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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윤 Jun 17. 2023

AI 디지털 교과서가 엄마표 영어에서 배울 점

AI 디지털 교과서 프로젝트의 성공을 기원하며

"후보님, 왜 교육 개혁에 대한 공약이 보이질 않죠?"


과거 모 서울시장 후보와의 간담회 때 내가 한 질문이다. 돌아온 답은,


"솔직히 말해서, 어떤 공약을 내세우든 간에 절반은 반대하게 되어 있어 민감한 교육 문제는 언급이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교육 문제는 정치인들이 건드리기 싫어하는 분야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만 어떤 방향으로든 바꿔보려고 시도하는 순간 절반의 표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육 현실이 양극화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와중에 국가에서 AI 디지털 교과서를 추진 중이다. 우선 대상 과목은 수학과 영어. 접근 방법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 우리의 교육을 어떻게든 바꿔 보려고 하는 시도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과거 정권처럼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58000배 낫다.


수학에는 개입할 능력이 안되지만 20년 넘게 영어 문제를 연구하고 임상을 해 온 사람으로서 AI 영어 교과서 분야에는 어떻게든 세금 낭비가 되지 않도록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자, 그렇다면 공교육에서의 영어는 무엇이 문제인가? 정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그리고 진심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일까? 학교장? 선생님? 교육부 장관? 교육감? 장학사? 영어교육학과 교수? 사교육 업계 관계자들? 국회의원? 대통령?


아니다, 바로 '엄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소위 '엄마표' 영어가 영어교육의 큰 축을 이루는 나라가 있을까? 서점에 한 카테고리로 자리 잡은 엄마표 영어 관련 도서들. 한 때의 유행이 아니라 20년이 넘게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엄마표를 넘어 아빠표가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엄빠표 영어를 시작하기 전에 읽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서'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자세히 알아보고자 전수 조사에 들어갔지만 금세 포기했다. 오래전 출간되어 절판된 것을 제외하고 최근의 책들만 조사하려 해도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범람하는 관련 유튜브 채널은 손도 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현재 서점에서 유통되고 있는 엄빠표 영어 도서들 중 일부


<내 아이 영어 이렇게 하면 끝!> <엄마표 영어 20년 보고서> <미래형 엄마표 영어> <우리 아이 영어는 내가 책임진다> <엄마표 영어, 이제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 영어 어쩌죠?> <엄마의 내공으로 영어를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 영어일기 이렇게 가르쳐라> <엄마표 아빠표 영어 공부법> <알파맘 엄마표 영어교육> <현서네 유튜브 영어 학습법> <엄마표 영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땡큐 맘, 엄마표 영어 성공기> <기적의 엄마표 영어> 외 70여 권.


출간된 지 오래되어 절판되거나 내 검색에 걸리지 않은 책들까지 합하면 추측건대 150여 권이 훌쩍 넘을 것이다. 이 중 내가 실제로 읽어 본 책들은 한 20여 권이다.


전 세계 유래 없는 현상. 한국의 엄마표 영어.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 자식은 나처럼 IBM(이미 버린 머리)이 되면 안 돼!


1. 공교육 영어에 대한 기대감이 바닥이다. 자신을 포함, 10년 학교 영어교육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반박 불가다.


2. 그렇다고 사교육을 신뢰하는가? 이 부분은 수학 분야와 다르다. 시험만 잘 보게 해 주면 만족하는 수학 사교육과는 달리 엄마들은 시험 스킬이 아니라 영어를 구사하는 True Skill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공포 마케팅을 일삼는 영어교육 업체들에 피로감이 쌓여 있다.


3. 결국 공교육과 사교육 어디에도 기댈 수 없어 스스로 팔을 걷어붙인 게 엄마표 영어이다. 한 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고 꾸준하다. 이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성공 사례를 엄마들이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기 자식과 관련된 일이다. 내 새끼 일에 나보다 누가 더 진심일 수 있는가? 그래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과 엄마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공교육과 학교 선생님을 비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집에서 엄마가 아이를 붙잡고 하는 것과 학교에서 선생님이 교과부 지침을 준수해 가며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는 분명히 환경적 차이와 한계가 존재한다.


엄마표와 공교육 영어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Pedagogy에 있다.


Pedagogy? 일반 원어민들도 낯설어하는 단어다. '페다고지'라고 읽는다. ChatGPT에게 쉽게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답한다.


'페다고지(Pedagogy)'는 '교육 방법론' 또는 '가르치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이 가장 잘 배울 수 있는지, 어떤 교육 전략을 써야 학생들이 더 잘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과 원리들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엄마표 영어의 Pedagogy가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영어 실력 향상에 효과가 있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학교의 영어 Pedagogy에는 결정적인 게 결여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교육대학을 나오고 교원자격증이 있는 선생님 보다 영어 실력도 떨어지고 자격증도 없는 엄마들의 방법이 왜 더 효과가 있을까? 어디서 결정적 차이가 날까? 엄마표는 선생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 투자되는 시간의 차이라면 학교의 방식대로 엄마표만큼 시간을 쏟으면 아이가 영어를 잘하게 될까?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확연하게 구별되는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학교에는 있는데 엄마표에는 OOO가 없다


OOO은 바로 교과서이다. 엄마표 Pedagogy에는 교과서가 등장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를 집에서 예습 복습 더 시키고 강화 학습을 시켰더니 우리 길동이가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게 되었어요"라는 식의 엄마표 영어 성공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우리 아이는 머신 러닝이 먹히는 LLM (Large Language Model) 인공지능이 아니다.




성공적 영어교육의 중심에는 교과서가 아닌 양질의 Authentic Contents가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엄마표 영어에 예외없이 등장하는 무엇인지 아는가? 문법책과 단어집이 아니다. 바로 리더스 동영상이다. 이 둘을 놓고 볼 때 엄마표에서 가장 도전이 되는 것은 꾸준한 리딩을 독려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 동영상은 오히려 과도한 노출이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이 부분이 AI 디지털 교과서를 통해 학교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다. 엄마도 어려워하는 '수준별' 콘텐츠 제공 및 '맞춤형' 관리.


AI 디지털 교과서의 목표는 수준별 맞춤형 학습 지원이다. 수학 과목은 수준별 맞춤형 문항과 개념 설명이 주가 되겠지만, 영어의 경우는 다르다. 영어 교육의 목표가 시험 고득점이 아닌 영어 유창성 고취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학도 사고력 수학이 목표라고 하겠지만 솔까말 수학은 시험만 잘 보면 대만족 아닌가? 설마 대치동 초등 의대 준비반에서 사고력 수학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영어의 경우는 맞춤형으로 취약 문제를 던져주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AI 수학 교과서와 AI 영어 교과서는 아주 달라야 한다. 


AI 기술로 아이의 수준과 관심사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읽기 책과 - 교과서가 아닌 - Authentic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주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AI 튜터와의 학습에 들어가면 된다. 아무리 질문을 많이 하고 귀찮게 해도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는 AI 선생님! AI 선생님과 읽은 책에 대하여 영어로 대화하고 놀이를 실컷 하고 나면 끝! 이렇게 해야 그다음 책을 읽어나갈 동기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했는가?  해석시키고 외우게 한 후 시험으로 마무리해 왔다. 3단 콤보로 영어교육을 KO시켜 버렸다. 70년 동안 해서 안 됐으면 이젠 그만 좀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새로운 Pedagogy라고 해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여태껏 하던걸 중단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AI 디지털 영어 교과서는 실물 영어 교과서와는 다르게 가장 교과서스럽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 AI 디지털 영어 '교과서'라 불러도 좋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반드시 Pedagogy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야. 영어가 시험 점수로 평가받는 과목이 아닌 절차적 기억으로 습득되는 언어라는 것에서부터 판을 다시 짜야한다. AI 디지털 영어 교과서가 그 판을 새로 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2022년 개정 교과과정에 의하면 영어 교육의 목표는 수능 시험 1등급, TOEIC 900점 이상 획득이 아니다. 더 이상 4 Skill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분류 중심의 훈련이 아닌 이해와 표현으로 접근, 실생활 중심의 영어 의사소통 능력 고취, 진로 적성을 고려한 개별 성장 맞춤형 영어교육 구현이다. 좋은 목표를 정했으니 이젠 실천할 일만 남았다.   

교육부 개정 교과의 방향


AI 디지털 교과서는 에듀테크(EdTech)의 정점에 있다.


Educationd의 Ed, Technology의 Tech. 부디 Tech에 과도한 쏠림 투자로 Ed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에 소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Tech는 그저 거들뿐


중요한 것은 Ed, 즉 Pedagogy에 있다.


끝으로 외국어 습득 이론의 권위자인 Stephen D. Krashen (Univ. of Southern California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겠다.


"Reading은 외국어를 배우는 최고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방법이다."


교육부의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의 성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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