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예비군 졸업+민방위 8년차 짬
2023년 3월, 나는 생존 배낭 싸기에 미쳐 있었다.
사실 생존 배낭을 싸야하는 이유를 당시에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일단 이거를 지금 당장 준비 해야겠다는 의지만 강했기 때문에, 나는 네이X와 쿠X을 종횡무진하며 온갖 희귀한 생존 물품들을 사재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미친 구매행동은 전혀 계산적이지 않고 완벽한 무의식의 흐름대로 이루어졌는데, 그러다보니 아주 재미진 물품들을 구매하게 되었다. 몇몇 생존 도구들을 소개해 보자면,
• 수동발전 라디오와 무전기: 처음 생각이 든 것은 만약 비상 상황에서 살아남는다면 라디오와 무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라디오, 무전기를 통해 다른 생존자와 만나는 미드 <워킹 데드>,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본 영향일 것이다. 물론 나의 밀덕 기질도 한 몫을 했다.
• USB 라이터&태양광 충전기: 모든 생존에는 불이 필수다. 그런데, 전통적인 발화 생존 도구들 – 성냥, 가스 라이터, 부싯돌 등에는 너무나도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안전하고, 편리하고, 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USB로 충전되는 라이터와, 그 라이터를 충전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찾아내었다. 근데 이렇게 해놓보니, '어 이거 거의 무한 동력인데? 와씨 난 천잰가봐'하는 자뻑에 취할 수 있었다.
• 호신용 최루총: 만약 재앙이 발생하고 세상이 망한다면, 분명 모든 대화에는 말보단 폭력이 우선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럴때 우리 가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일단 나는 아내와 아이가 있기 때문에 내가 나서서 싸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도망을 가야한다는 건데, 그러려면 무뢰한들로부터 시간을 벌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일본 만화책 <아임 히어로>처럼 총기 자격증 및 구매를 찾아보았으나 자격증 따는 과정이 너무 귀찮았고, 결정적으로 한국 법 상 총은 평소 무조건 경찰서에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긴박한 상황에 바로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또 다시 광란의 웹서핑 끝에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호신용 최루총이었다. 호신용 최루총에도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었는데, 내가 찾아낸 녀석은 발사에 가스가 필요하지 않는 물총식 발사 방법에, 최루액 발사 구멍 위에 위치한 라이트(영화 <킥 애스>를 본 사람들은 왜 이게 필요한지 알 것이다), 그리고 비상 싸이렌+도난 방지 기능을 갖춘 신박한 녀석이었다.
나는 이 엄청난 기능을 가진 물건에 감탄하며 네이버 상품후기에 굉장히 호의적인 구매후기를 남겼고, 판매자님(대표님으로 예상된다)은 내 글을 스토어 PICK 베스트 리뷰글로 지정해 주었다.
• 방독면: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살아남은 후가 중요한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 자체가 더 중요했다. 만약 우리 아파트 근처에 미사일이 떨어져서 아파트에 불이 나거나 한다면 어떡할 것인가? 그러면 최루총을 써볼 기회조차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 신박한 최루총을 쏴 갈기며 엑스터시 넘치는 런어웨이를 경험해보려면 우선 살아남아야 했다. 만약 아파트가 폭격 당해 불이 난 상황이라면, 지상까지 내려가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방독면이었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방독면을3개 구매했다. 그리고 불이 났을 때 난간인 문 손잡이를 잡을 수 있도록 방염 장갑도 구매했다. (만약 닫힌 문에서 불이 났다면 대피자는 문 손잡이가 뜨거워진 것을 모르고 문을 열게 되고, 그 순간 즉시 반대편 불이 열려진 틈의 산소를 만나 급속 산화하면서 대피자는 손에 화상을 입은 것도 모른채로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이렇듯 상당히 재미난 아이템들을 많이많이 구매했는데, 표면적인 이유로는 새로 집권한 윤석열 정부와 북한 세력의 강대강 대치에 의한 전쟁 발발 가능성의 고조(때마침 작년 11월부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실제로 진행 중이었다) 때문이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나의 생존이 위협당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나의 인생은 오랫동안 ‘생존’을 꿈꿨다. 행복도 아니고 생존을 꿈꿨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나에게는 정확한 묘사이다. 왜냐하면 나는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중증 이상의 주요 우울증 삽화(Depressive Episode)를 3차례 이상 경험한, 우울증을 지병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많은 날들을 실제로 죽을 뻔했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훨씬 더 많은 날들을 죽기를 바라며 지내왔다.
우울증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죽고 싶다’라는 기분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내 의견이 아니라 10년 지기 친구가 최근 만난 자리에서 나에게 고백한 내용이다.
“형, 옛날에는 형이 우울증에 걸리면 죽고 싶다 말하는게 이해가 안됐는데, 요즘 제가 그걸 느끼고 있어요.”
오랜 시간을 거쳐 내가 깨달은 바는, 누군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사람이 정말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말이다. 비록 질병, 고민, 현실적 문제 등으로 지금 당장은 죽는게 편할 것 같아서 하게 되는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가 정말로 살아남고 싶고, 살아가고 싶다고 하는 무의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상기 전쟁에 대한 두려움도 분명한 동기가 되었지만, 진짜는 내가 최근에 겪은 공황장애가 제일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작년 5월, 회사에서 승진한 나는 나와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어떤 자존감 낮은 파트원(쉽게 화를 내며, 분노를 조절 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본인을 따돌리거나 피해를 주고 있다는 피해 의식을 가진 사람 - 안타깝게도 본인은 본인이 얼마나 힘든 마음으로 사는지, 얼마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에게 7개월 동안 시달림을 당하면서 기어이 공황장애라는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공황장애는 기본적으로 호흡곤란, 두통, 전신 통증, 극도의 불안 등을 수반한 질병인데, 어떠한 일련의 사건으로 본인의 생명에 위협을 느낀 교감 신경이 호르몬 분비에 이상을 일으키며 발병하게 된다. (교감 신경은 우리의 생존을 관장하는 신경계이다)
그렇게 이번에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그 부작용(?)으로 생존 배낭을 싸게 된 것인데, 주목할 점은 이번에는 과거의 우울증과 분명 다른 특이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의 사랑하는 가족, 즉 아내와 딸이었다.
나는 단순히 나 혼자 살자고 생존 배낭을 싸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내 삶에 있어서 내 와이프와 내 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모든 것이 되었기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 가족을 살리기 위한 방도를 엄청나게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로 몇 가지 재미난 재난 상황 하 행동 프로토콜을 만들어냈다. 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 나는 회사, 와이프는 일터, 딸아이는 어린이집에 있을 때 상황 발생을 가정해 무전기 2개를 구입했다. 첫 번째 행동 프로토콜은 ‘재난 발생 시 집으로 집결한다’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모두 차로 20분, 도보로도 1시간 이내에 일터가 있었고, 나보다 와이프가 집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와이프가 딸 아이를 챙기고(딸 아이는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다닌다), 집에 도착하면 신발장 창고에 보관 중인 생존 배낭과 무전기를 챙겨 대피한다.
• 무전 암구어도 만들었다. 우선 통신명은 아빠는 개구리, 엄마는 감자, 아이는 토끼 이런 식이다. 신원 확인을 위한 암구어는 몇 가지 질문으로 이뤄져 있는데, 우리 가족만 답을 알 수 있는 질문들이다.(무전 예: 당소 개구리, 감자 응답하라. 우리 가족의 첫 번째 거주지는 어디였는가?)
• 만약 한 쪽 그룹이 계속해서 연락이 안될 경우, 무전기 1개는 집에 놓고 첫번째 집결지로 향한다. 첫번째 집결지는 식수 및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송도 센트럴 파크역으로 정했다. (센트럴 파크역의 장점은 실제 재난 대피소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리하는 비축 구호 물자가 있으며, 기본적으로 공원이므로 주변에 중요 군사 시설이 없기 때문에 적의 공격 대상이 될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 10일 이상 서로 연락이 안될 경우, 생존 그룹은 2차 집결지인 시흥 아울렛으로 출발한다. 송도는 기본적으로 섬이기 때문에 북/동/남 세 방향으로만 탈출이 가능한데, 남쪽으로 도보로 1~2일 내에 이동이 가능한 적절한 거리에 생존 물자가 있을 확률이 높은 적당한 위치가 시흥 아울렛이었다)
이러한 나름 흥미로운(?) 프로토콜을 만들면서 실제로 가족끼리 비상상황에 대한 예비 훈련도 시행했었다.(Feat. 예비군 졸업+민방위 8년차 짬)
아무튼 이 생존 배낭 싸기 프로젝트도 끝은 있어서, 더 이상 살 것이 없어지자(...) 나는 생존 배낭 싸는 것을 중단했다. 더불어 몇 개월 간의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와 운동 끝에 상태가 호전 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불안감도 사라졌기에 생존 배낭에 대한 집착도 자연스럽게 잊혀졌고, 유물처럼 우리 창고에는 풀세팅된 생존 가방 두 개가 남았다.
내 최근의 경우는 다행히 중증이 아니었기에 ‘생존 배낭 싸기’ 정도의 해프닝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2003년 이후 2016, 2017년 단 두 개 연도를 제외하고 부동의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정신 질환이 건강 관련 문제 중 가장 큰 이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은 개인의 의지 문제이며, 환자 당사자조차 "정신 병원"에 가는 것을 수치스럽거나 내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걸 인정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 질환은 다른 대부분의 다른 질환들보다 초기 발견 및 치료 시 예후가 좋은 질병이다.(출처) 그리고 반대로 세 차례 이상 발병을 했다면, 살아가는 나날 동안 재발할 확률이 90%가 넘는 질병이기도 하다.(출처)
그러니, 주변 사람들 중에 마음이 조금이라도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멱살을 끌고서라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려가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언뜻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당신의 이 행동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정말로 살고 싶어하고, 살아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P.S. 내 ‘생존 배낭 싸기 프로젝트’의 총 구매 비용은 1,255,840원이었다.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