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덕(항공 덕후)’이 아니다. 항공대에 항공교통을 전공하고 항공사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태어나 한 번도 항덕인 적 없다. 진짜 덕후는 실루엣만 봐도, 엔진 소리만 들어도 무슨 기종인지 딱딱 알아맞힌다던데. 나는 맹세코 비행기에 관심조차 없다. 그저 가까이서 보면 ‘와, 크다’ 운전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비행기 밑동에 ‘와, 낮다’ 할 뿐이다. 어쩌다 이쪽 세계(?)에 발을 들였는지 모르겠다. 이게 다 아빠의 꼬임에 넘어가서다. 역시나 항공사 밥을 먹던 나의 아버지는 어느 날 만 17세의 나를 “야야, 항공대라는 데가 있다더라, 취업도 댓 발로 잘 된 다대”라며 유혹했다. 그때 그 말을 흘려들었어야 했는데. 홀라당 홀려버렸다. 사학자가 되겠다던 나는,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겠다던 나는, 그렇게 어떻게 이 길로 들어섰다.
내가 항덕이었다면 좋았으련만.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일랑 접어두고 커다란 엔진 소리에, 앞코가 열리기도 한다는 비행기 구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보단 좀 나았으련만. 나는 미처 읽지 못한 책의 뒷부분이 생각나 잠 못 드는 사람이다. 어떤 문장은 쓴 이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눈물 찔끔 닦아내는 사람이다. 요샛말로 하자면 대문자 T가 되고 싶은 파워 F형 인간이다.
오늘은 날씨가 썩 괜찮았다. 이틀 동안 지속되던 인천공항 마비 사태는 대충 정리가 되어가는 추세였다. 낮에도 대설이 예상된다는 빅스비Bixby의 말에 집 차는 지하 주차장에 고이 모셔두고 택시를 잡아탔다. 노란색 우산도 빠짐없이 챙겼다. 잔뜩 긴장했으나 9시간 동안 디아이싱(deicing, 항공기에 눈이 쌓였거나 내리면 용액을 뿌려 제빙과 방빙을 한다)을 요청하는 건 타이베이행 항공기 한 대밖에 없었다. 퇴근할 즈음 눈발이 다시 흩날린다는 소릴 들었다. 후단 근무자는 갓 들어온 신입사원이었다. ‘얼른 도망가야지.’ 후배를 앉혀두고 몹쓸 생각을 했다. 그래도 디아이싱만은 맞고 싶지 않아서 후다닥 일거리를 넘겨주었다. “오랜만에 평화로운 분위기, 좋네요.” 이틀 동안 디아이싱 지옥을 맛본 후배는 해탈한 듯 웃었다. 나는 그야말로 럭키비키였다. 난리가 난 이틀을 연달아 쉬었으니 말이다. 오전에도 난데없이 중국 상하이 푸동 공항에서 항공기가 못 나온다는 것 빼곤 별일 없었다.
일을 하고 업무를 배워나가는 건 나름의 재미가 있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에 통장 잔고 쌓이는 기쁨과 식구들 맛있는 거 사주는 뿌듯함이 쏠쏠하다. 먹고사는 건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딴 데’ 눈길을 둔다. 오늘 동기 오빠는 내게 “돈 나올 구멍 없이 그만두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식의 조언을 해주었다. 알아, 아는데……. 오래간만에 파랗던 하늘을 보며 참 속절없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