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생을 살아오며 뭔가를 성취해 온 과정은 항상 매우 높은 목표를 세우고 나를 몰아붙이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120%의 목표를 세워야 80%만 하더라도 100%에 수렴할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80점만 맞아도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 있으면 무조건 100점을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 90점 정도를 받았다고 했을 때, 결과적으로는 시험에 통과했지만 항상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남아서 시험에는 붙었지만 자기효능감은 충족되지 못하는 이상한 굴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이렇게 되면 100점을 받더라도 당연한 결과일 뿐이지 그렇게 큰 쾌감이 따르지도 않는다. 나는 이렇게 사는게 성공의 유일한 길이자, 유능한 인간의 특징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었다.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달려나가 계속해서 뭔가를 성취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철인의 모습이 나의 지향점이었다.
천천히,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역설하지만, 천천히, 꾸준히가 얼마나 지루하고 긴 과정인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다. "특별한 비결은 없고 교과서를 중심으로 꾸준히 노력했어요"라는 한 마디로 성공한 사람의 '신화'가 일축되며 오로지 그가 성취해 낸 놀랍고 흔치 않은 결과만이 집중 조명될 뿐이다. 결과중심적 사회는 내가 도달해야 할 지점, 얻어내야 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결과에 이르려면 과정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데도, 과정 속에 있으면서 아직 다다르지 못한 결과만 바라보게 되니 마치 스스로가 패배자가 된 것 같다. 천천히 꾸준히 해야 하는 걸 알지만 천천히 꾸준히 하는 게 얼마나 긴 과정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기에, 내가 정말 저 끝을 향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도태된 건지 구별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냥 천천히 대신 나 자신을 다그치면서 빠르게 가기를 선택하며 살았다.
아니 이게 된다고요?
드럼은 사지분리의 악기다. 드럼 악보를 읽으면 한 박자 안에 왼팔, 오른팔, 왼다리, 오른다리가 어떤 모션을 취해야 하는지가 따로따로 들어있다. 가끔은 내가 문어가 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몸 하나에 이렇게 긴 막대가 네 개나 털레털레 달려있다는 게 부자연스럽고 웃기게 느껴진다. 당연히 어렵다. 처음 보는 악보인데 사지에 대한 완벽한 제어를 통해 음악을 연주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연습을 하려면 어떻게 될까? "완벽하게 치기"라는 이데아를 향해서, 되든 안 되든 즉시 팔다리를 모두 사용해 연주할 거다. 당연히 힘이 안 들어가고 리듬은 엉망이 된다. 그래도 연주한다. 망가진 리듬은 듣기에 좋지 않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억지로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결국 익숙해진 나머지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으아아아! 극한에 도전한다! 나 자신과 싸워 이긴다! 이를 악물고 오기로 악보를 몸에 욱여넣어서 결국 연주를 완성한다. 동일한 과정을 고/통/스/럽/게 악/착/같/이 반복, 또 반복. 100점 맞을 때까지.
드럼도, 당연히 그런 방식으로 연습을 하려 하는데 선생님께서 강한 어조로 제지하신다. 자, 그렇게 연습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멈춰 보세요.
그러면 나는 의심스럽지만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저항을 잠시 밀어 둔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오른손을 들어 하이햇만 친다. 나머지는 가만 있고 오른손만 친다. 당연히 쉽다. 어리둥절한 채로 틱, 틱, 오른손만 친다. 조금 머쓱해진다. 그러면 이제 하이햇, 그대로 계속, 치시고 스네어랑 같이 쳐 보세요. 다리는 얌전히 멈춰 있고 양 손으로 연주한다. 두 팔을 다 쓰는 거지만 상체만 하는 거니까 할 만 하다. 네, 좋아요. 계속 하세요. 계속... 몇 번 반복해서 치다 보니 이제는 손에 익어 안 보고도 할 수 있겠다. 자, 멈추고, 이번엔 하이햇이랑 베이스만 연주하세요. 왼손은 다시 다소곳이 멈춰 있고 오른팔과 오른다리만 움직인다. 팔과 다리를 같이 움직이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한 쪽씩만 하는 거니까 할 만 하다. 계속 오른팔이랑 오른다리만 친다. 삐걱대지만 어렵지 않게 반복할 수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이제 수월하게 일정한 속도, 일정한 파워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선생님은 예고 없이 이제 한꺼번에, 합쳐 보세요, 한다.
저 아직 준비 안 됐는데요, 항의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그냥 한다. 하이햇, 스네어, 베이스 드럼 동시에 친다. 동시에? 동시에... 나는 미숙하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게 양팔과 오른다리로 심벌 하나와 북 두개를 동시에 연주한다. 처음 악보를 딱 봤을 때는 감도 안 잡혔던 것이, 나도 모르게 시작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연주된다. 그냥 몸에 익어서 자연스럽게. 너무 신기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연습하세요. 천천히 따로 하고, 익숙해지면 합치시는 거예요.
악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게 돌리는 게 아니라 부분부분 나눠서 하면 되는구나. 양 팔과 다리를 따로따로 악보를 쪼개서, 익숙해지면 합쳐서. 나누고, 쪼개고, 그런 다음에 합치면, 처음부터 완전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쉽게 되는구나.
어렵게 살 것인가, 쉽게 살 것인가
나는 드럼을 연습하면서 사실 인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싸워 이겨 쟁취해야 하는 게 아니라 쉽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를 악물고 피땀눈물을 흘려 가면서 정상만을 응시하고 아주 가파른 길로 꾸역꾸역 갈 것인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고 지지부진해 보여도 완만한 언덕을 힘들이지 않고 걸어서 어느 새 정상에 도착해 있을 것인가. 단순히 어떤 길로 갈지 선택만 하면 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내 인생은 나를 가장 어려운 난이도로 몰아세운 뒤 스스로에게 챌린지를 주는 것의 반복이었고, 그게 가치 있고 발전하는 삶인 줄만 알았는데, 어떤 길이 더 가치 있다는 건 누가 정하는 것일까? 어느 길로 가든 길은 정상으로 통한다. 그저 흥미와 자극 차원에서 더 어렵고 힘든 길로 갈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인생도 있는 거지만 난 그 길로 살아오면서 전혀 흥미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언젠가 상담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쉽게 사는 삶은 패배자의 삶 아닌가요?"(참...지금 생각하면...)
"어렵게,힘들게 애를 써야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성공의 열매가 주어진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명제는 내 안의 진리가 되었고 나는 성공하려면 반드시 고통의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난 이제 이 뿌리깊은 믿음을 수정하려 한다.
인생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며 생을 불태우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다. 쉽게 살 수 있다. 어떤 길로 가느냐와 성취를 할 수 있고 없고, 성공을 하고 실패를 하고는 전혀 연관이 없는 문제다. 물 흐르듯, 조금 돌아가더라도 힘들이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밝은 기운으로 목적지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같은 결과를 얻더라도 완전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라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어려운 걸 하나 해냈다는 성취? 그거 하나 남는다면 그럼 그 다음은 뭐지? 나는 편안하게, 나누고 쪼개서 돌아돌아 악보 하나를 온전히 연주하듯 그렇게 인생을 살아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