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서울대와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에 다닙니다. 그렇다고 좋은 학교인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제 딸은 서울대는 안(못)가고 의대 갈 의사도 없습니다. (말하고 보니 언어유희?) 의사는 고용하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대치동에 초등의대반이 생기고 비정상적으로 의대 쏠림이 유난한 현 세태에 대해 우리 딸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하여간 경쟁이 아주 치열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전 중간고사 기간이었습니다. 시험 기간 때마다 분위기가 아주 우울합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합니다. 주말에는 나옵니다.
1년이 넘도록 무탈하게 기숙사 생활 잘해 왔는데,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나더니 어제는 학교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더군요. 맘이 좀 아팠습니다.
'아빠가 내일 새벽에 수업 전까지 학교에 바래다주고 출근할 테니 오늘은 집에서 자라'고 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딸아이 학교에서 회사로 출근하려면 2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아빠가 월요일 아침 러시아워에 갇혀 고생할 것을 눈치챈 듯, 아니야 오늘 밤에 그냥 들어갈게 하더니 어제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더니 밤늦게 칙칙한 기숙사 침대 사진을 찍어 가족 카톡방에 올렸습니다.
무슨 1평 반짜리 고시원에 보낸 것 같아 가슴이 좀 아파올 무렵, 다음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우울하고 쓸쓸한 침대가 갑자기 명랑해졌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도 안 가본 길을 걷는 벤처기업입니다. 이것저것 정신없이 시도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동안 쏟은 노력 따위는 아까워하지 말고 재빨리 방향 전환해야 합니다. 잔잔한 호수를 가르는 조정 경기가 아니라 거친 물살을 헤쳐가며 배가 뒤집히지 않게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래프팅 대회 같습니다. 벤처기업의 숙명입니다.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험이 쌓일 때면 우울하고 회사 분위기도 칙칙해집니다.
회사가 가끔은 칙칙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마음속으로는 자기만의 연두/보라색 파자마를 입고 침대에 늘어져 길게 하품을 하며 명랑하게 하루를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