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05
잡글이다.
사실 내일 준비할 일이 있다. 하다 보니 며칠 일도 많고, 쉬고 싶고...
꼭 이럴 때만 딴생각이 들어 브런치에 들어왔다.
오늘은 일에 대한 이야기다. 혹은 어떤 목표에 관한 이야기다.
난 참 축구를 좋아한다. 독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6년 초등학교 4학년. 조별리그 3차전에서 스위스에게 져 탈락했을 때 아침 댓바람부터 울었다. 2007년엔 내 고향팀 포항스틸러스가 K리그에서 우승했다. 그걸 직관했다. 아직도 그 열기가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매해 가난한 팀이라 선수가 뺏겨나가도 응원하고 있다.
오래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내 일과 연결시킬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여름, 프로가 되지 못한 축구선수들이 모인 독립구단 'FC아브닐'을 취재했다. 이들의 꿈과 일상을 촬영했다. 운이 좋게도 KBS <열린 채널>에 3월 13일 방영된다. (ㅎㅎ)
다큐를 촬영하며 사람을 봤다.
축구가 일이고, 축구선수가 직업이라면 그 선수들은 취준생이었다. 그것도 꽤나 어린 취준생들이었다.
평생 해 온 거라곤 축구뿐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공부할 때 운동장을 뛰었다.
수능을 칠 때, 일자리(프로 팀)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안 통한 인맥이 없다.
이들의 불안을 본 것 같다.
포기하는 순간, 지난 10여 년이 통째로 날아간다. 포기하는 순간, 준비한 다음 챕터가 없다.
매몰비용이라고 하지 않나. 이들에겐 축구는 꿈이자 매몰비용이었다.
내가 축구를 좋아한 건 낭만과 열정이 담겨 있어서였다.
그런데 내가 보는 축구 속 낭만과 열정 뒤에는 커다란 불안과 착취가 담겨있었다.
착취라고 하니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착취가 맞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들어야지. 눈빛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기회로 달려들어야지."
축구판, 아니 한국 스포츠판엔 이런 인식과 언어가 깊게 스며들어있다.
지도자, 행정가, 선수들 심지어는 그들의 부모와 팬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세상 어떤 직업이 안 되면 죽는다는 각오로 달려드는가.
언론사에서도 종종 자기 월급 받으면서 남일 하는 것처럼 하는 이들을 봤다.
대기업도 다를 바 없다. 누구도 일을 하면서 "안 되면 죽는다. 매 순간 지금이 마지막"
이런 절박함으로 일 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렇게 사는 게 맞나 싶다.
자영업자들을 보면 많이들 개업하고 또 그만큼 폐업한다.
이들의 노력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이 서로 레드오션에서 경쟁하고 밤낮없이 일하는 결과 말고 이유를 보면 슬프기도 하다.
왜 우리 사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에 몰리게 되는가.
돈을 좇아 달리는 성공이 자영업으로 사람을 몰고 있기도 하고,
하릴없이 내몰린 이들이 자영업으로 향하기도 한다.
죽을 각오란 말. 참 묘하다.
그렇게 피 터지게 싸워서 얻어낸 건 삶에 대한 안정감 하나뿐이다.
취업이, 프로 데뷔가, 자영업이 모두 안정감을 얻기 위해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
죽을 각오가 없다면, 우리 사회에는 안전망이 없는 걸까.
나를 점검하는 시간을 삶의 중간중간마다 가져볼 수 있다면 좋겠다. 의도적으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