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비 Nov 18. 2020

동동국수집 (상)

수필 에세이

유비


동동국수집. 대기번호 48번. 

 어쩌다 보니 국숫집 앞에 서서 한동안 내린 장마로 정신없이 불어난 강물을 쳐다보고 있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분당은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다. 하지만 분당과 가까운 이곳은 비가 오지 않는 걸 보면 곧 폭우가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폭우가 쏟아지면 내 눈앞 펼쳐진 강에 보템이 되고, 이 강은 이대로 흘러내려 가 우리가 아는 한강이 된다. 


 한국에서 가장 긴 강인 낙동강은 그 경로가 대구를 지나 부산을 통해 남해로 흘러간다. 결국 남해 물의 일부가 사실 강원도 태백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좀처럼 이 사실을 나는 믿기 힘들다. 직접 보지도 못한 물이 한 나라의 끝에서 끝으로까지 흐르고 있다는 건 교과서로 보나 지도로 보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의 물은 머지않아 한강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한강 변 도로를 따라 올라왔기 때문이다. 사람은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믿는다. 문제는 잘못 본 것도 믿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온 곳은 팔당이다. 실제로 한강의 출처를 볼 수 있는 가장 고도가 바로 이곳 팔당이다. 


 팔당에는 팔당댐이 있다. 팔당댐은 수도권 홍수 방어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하고 있어서 팔당이 넘치면 수도권의 한강 변 시가지는 피해를 본다고 한다. 지금 흐르는 물살을 봐도 심상치 않은데 일기 예보대로 다시 비가 오고 또 온다면 눈앞의 강물은 머지않아 한강 주변 도로를 덮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곧 분당에 내리던 비가 올라와 이곳에도 내릴 예정인데, 한강은 그 수위를 감당하지 못할 예정이다. 나는 몇 시간 뒤 한강이 어떻게 될지 알게 되었다. 무언가의 정해진 미래를 알게 되면 기분이 묘하다. 스스로 조금 더 많은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예보대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사실 국숫집 앞에 서 있게 된 이유는 운전을 하다 비가 올 것 같아 가까운 식당 주차장으로 비를 피해 들어온 것이다. 이곳은 팔당유원지 주변으로 유명한 식당들이 밀집해있다. 그리고 동동국수집은 칼국수를 먹자는 이설씨의 의견에 비를 피해 재빨리 들어온 곳일 뿐이다. 우리 뒤를 따라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상황이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나는 스스로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이 식당은 최근 [맛있는 녀석들]에 방영되어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던 것이다. 먼저 도착한 손님들은 하나같이 손에 흰색 대기 번호표를 든 체 자신들보다 뒤늦게 도착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나 경험하는 '뻘한' 상황이다. 어느 곳이든 먼저 줄을 선 사람은 정해진 미래를 알게 된다. 더 늦게 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자신들이 기다려온 시간만큼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자신들은 이미 위를 따듯하게 채우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좀 전에 잠깐 말했지만, 정해진 미래를 알게 되면 독특한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모종의 우월감에 휩싸여 늦게 온 사람을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한다. 선착순으로 텃세를 부리는 것이다.


  나는 티비에 나온 식당을 피하는 편이다. 나의 업무 특성상 회사에서 마케팅을 많이 접하다 보니, 대중에게 노출된 식당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식당의 음식에 대한 진실성보다는 식당 사장님의 자본력이다. 만약 그 자본력이 음식에 고스란히 녹아들 수 있었더라면 ‘생생정보통 방영’ 이 아니라 ‘장인이 운영하는’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요리사가 아닌 사장님들은 자신의 가게에 장인이 없다는 것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있다. 연예인들이 미식가이거나 내 가족은 아니라서 그들의 음식평은 내가 특별히 공감할 것이 없다. 공짜로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다면, 돈을 받고 먹는 음식은 맛이 없을 수 없는 음식이 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홍보된 식당에, 그것도 줄을 서서 먹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 


 나는 줄을 서서까지 무언가를 기다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비 속을 달리느니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기로 했다. 대기 번호 48번. 3분 전에 호탕하게 웃으면서 들어간 가족은 32번. 16팀이나 더 남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마음을 여유롭게 먹었다.


 은박지가 깔린 나무 벤치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비가 쏟아지는 밖을 바라봤다. 벤츠 S500이 진흙탕 위에서 이리저리 각을 재다가 주차를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회장님과 사모님이라고 불러 드려야 할 것 같은 두 분이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며 차 안으로는 비가 제법 들어갔다. 우산으로 막지 못한 비는 사장님의 옷에 튀었다. 사장님과 사모님은 질퍽하고 진득한 진흙을 가로질러 이리로 왔다.


(하)에서 계속

작가의 이전글 지하철 5번 출구 (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