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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Jul 23. 2023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는 기자 명함

불쌍한 게 아이템이 될 거라는 착각

대학원에 와서 친해진 선배 기수 중 지역 MBC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온 형이 있다. 지금은 좀 편해져서 그런 감이 없지만, 학기 초만 하더라도 날카롭고 인텔리(?)한 모습에 ‘기자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번은 그 형과 서울 가좌동 모래내시장을 취재차 방문한 적이 있다. 모래내시장은 인근이 재개발로 점점 축소되고 있는 동네 재래시장이었다. 우리가 이곳을 취재한 이유는 점차 사라져 가는 이 모래내시장에 자리 잡은 작은 ‘뮤직바’ 때문이었다. 알아본 결과 작게 시작한 뮤직바가 어느덧 입소문을 타 기회를 원하는 뮤지션들에게는 작게나마 공연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뮤직바는 시장이 마감하는 시간에 맞춰 열렸다. 시장 한편에 위치한 뮤직바로 향하며 두리번두리번 시장을 구경했다. 어두워진 시장 골목 모퉁이에는 생선가게가 있었다. 몇 개의 전구가 생선가게를 밝히고 있었다. 물줄기가 가판대를 씻겨 내려갔고 가게 주인의 손길에 생선 아래 놓인 얼음은 바스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명 때문이었을까, 그 모습이 어딘가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카메라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난 순간, 바로 앞에서 동행한 기자 형과 대화를 나누던 한 할머니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녹음하고 있지?!”


놀랐다. 우선 장사하는 할머니에게서는 절대 나올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말이라서 놀랐고 다음으로는 그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서 놀랐다. 우리가 기자나 PD라고 밝히지도 않았다. 시장이 보통 이 시간대에 문을 닫느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바라보며 ‘녹음’하는 거 아니냐며 소리를 치셨다. 아마 우리가 쥐고 있던 카메라와 수첩 때문에 지레 짐작하신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거 아니라며 웃으며 흘렸지만, 옆에 있던 형은 상당한 자괴감에 빠졌다.


“하... 진짜 저열한 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네요.”


형이 하는 말은 이랬다.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찾아와 모래내시장 상인들에게 캐물어 봤으면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저 할머니가 우리를 보자마자 ‘녹음’이라는 말을 내뱉었을까. ‘재개발’과 ‘사라져 가는 재래시장’이라는 키워드에 얼마나 많은 찌라시, 인턴 기자, 유사 언론들이 달려들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흔히들 ‘기사 아이템’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는 정보이면서 흥미성도 갖고 있어야 하며 누군가에게는 연관성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아이템을 찾는 건 어렵다. 매일 반복되는 이 과정이 피곤한 탓인지 으레 ‘불쌍해 보이는 것’, ‘안타까운 것’, ‘관심이 필요한 것’들에 시선을 모으곤 한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반대, 취재원의 입장에선 어떠할까? 매번 나와 내 주변을 찾아와 이것저것 묻지만, 정작 삶에는 도움도 안 되고 성가시게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언론은 빈곤을 쫓아다닌다. 여름이면 푹푹 찌는 쪽방촌을 향하고 새 학기가 시작될 즘이면 돈 없는 대학생들의 월세를 걱정하며 대학가를 돌아다닌다. 이들의 삶이 공익적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며 결국은 언론인들이 공동체를 위해서 보도해야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쪽방촌, 고시원, 반지하, 재래시장 등의 취재와 보도가 정말 유의미하게 이뤄지고 있는 걸까? 좁아터진 공간을 언론의 펜과 카메라가 들추며 따듯하고 안락한 공간에 있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구경시켜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쭙잖은 기자들처럼 SNS에 조회수를 빨아먹는 정도의 기사밖에 더 되겠는가. 현장을 가고 관찰하고 문제와 맥락을 포착해야 한다. 그 과정이 없다면 ‘그럴싸한 그림’과 ‘괜찮은 멘트’나 따내는 찌라시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기자 명함’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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