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인할줄 몰랐는데 골인하게 된 이야기
나는 나의 연하 남편을 미국 대학원에 다니던 중 만났다.
인생은 참 재밌는게, 나는 20대 때 직장생활을 하면서 미국에 갈 생각도 없었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며, 연하는 남자라고 생각이 안들어 만난적도 없고 생각해본적도 없었는데, 이 모든 조건에 반대되는 상황에서 결국 평생을 함께할 신랑감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인생은 정말 내가 계획하거나 생각한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20대 중반, 당시 서울의 L호텔에서 3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찾아온 인생의 중대한 결정의 순간에 마주치게 된다. 아버지께서 본인이 다니시는 회사일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들어가 사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딸내미인 나를 한국에 혼자 두는게 걱정이셨던 부모님은, 나에게 한국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대학원에 진학해 같이 미국에 살아보는게 어떻냐고 제안하셨다. 당시 다니던 직장이 너무너무 좋아 죽겠던건 아니었지만 그냥 그럭저럭 다니며 딱히 그만둘 생각은 없었던 나는, 갑자기 찾아온 달콤한 퇴사의 유혹과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에 크게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그 해에 나는 퇴사를 하였고, 먼저 미국으로 떠나시는 부모님깨, 예전에 도전하다 실패한 항공사 승무원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있으니 딱 1년간만 외국 항공사 승무원 취업에 도전해보고 안되면 깨끗히 포기하고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약속드렸다.
그렇게 1년 동안 나는 해외 승무원 취업준비와 미국 대학원 진학준비 그리고 부업으로 미술관 아트샵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해외 승무원 취업준비에 대해서만 따로 글을 써도 될 정도로 나는 이 기간동안 참 많은 외국 항공사에 열심히 지원하고 면접보러 다니며 최선을 다했다. 에미레이트 항공, 카타르 항공, 중국 동방항공, 베트남 항공 등등의 항공사 채용에 지원하고, 우리나라에 채용이 열리지 않을 때는 홍콩과 마카오까지 날아가 그 나라의 오픈데이까지 참여하며 열정을 쏟았지만, 나는 숱한 면접에서 탈락하고 또 정말 아쉽게도 최종까지 올라갔다 탈락하는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런 식으로 1년여 정도 최선을 다했음에도 계속해서 낙방을 하자 나는 어느 순간 승무원 도전에 회의가 느껴지고 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쳤던 2016년 봄, 나는 당시에 같이 준비하던 미국의 한 대학원에 최종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게 그냥 하늘의 뜻이려니 하고 생각하며 그 해 가을 한국 생활을 정리해 부모님이 계시는 미국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Part 1. 연애
그렇게 날아온 미국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대학원 생활을 나는 조금은 슬프고 지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분명 이렇게 다시 공부하게 된게 감사하고 소중한 기회인줄은 알지만, 당시 더 간절하게 원했던 외항사 승무원이 되지 못하고 차선책으로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생각은 나의 기분을 무겁고 가라앉게 만들었다. 여하튼 학기 시작 전, 국제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의 International Student Orientation에 참여하게 된 나는 한 한국 남학생을 만나게 된다. 당시 나는 학교 버스를 타고 있었고 학교에 막 도착해 내리려던 참이었다. 버스가 학교로 들어서자, 오티를 도와주는 재학생들로 구성된 Orientation Leader들이 나오더니, 새로 입학할 신입생들을 환영해주기 시작했다. 그 때 눈에 띈 한 남학생이 있었으니, 샛노란색의 단체복 상의를 입고 아주 밝고 환히 웃으며 버스 안에 있는 신입생들에게 에버랜드 직원마냥 두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해맑게 인사를 해주는 남학생이었다. 그게 남편에 대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나의 첫인상이다. '나는 새로운 시작에 심란해 죽겠는데 저 남자애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참 해맑네' 하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새 학생증도 만들고, 학교에 관한 이런저런 설명회에도 참여하며 정해진 오티 일정을 따라 다니고 있는데, 우리를 인솔해주고 도와주는 그 남학생이 계속 눈에 띄였다. 같이 봉사활동하는 다른 오티 리더들과도 아주 친해보이고 사교성도 좋아보이는게, 저 남학생하고 알고 지내게 되면 뭔가 얻을 정보도 많고 앞으로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3년간의 회사생활로 나름 사회생활의 달인..... 까지는 아니고 그냥 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조금 터득하고 온 상태라, 어느 사회든 사람이 곧 재산이며 잘 다져진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한 생존 필수 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용기있게 그에게 접근해
"저기....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라고 말문을 열며 그와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려보여서 학부생일 줄 알았던 그는 의외로 나와 같은 MBA Hospitality를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같은 대학원생에 같은 전공을 먼저 공부하고 있는 선배라니! 이건 뭐 진짜 친해지면 손해볼게 없는 상대였다. 나는 그에게 당장 급했던 몇가지를 물어보았다. 당시 학교 근처에 아직 집을 못구한 나는, 3일씩이나 진행되는 뭐 별로 중요해보이지도 않는 오티에 3일 내내 참석하기가 힘든 상황이었고, 또 당장 학교 와이파이가 안되서 불편해하고 있었다.
"제가 아직 여기 근처에 집을 못구해서 그러는데, 이 3일동안 계속되는 오티 꼭 다 참여해야해요? 뭐 중요한거 있어요? 솔직히 안와도 큰 패널티 없는거죠?"
"그리고 이거 학교 와이파이는 왜 안되는지 혹시 아세요?"
남편은 당시 신입생들의 오티를 도와주는 입장이라, 오티에 웬만하면 참석하는게 좋다고 계속 얘기해주는데, 별로 자기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나를 보고 '참 고집세고 까칠한 누나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까칠하고 고집센 누나와 결혼까지 하게 될 줄 우리 불쌍한 신랑은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여튼 그를 포함한 한국 인맥이 급했던 나는 또 그에게
"혹시 나중에 한국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리가 있거나 같이 놀게 되는 자리가 있으면 불러주세요~ 아직 아는 한국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외롭네요"
히고 부탁을 했고 그는 안 그래도 얼마뒤 자기가 아는 한국 사람들끼리 신학기를 맞이하여 조촐히 모이는 술자리가 있을 거라며 나를 거기에 초대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우리는 번호를 교환했다. 그렇게 그날 우리 신랑과의 첫만남이 일어났다.
그렇게 며칠 뒤, 나는 학교 근처에 집을 무사히 구하고 첫날 첫 수업을 기다리며 지내고 있는데 그 남학생한테서 연락이 왔다.
"누나 첫수업 000과목 이시죠? 아직도 그 수업에서 같은 책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예전에 그 수업때 썼던 E-book을 누나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대박 세상에 뭐 이렇게 착한 아이가 다 있지? 사실 아직 그 남학생이 진짜 착한지 어떤지 알 수 없어 살짝 경계심을 품고 있던 나는, 그 문자 하나에 모든 경계심이 녹아내리며 감탄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면 자기가 듣는 수업에서 요구하는 교재를 필수적으로 구해야 하는데, 이 대학 교재 책값이 엄청 비싸다. 요즘에는 E-book으로도 구매할수 있는데 이것도 비싼것은 마찬가지이다. 안 그래도 첫수업 교재들을 중고로 사야하나(중고도 비싸다)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데, 내가 먼저 물어보거나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이렇게 책에 대해 언급해주고 쿨하게 이메일로 보내주는 그의 친절함과 배려에 놀라고 감사했다. '내 생각보다 더 괜찮은 아이일수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어서 온 그의 문자
"그리고 저번에 말씀드린 신학기 맞이 한국 사람들끼리 갖는 작은 술모임요, 00날 00시에 00네 집에서 할 계획인데 누나 참석 가능하시면 알려주세요, 부담갖진 마시구요"
또 한번 감탄했다. 이 아이 뱉은 말은 지킬줄 아는 아이구나?! 어떻게 보면 그냥 한 말일 수 있고 그냥 약속만 해놓고 나를 안 부를 수도 있는데, 진짜로 약속을 지키며 나를 초대해주는 그의 모습은 그에 대한 나의 호감을 또 한번 수직 상승 시켜주었다. 사실 이때 '요놈 이쁜건 알아가지고(?) 처음 만나고 나서 나한테 호감을 가지게 되었나 후훗'하는 착각을 아주 살짝 아주 조금 갖기도 했지만, 나중에 남편을 통해 들어보니 자기가 입학할때 한국인들이 별로 없어 자신은 큰 도움을 못받고 맨땅에 헤딩처럼 모든걸 직접 부딪치며 시작해, 나중에 자기 밑으로 한국 한생이 들어오면 잘해주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여서 호의를 베푼 것이라고 했다. 뭐 어쨌든 나는 나중에 그 모임에 참석해 한국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모임은 그 후로도 학기 내내 주기적으로 이루어져, 같이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볼링도 치러가고 맛집도 찾아가고 주말엔 배드민턴도 함께 치는 모임으로 발전해 나갔고, 유학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좋은 어울림의 장이 되었다. 그 모임에 나와 남편은 계속 참석하며 나는 남편과 더욱 친해지고 후에는 썸을 타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 생활에도 적응해가며 남편과도 썸을 타고 있는데, 남편은 알아갈수록 내 예상보다 더 착하고 자상하며 성실하고 바른 사람인거 같아 나는 남편이 나날이 더 좋아지고 있었다. 썸이 무르익고 이쯤되면 이제 사귀자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나는 사귈 생각도 갖고 있는데...... 남편은 아직 별다르게 사귀자는 말이 없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아주 답답해 죽을것 같았는데 어느날 정말로 그를 내 남자로 만들고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큰 결심을 한 그날, 도서관에 있는 그에게 찾아가 내가 할말이 있으니 내 저녁 수업이 끝나고 학교 밖 바닷가 근처에서 만나자는 말을 했다. 남편은 이 때 이미 '아 이 누나가 오늘 나에게 고백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튼 그렇게 들어간 저녁 수업에서 나는 이미 교수님의 말씀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불안하고 초조해 미칠것 같았다. '사귀자는 말을 했는데 그가 싫다고 하면 어쩌지? 아냐 그는 그렇게 거절할것 같지 않긴 한데.... 그래도 싫다고 거절하면 어쩌지? 난 어떤 식으로 사귀자고 말을 해야 하지?' 등등의 생각들로 내 머릿속은 가득차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친구들과 재빨리 인사를 하고 나는 1등으로 부리나케 강의실을 뛰어나갔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리는데 뒤에서 들리는 "누나!!"소리. 분명 내가 바닷가에서 만나자 했는데, 그는 친히 내 강의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마음이 급해 엘리베이터를 향해 질주하고 있던 것이다.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어쨌든 강의실 앞까지 와서 기다려준 그를 보니 왠지 오늘의 고백이 성공할 것만 같았다. 바닷가로 같이 손을 잡고 나가 그에게 사귀자고 말하니, 그는 자신이 나보다 먼저 졸업할게 확실하고 졸업 후 자신은 호주로 갈 계획이 있어서, 장거리 커플이 되어 나에게 상처만 줄까봐 쉽게 용기를 못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인생을 살아봐야 아는것 아닌가? 미래의 불확실한 무언가가 두려워, 나중에 장거리 연애 때문에 힘들어하고 상처받을까봐 현재의 좋은 사람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그런 식으로 비겁한 선택을 하는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런 내 뜻과 생각을 박력있게 그에게 펼치니 남편도 결국 좋다고 하고 그렇게 우리는 사귀는 연인이 되었다.
이렇게 쓰고보니 대학원 생활동안 한국인들과 어울려 탱자탱자 놀고, 술마시고, 남자랑 연애만 한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전과목 A의 성적으로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합법적으로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인 Student Assistant 기회도 잡아 학교의 국제학생처에서 일도 하며 알차게 대학원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미국 대학원 생활에 잘 적응하며 보낼 수 있었던 것을 다 남편의 공으로 돌리고 싶다. 나보다 먼저 대학원 과정을 시작한 남편을 통해 내가 듣게 될 수업들에 대한 꿀 정보들을 얻고, 교재들도 제공받고, 과제에 대한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맨날 도서관에 나가 앉아있는 남편이 보고 싶어서 나도 자연스럽게 맨날 도서관에 발도장을 찍고, 남편 옆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며 발전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남편 주위에는 좋은 외국인 친구들도 많았는데 그 친구들 중 먼저 학교에서 일하던 한 친구를 통해 그 동안 잘 몰랐던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알게 되고, 해당되는 포지션이 오픈 되었을때 바로 지원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이것들은 나의 영어실력과 노력도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지만, 내 옆에 남편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없었다면 모두 힘들었을 일들이었다.
Part 2. 결혼
남편과의 연애는 (물론 투닥투닥 싸울때도 많았지만) 대체로 알콩달콩 즐거웠다. 무뚝뚝하고 애교없는 남자같은 나에 비해 남편은 얼마나 애교도 많고 귀엽던지.... 남편과 있으면 뭘해도 즐겁고, 남편이 하는 말들은 내게 너무 재미있었으며, 남편과 같이 있으면 많이 웃을 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다 좋은데 한 가지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남편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자기는 자유로운 파랑새처럼 살고 싶다느니, 자기는 옛날부터 결혼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니 하는 말들을 하며 나를 열받게 하는 것이었다. 아니 뭐 나도 당시에 이 남자랑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확신이 있던건 아니었다.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거고, 일단은 대학원 생활이 끝나고 졸업을 해봐야 이 남자와의 미래에 더 구체적인 가닥이 잡힐것 같았다. 그래도 사귀는 사이가 그렇듯 우리의 미래에 대한 대화들을 자주 나누곤 했는데, 결혼 얘기만 나오면 이 남자가 아주 얄밉게 장난끼 섞인 말투로
"난 결혼할 생각 없는뒈에~"
"난 자유로운 한마리의 파랑새처럼 살건뒈에~"
"난 고등학생때부터 부모님한테 나중에 결혼 안할거라고 얘기하며 다닌 사람인뒈~"
하며 나를 살살 약올려대는 것이었다 (아오 진짜 주먹이 운다). 아니 어떤 여자가 자기가 사귀는 남자한테 이런 말을 듣고 싶으랴. 물론 그가 책임감 강하고 좋은 사람이며 이런 말들은 장난식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말들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나빴다. 남자가 결혼하자며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이런 얘기나 듣고 앉아 있으니 아주 여자 자존심이 뭉개지는 기분이었다.
참다 참다 어느날, 나는 작은 결심을 하고 그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그의 입에서 아주 그런 말들이 쏘옥 들어가게 하리라' 속으로 다짐을 하며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처럼 그의 집을 향해 돌격했다. 그의 집에 도착해 일단은 여느때처럼 같이 밥을 해먹고 예능도 보며 데이트를 했다. 그러다 얘기중 결혼 생활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는 또 장난끼로 눈을 반짝이며
"난 결혼 안할건뒈~? 결혼 안할거니까 이런 얘기 안해도 되는뒈~"하며 나를 약올리는 것이었다.
옳거니 너 딱 걸렸어. 나는 그 순간 고개를 팍 숙이며 웅크리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한명의 가녀린 여자로 빙의해서 말이다. 항상 "내가 그런말 하지 말랬지~!!"하며 크와앙 불을 뿜어내던 여자의 평소와는 사뭇 다른 반응에 남편은 당황했는지 "왜.. 왜그래?" 하고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울먹거리면서
"아니... 자기는 맨날 나한테 결혼 생각 없다고만 하고..... 실제로 그런건지 장난인건지 나는 알수도 없고.... 여자 입장에서는 사귀는 남자한테 그런 말 장난으로라도 들으면 얼마나 상처인데...."
"대체 그런 마음이면 나랑 왜 사귀는건데? 결혼 생각도 없으면 나랑 사귀는 이유가 뭔데 흑흑"
하고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살짝 감정을 끌어 올려야 했지만 막상 울음이 나오기 시작하니 점점 나도 진짜로 슬퍼져서 울먹거림은 더 심해져 갔다. 남편은 아주 크게 당황한고 놀란것 같았다. 항상 씩씩하고 성격 불같은 누나가 여리고 상처받은 여자가 되어 자기 앞에서 펑펑 울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으랴. 결국 남편은 나를 자기 품에 안으며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앞으로 그런말 안할게"하고 나를 다독여줬다.
내가 그의 셔츠에 내 눈물 콧물을 부비고 묻히며 "그럼 결혼은?"하고 묻자 그는"알았어 알았어 결혼도 할게 걱정마"하고 말해주었다. 예쓰!! 미션 컴플리트! 작전 대성공! 나는 속으로 승리의 브이를 그렸고, 그 후로 남편의 입에서는 다시는 결혼과 관련된 장난스런 말은 나오지 않았으며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결혼을 해서 평생을 함께할 부부가 되었다.
Part 3. 조언
이렇게 연애에서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 나의 스토리를 정리해 보았다. 다른 일반적인 여자들과는 아주 살짝 다른 행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중, 연애에서 결혼까지 골인하고 싶어 고민인 사람이 있다면 내가 내 경험으로 그런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은 "원한다면 쟁취하라"이다. 정말 좋은 남자가 있는가? 놓치고 싶지 않은가? 우리 모두 용기내어 쟁취하자.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나중에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이제 마지막 정리로 결혼할 남자 선택하는 법을 한번 끄적여 보고 싶다. 다행히 내가 아끼는 나의 지인들은 대부분 다 결혼을 하고 베필을 만났지만, 아직 자기 짝을 만나지 못한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마음으로 내 경험을 담은 팁을 한번 써보겠다.
첫째, 함께 있을때 즐겁고 많이 웃게 되는 남자를 만나라
웃음 그리고 즐거운 감정은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함께 있으면 뭘 같이 해도 즐겁고, 말 하나도 재미있게 하고, 웃음코드나 개그코드가 맞아 같은 포인트에서 빵터져 웃을 수 있거나, 아님 나를 배꼽 빠지게 웃게 해주는 그런 남자를 만나라. 나는 이것이 정말 배우자를 선택할때 가장 중요한 1등 요소라고 생각한다. 웃음과 즐거움은 같이 공유했을때 배가 된다. 안 그래도 살기 힘들고 거친 이 세상, 이런 세상을 살아가며 함께 웃고 지낼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고 축복이다.
둘째, 마음이 넓고 먼저 손 내밀줄 아는 남자를 만나라
사랑하는 커플도 당연히 무수히 많이 싸운다. 서로 사랑하기에 서운한 점이 생기고, 서운한 점이 쌓여 서로 부딪치게 되고 다투게 된다. 이때 안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현명하게 싸우는 것과, 싸운 후 잘 화해를 하는 것이다. 마음이 넓고 도량이 커 많은 것들을 품을 줄 알고, 싸운 후 먼저 손 내밀줄 아는 남자는 정말 여자를 사랑할줄 아는 멋진 남자라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우리 커플의 경우도, 싸운 후 대부분 남편이 먼저 마음을 다잡고, 먼저 손을 내밀고 그렇게 화해가 진행된다. 난 그런 남편이 존경스럽고 항상 고맙다.
셋째, 믿음과 신뢰를 주는 남자를 만나라
믿음과 신뢰의 중요성을 아는 남자. 약속의 무게를 알고 약속을 잘 지킬줄 아는 남자. 이런 남자들이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할 수 있고, 나와의 약속 그리고 가족간의 약속도 지킬줄 안다. 결혼을 하기 전인 연인 상태에서는 무수히 많이 싸우고 또 헤어질 위기가 수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나와 약속한 미래를 지킬 줄 알고, 나와의 관계에 신뢰감을 단단히 주는 남자라면 그 남자와는 결혼에 골인할 수 있다. 가수 김현정의 노래 '떠난 너'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함께 하자 할땐 언제고 그렇게 멀리가" 선미 '가시나' 노래에도 비슷한 가사가 나온다. "같이 가자고 약속해놓고 가시나 가시나" 이 가사에 나온것처럼 이렇게 떠나간 남자들, 그들은 결국 내 사람도 아니며 내 짝도 아니다. 그냥 미련없이 자기 갈길 가게 보내버리자. 정말 나와 결혼하고 나와 함께 남은 생을 걸어갈 남자는 내 곁을 지켜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