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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ul 06. 2022

여자 셋, 네팔 트레킹_3

우여곡절 끝에 히말라야로

네팔 트레킹 할 기본 체력은 확인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막했다. 허심탄회한 자기 고백의 시간을 통해 멤버 셋 모두 해외여행 경험은 인생에서 몇 번 되지 않으며, (당연히) 원정 트레킹이 처음이고,  영어 울렁증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일단 자유여행은 패스. 휴가를 쓰는 데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직장인인 데다 딸린 애들이 있는 매인 몸이라 남편들이 독박 육아를 수용할 수 있는 인내심의 한계에서 뽑아낸 일정은 월~금 5일간 회사에 휴가 내고 앞뒤 주말을 붙인 9일간이었다. 정유정 작가님처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일명 ABC)로 가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네팔 왕복 시간을 포함하여 9일인 일정으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나 혼자라면 ABC를 무리해서라도 감행했을 텐지만 멤버 K는 40대 중반인 나이와 고혈압이 신경 쓰이고, 멤버 M은 체중 감량에 집중하느라 체력을 많이 기르지 못해 걱정이 많았다. 아쉽지만 눈물을 머금고 ABC 대신 3박 4일 일정으로 안나푸르나와 6000m 이상의 고봉들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푼힐 전망대(3210m) 트레킹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워킹맘들이라 차분히 여행을 준비할 여력이 없으니 속 편히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통해 견적을 받기로 의견을 모았다.     


주변 지인 중 "네팔을 다녀왔다 카더라" 하는 사람들에게 건너 건너 정보를 입수하여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여행사 두 군데를 선정해서 조건과 금액, 일정을 비교해보고 우리 셋 예약만으로 출발 확정이 되는 <신발끈 여행사>를 통해 트레킹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네팔 직항은 대한항공 한 편 밖에 없는데 비싸고, 다른 나라를 경유를 하면 가격은 싸지만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돈이 부담되긴 하지만 우리들은 제주에 살고 있어서 제주~김포~인천으로 이동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려 이동에만 하루 이상이 걸릴 것 같아 큰맘 먹고 대한항공 직항을 이용해 네팔을 왕복하기로 했다. 푼힐 트레킹 외에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와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하다는 세계문화유산도시 박타푸르 도시 투어를 하는 것으로 해서 2020년 2월 1일부터 9일까지 총 8박 9일의 일정을 확정하였다.     


1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연속 5일간의 휴가를 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는 회사에 휴가 계획을 알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어느 정도 일정을 확정하고 나서 미리미리 내년(2020년) 2월에 여행 계획이 있다고 같은 과 직원들에게 조심스레 알렸다. 양해를 구하고 업무 스케줄도 다 조정해놨더니 웬걸, 갑자기 2020년 1월 6일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이 나버렸다. 새로운 부서로 가서 한 달도 안 되어 휴가를 내야 하는 난감한 상황. 그래도 이미 예약까지 한 건데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발령 첫날부터 여행 계획을 직원들한테 이야기해서 업무대행을 부탁해야 했다. 그러고 며칠 뒤인 2020년 1월 18일 안나푸르나로 교육봉사를 갔던 충남교육청 해외봉사단이 휴일을 맞아 트레킹에 나섰다가 교사 중 4명이 눈사태로 실종되는 사고가 났다.(관련기사: 한국인 4명 실종된 안나푸르나 트레킹…"본래 많이 가는 곳" | 연합뉴스 (yna.co.kr)) 여행 계획을 알고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눈사태가 나서 사람이 실종되는 판국에 네팔 여행 진짜 갈 거냐고 걱정스레 물어왔다. 우리들도 내심 불안했지만 사고 지점인 데우랄리는 상당히 높은 곳인데 우리는 훨씬 낮은 고도이고 다른 루트로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다고 주변을 안심시키며 스스로의 불안도 달랬다. 그랬더니 2020년 1월 20일, 한국에서도 코로나19(당시에는 우한 폐렴이라고 불렀다)에 감염된 첫 환자가 발생하여 우리의 여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관련기사: `우한 폐렴` 확진자 국내 첫 발생… 한국도 감염 확산 안심 못한다 - 매일신문 (imaeil.com)) 정말로 이 시국에 네팔 여행 갈 거냐고 주변에서 걱정을 가장하여 여행을 만류하는 기류가 강하게 흘렀다. 2019년 일 년간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준비한 여행인데......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여행을 강행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셋이 가야 출발할 수 있는 조건이라 다른 멤버 중 한 명이라도 포기하면 여행은 파투가 나고 말 것이었다. 이번 여행 계획을 무르면 다시는 우리가 일정 맞춰서 여행을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내 인생에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지 알 수도 없고 아직 우한 폐렴이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 우리의 여행이 꼭 성사되었으면 한다고 멤버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다른 멤버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으로 우리 중 누군가가 못 간다고 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히말라야에 꼭 가겠다는 결의를 다시 다졌다. 미리 준비했던 소화제, 해열제, 고산병 약에다 KF94 마스크, 손소독제를 추가로 준비하고 드디어 2020년 2월 1일 새벽 제주를 출발하였다. 해외에 가니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이날 제주공항에서 생전 처음으로 KF94 마스크를 착용했다. 앞으로 기나긴 날들을 마스크와 함께 생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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