭐. 무엇보다 맛이 좋다.
2021년 4월에 찍어둔 계절 반찬상이다. 갈치 김치도 담그고, 산초 장아찌도 있던 때라 유난히 풍성했던 날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부추'다. <안재본가> 밀양에 계신 어머니는 이 맘때쯤 '첫 부추'를 보내주신다. "수위가 높으니 더는 말 안하겠지만, 예부터 첫 부추는 아들도 손주도 안주고 남편부터 먹였다 한다."라는 말을 매해 덧붙이신다. 그만큼 몸에 좋단다.
땅에서 초록이 나는 계절이다. 더덕순이 올라온다고 보내주신 사진에 밝은 햇살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