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시험을 잘 보거나 학교 성적이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장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엉덩이가 무거운 석훈이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영어로 '그는 공부를 잘한다'를 그대로 직역하자면 'He's good at studying'이 되겠지만 이 영어 표현에는 위에서 말한 '공부를 잘한다'의 의미가 거의 없다. 더 나아가, 문법적인 오류는 없지만, good at studying은 영미 문화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매우 어색한 표현이다. 그러나 굳이 풀이하자면 공부 솜씨가 좋다는 뜻이다. 공부를 효율적으로 한다거나 노트 필기를 잘하고 정리를 잘한다는 식의 솜씨를 가리킨다. 우리말 '공부를 잘한다'는 영어로 'Shedoes well at school' 또는 'He gets good grades'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운동을 잘한다', '요리를 잘한다', '글쓰기를 잘한다'라고 할 때에는 good at sports, good at cooking, good at writing이 맞는 번역이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good at studying이 아닌 것은 결국 '공부'를 대하는 문화적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공부'라고 말할 때 우리는 '시험', '성적', '입시'를 중심으로 논한다. 언어는 곧 문화일진대, 우리의 공부 문화는 입시나 성적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반면 영어로 studying이라고 하면 공부 습관이나 방법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우리는 '결과', 그들은 '과정'에 관심이 있는 문화적 관점의 차이다.
문화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우리의 '공부' 문화는 안타깝다. 치열한 경쟁과 학벌 획득이 동기 요인이다 보니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남보다 성적이 우월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상대적 개념이다. 생각의 근육을 길러주는 수단으로써의 '공부'는 우리 사전에 없다.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립하여 글로 쓰는, 공부의 회전목마는 멈춰 선 지 오래다. 오히려 자신만의 생각을 기르면 망하는 게 수능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를 시간에 틀린 답을 찾아내는 기술을 익히는 게 효율적이고 그것이 바로 공부를 잘하는 비결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등학교 때까지 독서를 하지 않는다. 교실에서 입시와 관련없는 책을 읽고 있으면 "너 공부 안 하고 뭐 해!"라며 선생이 잔소리하던 때가 얼마 전이다. 내 고딩 시절에는 잔소리가 아니라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손바닥이 날아왔다. 요즘은 스마트 폰 하나씩 손에 쥐고 있어 교실에서 책 읽는 학생을 볼 일이 아예 없다. 그래서 그나마 교실이 평화로운 것일까?
알고 보면 석훈이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바보로 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명문대에 가고 그런 학교 졸업생들이 리더가 되는 국가에서 산다면 어떤 느낌일까? 요즘 내가 느끼는 이 느낌을 당신도 느끼는가? 바로 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