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는 여름 - 무성한 것을 솎아 내는 때, 입하 (立夏)
입하(立夏)는 절기의 이름 그대로 여름으로 드는 때이다. 연두에서 진초록으로 바뀌면서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 세상" 노래가 절로 난다. 계절의 여왕답게 날씨만으로도 기분 온도가 환하게 상승한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 철쭉과 같은 여린 꽃잎을 지닌 봄꽃이 지면서 '아기 열매'가 맺히고, 담벼락에는 장미가 피기 시작한다. 여름은 모든 것을 무성하게 하는 계절이라, 여름의 초입에는 가을에 수확할 것을 생각하면서 솎아내야 할 것을 살피기도 해야한단다. 피어오르는 것을 그대로 두고 봤다가는 정작 거두어야 하는 열매가 부실해질 수 있으니, 에너지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잡는 때라고 할 수 있겠다.
5월이 시작되면 시장 가판대 초록 작물들 사이로 마늘쫑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늘쫑은 마늘이 자라면서 생기는 속대, 꽃줄기다. 이것을 제때 솎아내어 주지 않으면 마늘로 가야할 영양분을 빼앗겨 열매가 부실해 진단다. 그러니 '마늘쫑'이 그 자체를 위해 농사짓는 경우는 없고, '마늘'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거두어내는 부산물에 불과할 뿐이라 저렴하고, 초여름에 반짝 난다.
친정 부모님이 남해로 귀향해 지역 특산물인 남해 마늘을 농사 지으시면 <안재식당>에도 이맘 때쯤 마늘쫑이 상에 오른다. 시그니처 반찬이라고 할 수 있는 '가지 튀김'찬에 초록 마늘쫑을 같이 튀겨내는 것이다. 마늘향이 얼핏 나는 듯 하면서, 초록 특유의 풋풋함 별미다.
그렇다고 마늘쫑을 마지못해 먹는 식재료로 취급할 수만은 없다. 그 자체로 아주 훌륭한 식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송리단길 <조용>이라는 선술집에서 오마카세 마지막 식사 메뉴로 '마늘쫑 피클을 활용한' 파스타를 처음 맛봤다. '알리오 올리오'에 마늘쫑 피클을 킥으로 더해 맛을 살린 것인데, 새콤함이 어우러져 아주 별미였다.
마늘쫑을 '피클'이나 '장아찌'로 저장해서 보관 기간을 높이면, 여름 입맛을 돋우는 찬으로도 훌륭하지만, 마늘을 볶아서 맛을 낼 일이 있을 때 마늘쫑 장아찌를 킥으로 더한다. <조용>에서 맛보고 왔던 파스타의 맛을 잊지 못해 라면 사리를 볶아 흉내내어 먹어 보기도 했다. 보장된 맛없없(맛이 없을수가 없는) 조화다.
'피클'과 '파스타'는 원래 짝꿍이다. 오일리하고 부드러운 파스타를 먹다가 새콤하고 단단한 식감을 더하면 완벽하니까. '장아찌'는 코리안 피클이라 할 수 있고. 더군다나 한 뿌리에서 자라난 마늘과 마늘쫑의 맛의 어울림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마늘 볶을 일 생기면 마늘쫑 장아찌 더하고 싶어서라도 마늘쫑 장아찌를 담아둬야 싶고 그렇다.
5월로 들어선 후, 어떤 날은 벌써 한 여름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고 어떤 날은 아직 서늘해서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래도 곧, 맥주가 몹시 맛있어 질테고 알록달록한 무성한 작물이 시장에서 점점 짧은 유통기간을 견디기 위해 싸게 내놓아질테다. 이렇게 여름이 시작되었다.
마늘을 위해서 솎아내는 마늘쫑처럼, 영양분이 집중되어야 할 나의 열매는 무엇인지, 그래서 지금 솎아내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솎아내는 것에 미련갖지 말자. 장아찌를 담궈두면 결국 마늘이랑 연결되는 마늘쫑처럼 그 자체로 존재의 이유를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