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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몸몸 (찌는 몸, 깎는 몸, 불화하는 몸)

by 누런콩

요즘 인스타그램에 뜨는 브로멜라인 광고는 나를 미쳐버리게 만든다. 파인애플 30개 양에 달하는 소화 효소가 내 몸의 염증을 분해해 준다고 한다. 두세 달만 열심히 먹으면 적어도 7kg은 그냥 빠진단다. 그만큼이면 앞자리도 바뀔 수 있을 텐데. “오직 여기서만! 선착순 비밀 특가링크”라는 문구에 나는 안달이 난다. 16박스가 15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이지만 이 기회를 놓치긴 싫다. 부작용은 없는지, 간이 망가지진 않을지 걱정하면서 구매하기 버튼을 누른다. 얼마 안 가 단순 변심 사유로 취소를 요청한다. 아무래도 제품에 의존하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자꾸만 늘어나는 몸무게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정석 다이어트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살을 빼는 건 지긋지긋한 나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빠르게 쇼부를 보는 게 좋다. 오만가지 다이어트를 다 해 봤다. 편법이 통할 리 없다는 걸 알지만 혹한다. 저 브로멜라인, 저것만큼은 다르지 않을까? 차오르는 구매 욕구와 싸우면서 나는 피드를 넘긴다.


다이어트에 얼마까지 써봤냐면, 천팔백이다. 1,800원 아니고 1,800만 원이다. 정신과 약을 먹고 급격하게 살이 쪘는데 그 상태로 빠지질 않았다. 몸이 적응하기도 힘들 만큼 단기간에 불어났기 때문에 딱 보기에도 둔했다. 아무리 굶어봐도 안 빠졌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J 업체를 찾아갔다. 상담사는 18주에 천팔백을 불렀다. 머뭇거림도 없이 단박에 카드를 긁었다. 그렇게 얻은 빚은 4년이 지나고 겨우 갚을 수 있었다. J 업체에선 매일 일정한 시간에 같은 양을 먹으라고 했다. 쌈 6개에 밥은 한 숟갈씩. 반찬은 자유롭게 먹되 적어도 2개 이상으로 구성하라고 했다. 센터에 가면 그곳에서 주는 탑과 반바지를 착용하고 인바디 수치를 쟀다. 헐벗고 기계에 올라가는 나 자신이 정육점의 소나 돼지가 된 기분이었지만 어찌하랴. 관리를 받으면 한 번에 500~600g이 빠졌다. 그램 수가 충분히 줄어들지 않으면 샤워를 하도록 했다. 18주 만에 10kg이 빠졌다. 업체에서 애초에 장담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이었지만 안도했다. 이 정도면 뚱뚱하다기보다는 통통한 정도에 그칠 수 있으니깐.


그래도 요요가 왔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생애 마지막 다이어트가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체중 줄이기에 허비하는 것 같아 ‘탈 다이어트 선언’을 했다. 더 이상 다이어트에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마음대로 먹었더니 살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다시 쪘다. 몸과의 씨름에서 벗어나고자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불화하는 몸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얼마 안 가 다시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을 갈망하는 나로 회귀했다. 나는 가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스윙스(뚱뚱한 여자를 빗대어 폄하하는 말)’를 검색한다. 역겹다, 줘도 안 먹는다는 식의 댓글을 보면서 상처받는다. 왜 그러는지, 왜 일부러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려고 하는지 나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살이 쪄도 괜찮다는 반응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어 스스로 몸이라는 굴레 안에서 탈출하고 싶다.


10kg을 감량한다면 만족할까? 20kg을 줄이면 더 이상 숫자에 구속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될까? 모르겠다. 아주 높은 확률로 나는 더 마르고 '보기 좋은' 몸을, 남자들에게 욕망당하기에 더 유리한 몸을 원할 것 같다. 거의 매일을 내가 뚱뚱해서 남자들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면 연애를 영영 포기하게 될 것 같아 무섭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싶다. 그런데 남자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기도 하다.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나는 좋아하지만 남자들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나를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7년째 감감무소식이다. 몸을 계속 깎고 다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먹는 걸 제한하고 땀을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튼튼하지만 정신적으로도 그러하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제는 새끼손톱의 반만큼도 되지 않는 적은 양의 약만 복용한다. 예전보다 몸집이 커지긴 했어도 그건 행복이 찐 거니 괜찮다. 잘 먹고 잘 생활하고. 이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수많은 여성이 자신들의 몸에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허리가 더 잘록했으면 좋겠다, 종아리나 승모 근육은 없었으면 좋겠어, 팔뚝 살이 너무 튀어나온 건 아닐까? 고민한다. 그들은 자주 끼니를 거른다. 굶다가 굶다가 허덕이며 음식을 찾는다. 몸에 있는 지방이 다 녹아내리길 바라면서 뛴다. 애써서 몸을 움직인다. 그게 그들에게 순수한 즐거움이라면 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나는 그들에게 나의 진심을 담아, 나의 낮은 목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모습 그대로 당신은 이미 아름답습니다,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어쩌면 그건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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