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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준 Jun 04. 2020

2020년, 한국 축구 100년

1921년 전조선축구대회는 한국이 개최한 첫 공식 축구대회였다. 

2020년은 전조선축구대회 100년 되는 해다.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가 전조선축구대회를 주관했다. 

이후 축구 저변이 확대되면서 1928년 조선심판협회, 1933년 조선축구협회가 생겨났다. 

조선총독부는 1938년 조선체육회를 일본인 체육 단체 ‘조선체육협회’에 강제로 통합시킨다. 

조선체육회가 주관하던 전조선축구대회도 1937년 18회 대회를 끝으로 중단된다.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가 대회 존속에 나섰다. 


협회는 다음 해 1938년, ‘전조선종합축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19회'로 명명했다.

일제 강제통합으로 사라진 전조선축구대회를 '계승'하기 위함이었다.

전조선축구대회는 대한축구협회가 이미 계승했던 대회다.

전조선축구대회를 계승하는 대회가 세 번 더(1938년~1940년, 19,20,21회) 열릴 수 있었다.


전조선축구대회 초대 챔피언(2회 대회 우승) '무오축구단'




조선축구협회는 일제 강압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조직을 유지한 체육단체였다. 

일제는 체육단체 와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협회는 1942년 2월 22일 서울 반도호텔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고 자진 해산한다. 


“언젠가는 우리 후배들이 축구협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 믿습니다.”


당시 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던 고원훈 및 집행부 18명이 자진해산을 결의하며 역사에 남긴 말이다. 

전조선축구대회는 일제 억압 속에서 한국 축구 명맥을 이어가려는 열정과 혼이 담겨있다.

해방 후 1945년 다시 창립된 조선축구협회는 1948년 대한축구협회로 개칭 후 오늘에 이른다.


2020년은 전조선축구대회 100년 되는 해다. 

조직 재구성에 그치지 않고

한국 축구 출발이었던 전조선축구대회도 계승해야 하지 않을까?

일제 강압 속 끝까지 자존심을 지켰던 정신도 함께.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  전조선종합축구선수권대회로 한국 축구 명맥을 잇던 협회는 일제 강압에 1942년 2월 자진 해산한다. 광복 후 재조직돼 오늘에 이른다.




일본 FA컵 천황배 대회는 1921년 '아식축구전국우승경기회'를 원년으로 본다. 

'아식'은 잉글랜드 축구협회 축구 규칙을 따르는 경기를 뜻한다. 

협회를 뜻하는 영단어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첫 스펠링 A를 따서 A식

아식(Association式)이라고 불렀다.


일본도 올해가 FA컵 100년 되는 해다.

일본은 코로나19 여파로 5월 23일 예정이었던 1라운드를 9월 16일로 연기해 놓은 상태다.

100년 대회 일정은 지난해 대회가 끝나기 전에 이미 마련된 상태였다.



똑같이 대회 100년을 맞이한 한국과 일본.

일본은 방역을 할 줄 모르고, 한국은 대회가 100년인지 모르고 있다.


99회 결승전 현장에서 배포한 100회 대회 일정. 코로나19 여파로 일정이 수정됐다. 참가팀을 축소해 9월 16일 대회를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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