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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wovewove Aug 15. 2021

<인어공주>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1


에리얼은 불행하였다.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과 바다 빛의 푸른 눈동자를 지닌  치고는  우울한 표정이었다. 헤엄을 치고 산호 구경을 다니는 언니들과 달리 그녀는 하릴없이 하늘만 쳐다보았다. 하늘에 무엇이 있어 저리 골똘히 바라보는 건지. 바다 수영  인간들이 전부인 것을.


"내게도 망할 지느러미 대신 둘로 갈라진 고래 살결 같은 다리가 달려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리얼이 중얼거렸다. 수면 아래 달랑거리는 인간들의 다리가 꼭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절망에 빠진 에리얼이 해저가 꺼져라 한숨을 내쉬자 그녀의 아가미가 푸드덕거렸다. 덤으로 공기방울이 메기수염처럼 연이어 나오며 그녀를 비참케 하였다.


지금 에리얼은 도망치고 싶다. 자면서도 깜빡이지 않는 물고기들의 눈과 사시사철 들러붙는 따개비들로부터. 익히지도 않은 날음식을 베어 먹는 일도, 콧구멍과 아가미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공기방울들도 이젠 미칠 듯이 싫다. 무엇보다도 최악은 미끌거리기만 한 희뿌연 남자 인어들. 그을린 피부의 육감적인 인간 사내들을 보기 전이었더라면 꼼짝없이 저 어설픈 인어 놈들의 알을 품어야 했을 터이다. 상상만으로도 그녀는 몸서리가 쳐졌다.


'뭍으로 올라가야 해. 여느 생선들과 같이 얼레벌레 살 수는 없어. 물이라면 정말 지긋지긋해. 바다도 강도 하다못해 개울조차도 없는 육지로 갈 거야. 그리고 기필코 폭신한 모래에 누워 살을 태우며 보드라운 파도 거품이 올라간 보리주를 마시는 기쁨을 누리리라.' 에리얼은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2


살짝만 더 손을 뻗으면 왕자님께 닿을 텐데. 에리얼은 온 힘을 다해 상체를 기울이며 육지로 나아갔다. 서서히 파도가 잦아들었다. 파도는 더 이상 그녀에게까지 다가오지 않는다. 에리얼은 바다도 육지도 아닌 곳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지느러미에 경련이 일어 팔딱거렸다. 이제 와서 포기하고 바다로 돌아간다고 한들 이미 늦은 일이었다. 정신은 아득해지고 몸은 바싹 마르고 있었으니까. 어디서 인지 고소한 생선 비린내가 올라왔다. 따가운 여름 볕에 그녀의 꼬리가 익기 시작한 것이다. 노난 갈매기떼가 냄새를 감지하고 몰려들었다. 식성 좋기로 소문난 그것들은 생선살을 깔끔히 발라먹었다.


이윽고 의식을 되찾은 왕자는 살이 오그라들어 눈과 입이 벌어진 한 여인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그는 상반신만 남아있는 끔찍한 꼴을 보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침을 뱉었다. 퉤. 왕자의 걸쭉한 가래가 에리얼의 눈가에 튀어 진주빛으로 반짝였다. 뒤늦게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아버지 포세이돈은 거대한 파도를 치게 해 에리얼의 시체를 거두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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