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비 Nov 15. 2020

지하철 5번 출구 (하)

수필, 에세이

(상)에 이어서


유비



이른 나이에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 내가 처음 경제 활동을 시작했던 건, 명절에 친척들에게 용돈을 받는 것을 제외한다면 분명 고등학교 3학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나도 내 힘으로 돈을 벌어보겠노라고 큰소리를 치고 집 근처 고깃집에 입사했다. 스스로 식당 문을 두드려가며 일자리를 구한 게 아니고 반 친구에게 물어물어 부탁해서 들어간 자리였다. 겉으로는 패기로웠지만 사실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그토록 낯을 가리고 조심성이 많았는데, 저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학생은 벌써 세상에 나와 자기 힘으로 돈을 벌고 있다. 내가 평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저 작은 친구가 하는 모습에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자그마한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언제 또래보다 더 용기 있게 살았던 적이 있는가? 나는 언제 주변인이 인정할 만한 경제활동을 해본 적이 있는가? 물어볼 순 없지만, 전단을 돌리는 친구도 지금 전단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한 행동은 고작 다가가서 필라테스 전단 하나를 직접 받는 것이었다. 학생 입장에서는 왜 내가 먼저 다가와서 전단을 받아 갔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다니지도 않을 필라테스의 전단을 굳이 먼저 다가가서 받은 이유다. 모든 행동에는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이번에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께서 내 앞을 지나가신다. 할머니들의 머리를 하고, 할머니들의 헐렁한 분홍 꽃 티셔츠를 입고, 할머니들의 헐렁한 고무 바지를 입고 지나가셨다. 조금은 억울하다. 모든 할머니가 같은 옷을 입고 다니셔서 나는 할머니들의 옷을 입은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지금은 뵙기 힘든 친할머니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많아지시고 고부 관계로 상황이 좋지 않아 따로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친할머니와 헤어지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그런대로 관계가 괜찮았다. 매일 아침저녁 밥을 해주시던 할머니는 내가 집에서 할머니를 놀라게 하려고 숨을 때마다 어김없이 화들짝 놀라주셨다. 할머니를 놀리는 일들은 집에서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던 일 중 하나였다. 엄마와 친할머니 사이의 모든 일과 그 속마음은 내가 알 수 없지만, 잘잘못을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 푸는 것보다는 버리는 게 현명할 시커멓게 떼 탄 이어폰 줄처럼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상처를 준 할머니가 큰 집에서 생활하신다는 것에 동의했고, 할머니에게 상처를 준 엄마에게는 담담히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뭐 어쩌겠는가. 그 시절 나는 나의 욕심으로 두 엄마가 상처받기보다는 모두가 같이 내려놓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알 만한 나이였다. (고부 갈등의 원인은 할머님의 치매 초기 증상 때문으로 유추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제 등 굽은 할머니가 내 앞을 지나가는 단 몇십 초 만에 나는 몇 년간의 일을 순식간에 모두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치의 일들을 한순간에 회상해내는 것은 어른들이나 하는 고상한 능력이었는데, 나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나 보다. 지하철 출구 앞. 내가 사람들을 관찰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 벌써 수많은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내가 사는 곳은 번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퇴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는 혼자 사는 분들이 많을 텐데, 나는 그분들은 매번 저녁을 직접 요리해 먹는 것인지 궁금하다. 만약 대부분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번거롭지만 직접 요리하고 뒷정리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며 지낸다면 나도 그렇게 지낼 의향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 평균 정도의 부지런함으로는 살고 싶기 때문에 진심으로 그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싶다. 한 끼를 위해서 여러 가지 채소와 재료들을 사서 손질하느냐고. 항상 다 먹지 못해 곰팡이가 핀 식자재를 인상 쓰며 치우느냐고. 혹시 모르겠다. 지나가는 분 중에 요리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그분들은 아마 집에서까지 요리하진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간편하게 배달 음식을 시킬 텐데 그렇기 때문에 요리사의 직업은 요리사들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지하철 입구에 서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이제 이런저런 생각을 접어둬야겠다. 


우르르.

‘띡’  ‘띡’  ‘띠딕’


1초


2초.


(손을 흔들며) “어..!! 마누라!” (미소)


 사실 나는 지하철 입구, 그곳에 서서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하철 5번 출구 (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