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떠난 후 엄마는 거실에서 살았다. 아빠 사진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매트리스를 깔고 밤낮없이 커튼을 쳐놨다. 사람이 해를 보면서 살아야지,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없었다. 옛날 드라마를 돌려보던 엄마에게 나는 어느 날 짜증을 냈다. 이런 건 그만 보고 싶어, 앞으로 나오는 걸로도 충분하잖아. 나는 요새 거 좋아해, 노래를 불렀다. 어두컴컴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방을 구해 나가려고 해도 식구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나마 집에 돈 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바깥바람 쐬어줄 사람이 나밖에 없을 텐데. 내가 없으면 장은 어떻게 보나. 나는 내 방만이라도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가 통하게 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차가워진 날씨에 문을 열어놓을 수 없으니 내내 답답했다.
엄마가 소파를 바꾸고 싶다고 말을 꺼낸 건 지난가을쯤이었다. 모처럼 반가웠다. 나는 새로 가구를 들이면 안 쓰는 건 전부 내다 버리자고 했다. 거실에 쳐진 커튼을 활짝 열어젖힐 심산이었다. 엄마는 소파 살 걸 결정하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다리가 너무 짧다는 둥, 등받이가 불편할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아무래도 집을 정리하기가 버거운 모양이었다. 물건을 끄집어내다 보면 묵혀놨던 아빠와의 기억도 떠오를 것이었다. 추억이 깃든 것들을 내놓는 게 꼭 한 번은 필요하겠지만 너무 빠를 필요는 없었다. 엄마의 애도는 진행 중이었나 보다.
이번 할머니 기일에 맞춰 엄마는 큰 이모네 보름을 묵었다. 이모와 이모부가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엄마는 기운을 차려 돌아왔다. 혼자 갔더니 뭉티기를 사줬어 그 비싼 걸, 회도 날마다 먹었더니 배가 불러 죽겠다, 어죽에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더라니깐? 엄마가 먼저 소란을 떠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러고선 미루고 미루던 소파까지 결제해 버렸다. 새 가구가 들어오는 김에 나도 막내와 방을 바꾸기로 했다. 봄이 온다는 신호였다.
며칠 동안 우리 가족은 가구를 옮기느라 바빴다. 집안 가구는 다 원목으로 맞춰놨었다. 옷장과 수납장을 옮길 때 특히 무거웠다.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지만 꾹꾹 눌러 삼켰다. 엄마가 집안을 정리하기로 한 걸 후회할까 봐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귤 하나, 사과 하나를 고를 때도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여기저기 살펴보고 제일 달고 맛있는 것을 골랐다. 원목 가구는 나무 냄새가 나고 고급스럽다고 좋아했다. 장식장을 정리하면서 나는 아빠 상패며 옛날에 사 모은 돌 덩어리, 유리 덩어리들을 싹 버리자고 했다. 엄마가 화를 낼까 봐 순간 겁을 먹었지만 엄마는 별다른 말 없이 그것들을 봉투에 담았다.
거실 가구는 한 벽면으로 정리되었다. 이제는 커튼을 걷지 않아도 맞은편 아파트가 보인다. 도란도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우리의 목소리에 작은 메아리가 울린다. 이 텅 빈 느낌이 어색하면서도 좋다. 길고도 긴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