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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자 Jan 02. 2020

딸에 대하여

김혜진 '딸에 대하여'


 엄마는 자주 그런 표정을 지었다. 내 딸이 피해망상이 있나. 왜 나한테는 남 일에 신경 끄라면서 자기는 저렇게 남 일에 신경을 쓸까.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 하긴 젊어서 뭘 모르니 그러겠지. 자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 이는 카톡으로 ‘…’라고 표현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거겠지. 말로는 ‘아휴.. 또 지랄이네.’로 표현될 수 있다. 

 엄마는 강원도 가난한 집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11살 때 돌아가셨다. 유일한 아들이자 장남이었던 외삼촌이 집안의 실세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그는 권력의 중심이었다. 외할머니는 항상 아들의 밥상을 따로 차렸고, 아들의 밥상에만 김을 올려줬고, 아들이 멀쩡히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평생 나물 팔아 차곡차곡 모은 돈을 몽땅 갖다 줬다. 바로 밑의 큰 이모는 그런 이런저런 이유로 항상 외삼촌과 외할머니와 싸우고 화를 냈다. 하지만 작은 이모와 우리 엄마는 큰 이모가 성격이 너무 드세고 싸우려 든다며 흉을 보기 일쑤였다. 아마 그때부터 엄마는 부당함에 싸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엄마는 23살이 되어 무려 서울의 ‘고려대학교’에 다니는 경상도 중산층 출신의 장남을 만나 결혼했다. 이유는 강릉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강릉에서는 영숙이가 시집을 엄청 잘 갔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고, 초등학교 때부터의 친구는 질투가 나서 엄마와 연락을 끊었다. 지금 이렇게 살게 될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결혼하자마자 딸이 나왔다. (이 딸은 놀랍게도 나중에 보수적 집안에서 스스로 퀴어 페미니스트임을 알게 된다.) 남편은 집에 안 들어오는 주제에 밥타령, 절약 타령하는 남자였다. 쏟아지는 눈꺼풀을 하고 애를 업고 다녔지만, 이게 우울증 인지도 모르고 가끔 애를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엄마는 나름 백화점에서 새댁 소리 들으며 쇼핑하는 게 좋았다. 여자의 행복이란 그런 거라고 믿기도 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했다. 4년 뒤 아들이 태어나고 드디어 시댁에서의 구박을 면할 줄로만 알았지만, 아들만 낳으면 모든 해주겠다던 시댁에서는 금방 그 말을 싹 잊고 며느리가 우리 아들 돈으로 차를 샀다는 소리나 했다. 그래도 엄마는 여성스럽고 고운 딸과, 남성스럽고 듬직한 아들을 키우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딸이 어렸을 적에는 말을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가르치지도 않은 영어를 혼자 달달 외우길래 얘가 천재인 줄 알았다. 아들은 귀엽게 생긴 얼굴에 애교가 많으니 그걸로 되었지만, 못생긴 딸은 확실히 공부를 시켜야 했다. 얘가 우리 집안을 살리겠구나 했다. 엄마처럼 남편에, 세상에 자격지심이 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어 꼭 명문대를 보내고 말겠다 생각했다. 똑똑하고 어른스러운 자식을 키우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클수록 성숙한 딸의 모습에 의지가 되어 밤이 되면 딸의 품에 안겨 울며 잠들기도 했다. 근데 딸이 더 크니 말을 잘하는 게 너무 싫다. 따박따박 지지 않고 말대답하는 게 평생 참는 게 최고라고 여기던 엄마의 복장을 터지게 만들기 일쑤였고, 가끔은 그 말이 너무 맞는 말이라서 더 화가 났다. 엄마가 평생 믿어왔던 것들을 딸은 고작 십몇 년밖에 안 산 주제에 부정하고 화를 냈다. 딸은 스무 살이 끝날 무렵 처음 집안을 뒤집어 놓을만치 반항을 하고 엄마의 곁을 떠났다. 

 그동안 딸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생각을 했다. 4년 동안 10번이 넘는 이사를 했다. 살아보고 싶은 곳에는 다 살아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다 만나보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당장 오늘 시작했다. 내가 평생 알아온 세상이 너무 작았다는 걸 알아버렸다. 반면, 엄마는 그 사이 남편이 쫄딱 망하고, 시댁으로 이사를 가 가게를 하나 차렸다. 근데 1년도 안 되어 남편은 좀이 쑤시는지 자기만의 일을 찾겠다고 서울로 가버렸다. 아들은 시골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며 혼자 서울의 고등학교로 가버렸다. 시어머니와 둘이 살게 되었다. 갑자기 가장이 되어 4집 살림하는 식구를 먹여 살렸다. 하루 13시간 근무, 한 달 2번 휴무. 딸은 엄마가 불쌍해져 자주 안부전화를 했다. 좋은 게 있으면 집으로 택배를 부쳤다. 엄마는 딸에게 예전 그때처럼 다시 의존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다시 딸의 아기가 되었다. 엄마는 딸에게 하루에 20번씩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밥으로는 뭘 먹었는지, 점심으로는 저녁으로는 뭘 먹었는지, 잠은 몇 시에 잤는지까지 알고 싶었다. 오늘 시어머니가 당신에게 무슨 소리를 했는지, 가게에서 어떤 손님이 당신을 힘들게 했는지 다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다 또 딸이 엄마 곁을 떠났다. 사실 딸은 이미 충분히 힘든 삶을 살고 있었기에 두 명분의 고된 삶을 안고 갈 수는 없었다. 

 딸은 그때, 독일에 살고 있었다. 매일매일 여자라서, 동양인이라서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장난’이라는 이름의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상이 서바이벌이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행복했다. 한국사람의 눈을 피해 처음 여자와 데이트도 해봤고, 외국인 남자와 사귀기도 했다. 공황장애에 걸리기도, 우울증이 걸리기도 했지만 (딸의 공황 트리거 중 하나는 엄마에게서 오는 전화였다.) 우울할 시간조차 여유조차 없는 이 전의 삶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이 것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여기 오니 너무 당연히도 부당한 일이라고 일컫어졌다. 퀴어 여성모임에서, 채식주의자 친구들끼리, 독일에서 예술하는 한국인 모임에서, 같은 사람끼리 같은 일에 화를 내보기도 하고, 세상의 나쁜 일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법도 배웠다. 거기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니까. 유럽의 친구들은 딸이 속상한 이야기를 해도 ‘네가 참아’, ‘다 그렇게 사는 거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온라인 속에서 소심하게 세상일에 조금씩 개입하던 딸은 화가 많은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딸은 자꾸 싸웠다. 엄마랑도 싸우고, 아빠랑은 말도 안 섞었다. 동생과도 싸우고, 택시기사와도 싸웠다. 너는 왜 이렇게 지랄을 하니. 딸은 자꾸 울었다. 딸과는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당한 일에 자기가 대신 울었다. 딸은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믿었다. 젊은 사람의 치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딸이 연애도 하지 않고, 안정적인 삶도 꿈꾸지 않는다. 누가 여자라는 이유로 연애나 미래에 관해 가볍게 농담을 던지기라도 하면 바로 치고받는다. 근데, 생각해보니 엄마도 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었다. 기가 센 여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엄마도 당신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엄마는 딸이 집에 남기고 떠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평생 안 읽던 책을 일주일에 다섯 권씩 읽었다. 일단, 에이즈가 동성애 때문에 생긴 병은 아니라는 걸 알았고,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고 미친 사람인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당연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책이 나오는 걸 보면, 어쩌면, 세상은 진짜 달라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엄마는 딸이 싸우는 건 싫다. 하지만, 엄마가 이제 꿈꾸는 딸의 미래는 능력 좋은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둘 정도 낳고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긴 채 출근하는 장면은 아니다. 딸이 얼마 전에 이야기했다. 전에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막연히 내가 할 것이라는, 하고 싶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놀랍게도 결혼에 대한 확신만 사라졌다고. 아이는 꼭 기르고 싶단다. 정자 기증을 받든 입양을 하든 아이는 꼭 길러보고 싶단다. 그 건 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빠 없이 자란 그 아이는 무슨 죄냐고 물었다. 딸은 나쁜 아빠가 있을 바에 없는 게 낫다며 ‘정상가족’을 강요하면 누군가 상처 받게 된다고 말했다. 아, 나도 정상가족에서 자라지 않았지. 초등학교 때 나한테 아빠 없는 애라고 놀린 그 년, 내가 너처럼 우체국에서 편지에 도장이나 찍는 아빠는 필요 없다고 했지. 어쩌면 그런 건 다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딸에게 처음 말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정말 꿈꾸는 너의 미래는 네가 행복한 것. 그것 하나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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