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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연 Jun 13. 2020

누군가의 선물을 고른다는 건

 최근에 친한 회사 동기로부터 ‘생일 초대장’을 받았다. 말 그대로 ‘초대장’이라는 제목으로 한 통의 사내 메일이 도착했다. 일하다가 지루해서 만들었다는 그 초대장에는 옛날에 반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초대장처럼 날짜와 장소, 그리고 생일자의 간단한 멘트가 적혀 있었다. 이런 생일 초대장을 받아본 게 꽤나 오랜만의 일이어서 그런지 나는 왠지 모를 설렘이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프랜차이즈 햄버거집에 우르르 모여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선물 전달식을 했던 옛날 옛적의 추억까지 떠올랐다. 그날 그 동기를 생각하며 미리 준비한 생일선물에 생일카드를 더했다. 그리고 새삼 느꼈다.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른다는 일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말이다.


 한때 나는 선물은 그저 좋은 거, 비싼 거 사서 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한 선물들은 대부분 당사자가 이미 가지고 있었거나 그에게 필요 없는 거였다. 그래서 또 한때는 필요한 걸 말해달라고 했다. 그 방법은 분명 편하고 쉬웠지만 선물을 주는 기쁨은 그리 오래가질 않았다. 돌이켜보니 좋고 비싼 건 “나의 기준”에서 좋고 비싼 거였고, 받는 사람에게 물어서 정한 선물은 주고 나니 “내 마음은 없이 물건만”이 건네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건네기로 했다. 받는 사람이 평소에 어떤 걸 좋아했는지, 지나가는 말이라도 뭐를 가지고 싶다고 했는지 열심히 떠올려 보기로. 적어도 나는 누군가로부터 그렇게 준비한 선물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내게 있어 선물을 고르는 일은 그 사람에게 내가 그동안 얼마만큼의 마음을 주고 있었는지 돌이켜볼 수 있는 일종의 자가검증의 시간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뭘 좋아하는지 뭐가 필요한 지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이인데 아무것도 안 떠올라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또 몇 번 보지 않은 사람이지만 이런 걸 좋아하겠구나 하고 느껴 몰랐던 내 마음을 알 때도 있다. 충분한 애정을 쏟고 있는 관계에는 안도감을, 무관심 했던 관계에는 미안함이 들었다. 이렇다 보니 나는 선물 하나 고르는 일에도 남들보다 많은 시간과 마음이 들어간다. ‘너의 생일이 다음 주라면 나는 2주 전부터 너의 생일선물을 고민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마음이 들어간 선물을 당사자가 받고 기뻐했을 때, 그 기뻐하는 모습은 다시 나에게 선물이 되어 돌아온다.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이 확실하게 확인 받는 기적같은 순간이 또 어디 있을까.


 동기의 생일선물은 쉽게 정했다. 뭘 좋아할 지 바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택지가 많이 떠올라서 되려 고민을 했을 정도였다. 장맛비가 두 어밤 더 내리고 나면 동기의 생일이다. 나의 선물을 보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회사 생활하면서 의지를 많이 하고 있는 너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나의 마음이 같이 건네지길. 생일 축하해 친구야.




“일곱 번의 여름과 추운 겨울보다 오래

수많은 약속과 추억들보다 오래”

- 방탄소년단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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