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스타일의 영화 1편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가버나움>은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15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의 감독은 레바논 출신의 나딘 라바키 라이며 영화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다. 오랜 내전으로 국가는 엉망이 되고, 음지에서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어느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보여준다.
감독은 빈민가의 사람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논픽션의 스타일을 차용했다. 요란한 촬영이나 편집을 하지 않고, 그저 담았다. 모든 장면들이 감독의 의도대로 카메라 앵글 안에 구성된 것일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적으로 촬영하고 편집했기 때문에 작은 아이가 보여주는 영화 속 세상은 현실인양 다가왔다. 처음에는 나도 장르가 드라마로 되어있는 이 영화가 픽션이 들어간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렸다. 근데 이는 애초에 모호한 걸 의도한 영화였고, 보다 보면 이는 그리 중요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 속에서는 개연성만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말도 안 되는 일도 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이들의 삶은 ‘말도 안 되는’ 삶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말도 안 되는’ 삶이 현실이라는 것을 감독은 영화 전반적으로 말하고 있다. 마치 “지금 내가 보여주는 것은 픽션이지만, 놀랍게도 논픽션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관객들은 현실감으로 가득한 이 영화를 보면서 차라리 픽션이길,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이길 바랄지도 모른다.
감독은 보여주고자 하는 현실을 담기 위해 인물의 심리 상태나, 상황의 묘사를 위한 (감독의 의도가 들어간) 배경 음악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영화 안에는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현실감 있는 소리들로 가득하다.
감독은 진솔하게 담았다. 작은 아이를 둘러싼 무심한 배경이 드러나고, 그가 살아가는 세계가 온전히 관객들에게 닿는다.
카메라는 난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아니라 난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그들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지, 이들이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를 무섭게 체험할 수 있다.
<가버나움>은 레바논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출생 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소년 ‘자인’의 이야기다. ‘자인’ 역을 맡은 자인 알 라피아는 실제로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배달 일을 하던 빈민 어린이며, 감독이 연기한 ‘나딘’ 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레바논의 빈민가에 실제로 거주하던 사람들이 캐스팅되어 연기한 것이라고 한다. (에티오피아 난민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요나스’의 ‘보루외티프 트레저 반콜’ 등) 보고 있으면 인물들이 배우에 의해 입혀진 캐릭터로 느껴지지 않고, 현실 속 사람들처럼 보인다. 인물의 이름도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프레임 안에 배우가 역할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배우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연기라는 것은 어느 정도 허구성을 지닌 것임에도, 어린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는 진실하고 현실적이었다. 또한 감독은 비전문배우들을 위해서 '액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촬영을 시작하며 유연하게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가버나움’은 성경에 나오는 지명으로, 그곳에선 다양한 기적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잘못을 회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가버나움’은 ‘기적이 많이 일어났지만 결국에는 저주받는 지역’ 혹은 ‘기적과 혼돈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태’를 말한다고도 한다. 이 영화에서 ‘기적’과 ‘혼돈, 저주’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필자는 ‘기적’에 초점을 맞춰 제목의 의미를 생각하고 싶다. 혼돈의 현실(영화) 속에서도 새로운 기적이 다시금 일어나기를 바라는 제작자의 의도가 담긴 제목이 아닐까.
자인이 연기한 ‘자인’은 참 예쁜 눈을 가진 아이다. ‘가버나움’의 기적이 일어나, 그 눈에 앞으로는 예쁜 세상만이 담겼으면 좋겠다.
픽션인 듯 픽션 아닌 픽션 같은 현실
제발 픽션이길 바라며 본 영화
<가버나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