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기다리는 엄마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두 가지 생각이 스친다. ‘우리 아이가 사고를 쳤나?’ 아니면 ‘아이가 아픈가?’. 이 두 가지 일이 아니면 학교에서 전화할 일이 없는 까닭이다.
예상대로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심각한 문제였다. 00초등학교에서는 학교 자체적으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매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학급에서 지급하는 돈을 사용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경제생활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교육 프로그램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학급이나 학교에서 착한 일을 하거나 뭔가 돈을 벌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은 학교에서 물건을 사오기도 하고 과자를 사먹기도 했다. 엄마에게 맛있는 사탕도 한 개씩 사다 주며 학교에서 자기가 번 돈으로 샀다고 하기에 제법 좋은 프로그램이구나 생각하던 차다.
문제는 돈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견물생심이라고 할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 같다. 결국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하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00어머니.”
조용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엄마의 심장을 내려앉게 하기에 충분하다.
“00가 혹시 요즘 치킨쿠폰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지 않았나요?”
엄마의 직감. ‘아이가 뭔가를 훔친 것이구나’.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리 아이는 욕심이 많다. 호기심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다. 남의 물건 중에 새로운 것이 있거나 신기한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가져오는 버릇이 있다. 몇 번을 돌려보내고 잔소리를 해 보지만 잘 고쳐지지 않고 충동적 행동이 먼저 나온다.
엄마는 아이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것은 도둑질이고 나쁜 행동이다. 몇차례 그런 일로 학교 선생님과 상담도 하고 물건도 돌려준 일이 있어서 그런것일까?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지만 엄마는 아니다.
“선생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나요?”
태연하게 물었지만 심장이 멈출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제발 돈을 가져갔다는 것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네, 저희 학교에서 학교 돈을 만들어 사용하게 하는 건 아시죠? 그런데 학급에 두었던 학교 돈이 없어져서요. 다른 아이들과 장부를 보며 확인해 보았는데 00의 장부만 잔액이 맞지 않아 혹시나 해서 전화 드린 겁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를 어쩐단 말이냐. 욕심이 많은 아이지만 돈을 가져가는 일은 없었다. 집에서도 엄마 책상이나 거실에 천원자리가 있어도 그걸 가져간 일이 없고 그것만큼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다시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혹시 집에 학교 돈이 얼마 있는지 확인해서 문자를 달라고 하셨다. 부랴부랴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학교 돈 한 뭉치가 옷 주머니에서 나왔다. 금액을 세어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며 한 가지를 덧붙였다.
“선생님, 00는 다른 건 몰라도 돈을 가져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은 엄마의 생각입니다. 참고해 주세요.”
아이가 집에 오면 모른 척 해 달라는 선생님의 부탁이 있었다. 엄마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무일 없던 것처럼 아이를 맞이하고 평소처럼 대해 주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지나가듯 아이에게 물었다.
“00야, 학교 돈은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많이 모았어?”
“아, 엄마, 그거요, 매점에서 축구공을 사려고 모으고 있어요. 축구공이 3만전인데 저는 아직 다 못 모아서 모으는 중이에요.”
“그렇구나, 엄마가 축구공 사줄테니 학교 돈은 다른 곳에 쓰면 안될까?”
축구공을 사 주었다. 마음은 무너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아이의 행동이 분명했지만 참았다. 선생님께서도 아이 스스로 말을 할수 있도록 지도해 보신다고 하셨다.
며칠을 끙끙 앓고 궁리에 궁리를 해 보았지만 답을 낼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아이의 도벽이나 거짓말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찾아보고 책도 뒤져 읽었다. 금쪽이 지도로 유명한 오은영 박사의 블러그도 찾아보고 책도 사서 읽었다. 그래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럴땐 정직이 답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를 불렀다.
“00야, 엄마가 00와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해맑은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한다.
단호한 표정의 엄마 앞에 아무렇지 않은 아이.
학교에서의 일을 이야기 해주고 선생님과 대화를 해 보니 00가 가져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지금 진실을 말해주면 모든 것은 엄마가 알아서 해결해 줄테니 거짓없이 말해주기를 간청했다.
얼마를 더 기다렸을까? 지친 엄마 앞에 마지막 남은건 눈물이다. 엉엉 울었다. 엄마의 마음이 이렇게 아프다고 하며 진심을 다해 울었다. 아이도 울었다. 우리는 같이 울었다. 한참을 그저 펑펑 울었다.
“엄마, 죄송해요. 제가 가져갔어요.”
해결책이 나왔다. 이 모든 것은 비밀로 해 줄 것이고 00가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다음날 선생님께서는 진실 담기 게임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했고 아이는 거기에 자신의 잘못을 담아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 습관임을 안다. 언제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기다리려 한다. 좋은 습관으로 변화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