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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해나 작가 May 22. 2023

400:1 드라마 공모전, 뚫어보시겠습니까?

단막 드라마 공모전의 무시무시한 공포체험


첫 공모전 도전,

처음이라 무모하다.



드라마 작가 교육원 시절. 기초반, 연수반을 거쳐 전문반으로 딱 승급이 되면서부터 KBS 단막 공모전에 처음으로 도전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한 5년 전쯤이었다. 보통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은 시청시간 기준 70분짜리 단막극 대본으로 도전을 시작한다. A4 35p 분량이다. 처음부터 8부, 12부, 16부를 쓸 수는 없다. 어떤 공부든 기초, 기본이 중요한 것처럼 드라마 작가 지망생에게 기본 중에 기본은 한 편짜리 단막을 기, 승, 전, 결의 구조에 딱 맞춰 잘 써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본을 기초반 21주, 연수반 21주 총 42주 동안 배웠으니까 난 꼭 공모전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 합평 때 같은 반 동기들의 평도 괜찮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공모전 직전의 내 극본이 스스로 읽었을 때도 재밌다고 확신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확신'이라는 정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착각하고 있던 초짜의 시절엔 눈앞의 내가 쓴 내 대본만 보인다. 내 대본이 최고다 병에 딱 걸리기 좋은 시절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아무것도 모를 때라서.




스타작가의 길이

펼쳐지리라!



KBS 단막 공모전에는 보통 2,500편에서 3,000편의 대본이 접수된다. 그중에서 5편 정도가 당선이 되는데. 정말 살인적인 확률, 로또보다 더 확률이 낮은 게임에 지망생들은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근자감이 치솟는 첫 도전 때에는 이 확률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철저히 나의 시점으로만 공모전을 바라보니 그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확률인지 피부로 체감되지도 않고, 할 수 있다는 설렘에만 취하게 된 것 같다.


"당선되면, 당선금으로 일단 백화점에서 옷을 사입자. 아! 당선 멘트도 준비해야지!"


"아니다, 양가 부모님이랑 남편에게 당선금을 나눠서 전해야겠다. 애들한테 맛있는 것도 쏘고! "


"아, 사인을 이참에 하나 만들까?"  


그렇게 연습장에 끄적끄적 사인을 만들고, 당선 소감을 발표하는 내 모습을 그리며, 설렘에 배시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던 부끄러운 착각의 시절. 그런데, 이런 착각도 한 3개월 뒤면 깨지고야 만다. 당선자 목록에 나의 이름이 없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된 후, 아니, 발표직전 당선자 연락을 받았다는 소식이 인터넷 작가 카페에서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불안한 현실에 어리둥절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안 됐다. 왜 떨어졌지?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 재밌다고 했는데. 왜? 도대체 왜? 심사위원들이 안목이 없네! 내가 이번엔 운이 없었던 거야!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다 보면 내 얼굴에 거울을 들이민 것처럼 내가 쓴  대본이 슬슬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내 대본의 단점, 구성의 엉성함, 얼토당토않은 개연성,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요소들, 장르에 대한 이해 부족 등등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내 단점들에 나는 두 손을 들고 항복하고야 만다. 그리고, 어떻게 이 단점들을 극복해야 할 것인지 또 고통의 터널을 홀로 통과하며 괴로워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지망생들을

연민하게 되다



터벅터벅 나는 고통의 터널 속을 아직도 걷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대본 쓰기가 행복하다. 아니, 정말 사랑한다. 그래서 걸으며 버티는 중이다. 대본을 쓰는 순간 때문에 삶이 더욱 풍성해진다. 그래서 낙선만 안겨주는 애증의 공모전이지만, 나는 여전히 드라마 작가 지망생 세계를 사랑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연민하게 되었다. 이천 명, 삼천 명의 지망생들 중 단 몇 명만 당선이 되는 이 시스템 속에서도 여전히 오늘을 노력해 내는 세상의 모든 지망생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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