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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민 Apr 01. 2024

벚나무를 베라기에
나는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나의 직무 전환 일지








조명 아래, 사람들의 분주함으로 잔뜩 올라 찬 먼지는 눈송이처럼 차분히 반짝인다.

누구는 스크립트를 보고 있고 누구는 앵글을 보고 있고 누구는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다.

조곤조곤 속삭인 말 하나에 그림이 달라지고 구조가 바뀌며 흔들리는 물병 속 생수처럼 비용이 너울 친다.

모두가 뱉은 숨을 잡아채며 감독의 큐사인을 기다리고 이내 분주히 움직이는 카메라 팀의 발소리 너머로 정성스레 짜 올린 카피 한 줄이 모델 넘어 울려온다.


너무나 좋아하던 현장에서의 한 호흡이다.









광고는 여러 측면에서 아주 재밌는 분야다.

날카로운 전략이며 뾰족한 기획이고 맴도는 한 구절이자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되기도 하며

15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는 '문제상황과 솔루션, 기대효과'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때로는 소비자를 향한 날카로운 일침이나 지침서의 역할을 한다.

거기에 더해 적게는 360장, 많게는 450장 안에 아트디렉터의 크리에이티브 방향성과 미술감독, 조명감독, 카메라 감독들의 감각이 세밀하게 담겨 음악으로 감긴 것, 그것이 광고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상업예술에 불과하지만 이는 인류가 연극에서 뮤지컬, 영화, 드라마로 거듭해 가며 발전한 예술 역사 속에 함께 성장해 나간 매력적인 예술분야임은 틀림없다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광고에 푹 빠진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처음부터 광고를 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다.


본래 나의 전공은 공간연출, 무대를 시작으로 상업공간까지의 한 공간 안에 이야기를 담는 것이 전공이었다. 각본을 작성해보거나 극의 재해석을 통한 각색을 시작으로 무대 디자인, 조명 연출 또는 파인 아트 오브제 등을 만들어보며 사람들에게 공간의 재창조 또는 재해석,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끔 하는 '연출'에 대한 공부를 했었다.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것들이었으나 이는 아름다워 보이는 꽃 한 송이였을 뿐.



연극한다고 연봉 300에 인생을 걸 수 없었다.






전과를 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 배우는 학과에서 같은 시간 동안 정말 심도 깊게 다양한 학문을 넓게 탐구할 수 있는 것이 좋았고 지금 배운 것들과 터득하며 겪은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더 추가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당시 배우던 Tool들 중 없던 것이 유일하게 '영상'이었는데 (요즘은 흔해진 바로 프리미어 CS6 되시겠다)

이야기를 담는 법, 공간을 채우는 법, 미술에 대한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능력을 상업적으로 먹고살기 위한 용도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내린 결론은 '영상'과 관련된 쪽으로 취업을 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느 판에 들어가겠다는 없었고 많이 열어둔 채로 해봤던 것 같다. 아마 나의 욕심이었겠지만.


2015년은 바야흐로 유튜브의 서막이었다.

수많은 영상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너도 나도 영상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하던 시기, 지금 이 파도에 올라타야 밥이라도 내 돈 주고 사 먹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수업, 과대, 알바, 근로장학생의 타임테이블 사이에 영상 공부를 욱여넣었다. 내가 해오던 것과 관련된 것이라 생각했지만 처음으로 16:9 화면에 비치는 사각형 박스 안의 한 장면을 생각하는 것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심오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가 있거나 채워주는 공간이 있다거나 소리를 비운다거나 음악을 채운다거나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던 것이었다. 당시 과대 장학금과 근로장학생으로 받은 돈으로 압구정에 있는 캐논으로 가 덜덜거리는 손으로 DSLR을 하나 샀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걸 돈 주고 사다니 이런 모델이었는데 

(EOD 600D 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심도감 있는 렌즈 속에 영상과 사진이 담기는 경험은 새로운 도전이자 나를 위한 첫 투자라고 생각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콘텐츠를 하기에는 용기가 없던 터라 친한 동생들과 다양한 UCC 공모전에 지원했었는데 예전 기록에 남겨뒀던 것을 보니 알O천국 공모전에 냈던 영상이 있었다.


제작의도에는 무려 청춘은 항상 희망차고 자신감을 갖게 하지만 현실은 뼈 아픈 교훈을 안겨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렸다! 청춘들에게 파이팅! 라고 적혀있었...


이때의 노력과 흘린 땀이 있기에 지금이 있는 걸까?

9년 뒤 24년 2월,

알O천국 경쟁PT를 들어갔었고 우리는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수주하였다.






안톤체호프의 '벚꽃동산'을 아는가.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 사이의 시대관통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단막극이다.

변화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 각자가 어떻게 위치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극이다.

연극판에서의 취업이나 미래는 현실적으로는 너무나 어려운 길이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로 했고 변하는 시대에 맞춰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내가 직접 나무를 베어버렸다.



배우던 것과 다른 새로운 것. 새로움은 때론 가장 강렬한 두려움으로 자리한다.

내 미래를 위해 잠을 치워가며 넘치는 고민은 흐르는 채로 두려운 감정을 내리깔고 걸었던 그때.

남들에겐 한없이 작은 내 걸음이 그리도 무겁게 울릴 수 있는 걸음이었는가.

나는 무슨 꿈을 꾸며 변화에 새로운 발걸음을 던졌는지 그때의 내 용기가 그립다.


대행사의 프로듀서 8년 차.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내일을 위한 삶을 사랑하는

그런 그저 그린 꿈을 꾸는 한 명의 제작자였다.








나 스스로 닦아 온 나의 업을 사랑하지만 안타깝게도 시대는 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한 명의 프로듀서로 제작 전반에 걸친 어드바이저이자 조율자이자 커뮤케이터였던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행복했지만 이 일을 시작할 때쯤 이미 대행사에선 프로듀서(이하 PD로 얘기하겠다)는 외부로 돌리는 추세여서 또 다른 불안감에 휩싸인 채 2023년의 겨울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김 PD, 우리가 더 뒤처질 수 없고 대기업 인하우스 대행사들은 이미 도입을 하고 있으니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고 활동성 있는 네가 책임지고 우리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해 주면 어떻겠니?"


"제가 뭘 해드리면 될까요?"


"AI"




내 손에는 또다시 작은 도끼가 들려있었고

귀에선 찌르는 듯 날카로운 고주파 소리만이 맴돌았다.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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