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 건 드럼을 친지 두 달째에 접어드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레슨을 시작하고 나서 매주 3일 이상 연습을 하러 갔고, 약간 무리하다 싶게 받아 온 숙제를 매주 철저히 연습해 가서 내가 느끼기에도 빠른 속도로 실력이 늘고 있었다. 드럼 연습 패드를 사서 집에서도 연습했다. 사실 뭘 열심히 해서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재미있어서 계속 쳤다. 선생님께서는 당연히 매 수업시간마다 칭찬을 많이 해 주셨고 우등생이라는 말도 자주 하셨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나로 하여금 드럼을 치게 했다.
그 날은 이상했다. 다음 주에 숙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손이 말을 안 들었다. 지금까지는 계속 진도가 잘 나갔는데, 갑자기 악보가 너무 어렵게 느껴지면서 조금만 속도를 내려고 하면 바로 박자가 망가졌다. 식은땀이 나고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드럼채는 한없이 무겁고, 힘을 줘야 하는 다리는 축 쳐진 채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와중, 의무감이라는 감정이 뇌리를 스쳤다. 더 이상 연습을 지속할 수 없어 찜찜함을 안은 채로 학원을 나섰다. 어깨가 무거웠다. 나는 언제부터 의무감으로 드럼 연습을 나왔지? 나는 이제 취미로 부담 없이 연주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건가? 그냥 재미로 시작한 건데 드럼이 이렇게 질린다고? 나는 뭐 하나 꾸준히 못하는 사람인건가? 그러면 선생님한테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 둔다고 해야 하나?...
너도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잖아
"드럼에 시간 다 버리는 거 아니야?"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서 난 엄마와 통화를 한다. 나는 이 날, 내가 드럼을 시작한 이후로 제일 회피하고 억누르고 있었던 문제 하나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드럼에 시간을 버린다.' 울컥하는 마음에 급히 통화를 종료한다. 집에 도착해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너무 서러워서 눈물까지 찔끔 난다. 내가 지금 시간을 버리고 있는 거라고? 엄마는 왜 말을 그렇게 해? 그런데 정말 나, 그렇게 생각한 적 단 한 순간도 없다고 말할 수 있나?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을 돌아본다. 나는 한국 사회가 키워낸 전형적인 '착한 아이,' '좋은 학생' 이었다. 끝없이 발전하고, 성장하고, 좀 더 높은 걸 성취하는 삶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ㅇㅇ고등학교 출신,' 'ㅁㅁ대학교 출신'이 그렇게까지밖에 못 했어?"라는 말이 가장, 가장 두려웠고 듣기 싫은 말이었고, "걔가 어릴 때부터 똑똑하더니 회사까지 잘 갔구나"하는 말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운이 좋아 처음으로 지원했던 괜찮은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지만, 조금 더 유명하고 조금 더 입사하기 힘들고 조금 더 돈을 많이 주는 '신의 직장'을 향해 2년간 쉬지 않고 취업 준비를 하게 된다. 한 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보완하면 될 것 같은데, 하면서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퇴근하면 자격증, 인적성 공부를 하고 오로지 이직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토익 점수 5점을 올려 보겠다고 매주 시험을 치고, 두 달만에 중국어 자격증을 두 개를 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를 정도로 깨어 있는 시간 전부를 취업 준비로 사용했다. '나는 내 한정된 시간을 가치있게 사용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질문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던 '시간의 가치있는 사용'이란 '엄마, 아빠, 선생님, 사회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인간이 되기 위해 정진하고 있는가?'와 동일한 의미였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불안감이 우울함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기계발'을 하면서 이직 준비라도 하고 있을 텐데, 나는 아무 데도 쓸모 없는 취미생활에 매달리면서 젊음을 허비하는 게 아닐까,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조금 울었다. 지금껏 안달복달하면서 좋은 학생이 되고자 했던 관성에서 벗어나서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보겠다고 선언했는데, 드럼을 칠 때마저도 다시 그 습관 속으로 빨려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전공을 할 것도 아니고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닌데, 기분 좋으려고 시작한 취미생활을 이렇게 심각하게 하고 있다니? 지금 리프레쉬를 위해 악기를 배우고는 있지만, 이왕 하는 거, 나중에 뭐라도 남게. 이게 '시간 낭비'가 아닐 수 있게. 최선을 다해서 또 하나의 '스펙'을 만들어 보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드럼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저 밑에 가라앉아서 생각했던 것들
나는 꽤 오래 우울했다. 착한 아이/좋은 학생이 되고자 나 자신을 잃어버렸던 세월이 너무 아까워서 우울했고, 충동적으로 해 보겠다고 시작한 드럼에마저 같은 패턴대로 행동하고 있는 상황에 우울했고, 이런 관성을 갖게 한 그 모든 어른들과 이 사회가 너무 미워서 우울했다. 적당한 동기부여로 계속해서 기분 좋게 뭔가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칭찬은 보약이다. 그렇지만 이 칭찬이 주는 쾌감에 집착하면서, 인정욕이 행동의 원천이 되는 순간 삶이 불행해지는 것이다. 모두가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우등생이 되는 과정엔 함정이 있다. 행위의 원동력을 '타인의 시선'과 '남들의 인정'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를 타자화시켜 스스로의 가장 혹독한 비평가가 되어 버린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남들이 나를 이런 사람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남들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들이 나의 삶을 규정하게 하면서 지내지 말 걸 그랬다. '타인의 삶을 살지 말라'는 말이 그토록 흔한 것은 그만큼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일 테다. 상담 선생님께선 내게 여기서의 '남'이 대체 누구냐고 물어 보셨다. 그러게요, 막상 누구냐고 물어 보시면...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사실 그 '남'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서 설정해 둔 엄격한 잣대를 나한테 들이밀면서 이 정도는 되어야지, 말하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
나는 드럼을 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이 최대한 '시간 낭비'가 안 되게 하려는 다양한 자기방어 기제를 발동시켰으며, 이 머릿속 공장 가동에 이상이 생기자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드럼에 시간을 버리는 게 아니냐는 엄마의 습관적인 한 마디가 트리거로 작동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는 한정된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보내는 게 가장 옳은 길일까? 20년 동안을 하루하루 이렇게 보내야 한다고 정해 주던 교과서와 선생님의 지도가 뚝 끊겨 길을 잃은 스무살의 어느 날에 했던 고민을 나는 아직도 하고 있다. 지혜가 부족해 나 스스로에게 좋은 게 뭔지조차 모르겠는 나 자신은 너무 작고 무력하구나, 생각하면서...나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취미에 원대한 목적 따위는 없다
이쯤에서 질문. 이런 복잡하고 어두운 생각을 하던 나, 그럼 이 한 달간 드럼을 쉬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지 않았다. 약간의 흥미를 잃은 채로, 마음은 조금 변했지만 몸과 행동은 그대로. 일정한 시간에 연습을 하러 가서 일정한 루틴에 맞게 연습을 하고 돌아왔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갔냐 하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했다. 하던 거였으니까. 드럼을 멈추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는것조차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연습을 지속하는게 더 쉬운 선택이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딱 그 만큼만 했다.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직전에 그만 두고 집에 갔다. 내가 비록 방황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야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는, 그런 목적의식 없는 시간이었다. 잘 하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고 뭔가를 하는 체험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했지만 꽤 마음에 들었다. 좋고 싫다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지 않고 그저 평온한 채로 하루하루 지냈다. 굳이 이 슬럼프를 이겨내야겠다는 생각까지도 종국에는 사라졌다. 우울이 갑자기 찾아와 끝없는 생각의 꼬리를 물게 했듯 그렇게 갑자기 가버릴 것으로 믿고. 우선은 그냥 내 안에 방문한 우울과 공존하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영원히 가지 않고 계속 있을 거라면 그것 또한 어떠하랴는 마음으로 해탈과 체념 그 어느 사이에 있는 상태로 존재한 한 달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내가 왜 힘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그렇게 또 드럼은 내게 중요한 인생의 법칙 하나를 가르친다. 슬럼프는 이렇게 극복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하지 말자. 왜 해야 하는지 거창하고 철학적인 이유로 스스로를 설득할 필요도 없다.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이든, 원래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든 슬럼프/권태기가 오면 딱 거기서 생각을 멈추고, 일단 한다. 몸이 거부하지 않을 정도로만 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왜 괴로웠는지 잊게 된다. <미라클 모닝>류의 책을 읽으면 '행동이 관념에 앞선다'고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일단 마음의 준비와 놀라운 의지력으로 그런 사람이 된 후에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런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을 '일단' 꾸준히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흔한 이야기지만 체험해보기 전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얘기들을 뜻밖의 영역에서 깨닫게 된다.
가치 없는 시간은 없다. 버려지는 시간은 없다. 그 시간을 무엇으로 사용하든 그냥 시간은 흘러간 것이고 더 잘 보낸 시간 같은 건 없다. 그냥 내가 그 순간에 행복했는지 그 순간에 온전히 살아있었는지를 질문하며 매일을 살아가면 될 뿐이다. 그래 이건 취미야, 취미일 뿐이니까 오늘도 가서 재밌게 한 시간만 하고 오자-라는 가벼운 마음이 오히려 슬럼프를 극복하게 했고 레이스를 오래 할 수 있게 한다. 인생도 취미처럼 게임처럼, 부담 갖지 말고 물 흐르듯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