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멀스멀 총각김치
20대 초반 열일을 하던 나는 집이 인천이었음에도 서울 중곡동의 사무실까지 출퇴근을 했었다.
무려 2시간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녔었는데 새벽 5시반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6시반에는 나가야 겨우 도착하는 여정의 반복이었다.
왜 먼곳까지 다녔을까?
사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회사가 있었다.
그곳에서 정말 착실하게 직원으로서의 소임을 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사가 서울 본사로 들어간단다.
'안녕히 가세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소쿨하게 나오려고 했던 나였다.
어린 나이에 이 회사 아니어도 갈곳 많을거라 생각했던 철딱서니 없고 패기만 그득했던 20대였으니!!!
어디로 튈지 모르고 자기 주관 확실한 x세대의 표본이지 않았을까 싶다.
"미쓰리! 서울 본사로 출근하면 안 될까? 월급 올려주고 교통비 지원해 줄께. 그리고 출. 퇴근 시간 조정해줄께요~멀리서 다니는 거니 그런 특혜는 주는게 당연한 거고~"
부장님의 제안은 몇날 몇일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였다. 이런 특혜를 준다는데 왜 안가? 바로 나온 나의 대답은 "네 알겠습니다" 였다. 주관이 뚜렷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돈이 더 좋았거나!!!!
그렇게 시작된 부평에서 중곡동까지의 여정, 가끔 성수동도 간다.
지금은 지하철 신설 노선이 많아서 더욱 빨라졌지만 그땐 1호선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고 또 어찌어찌 가야 했던 길. 내 가방엔 CD플레이어와 장착된 CD외에 좋아하는 몇장의 CD 그리고 건전지는 필수였다. 장기 출퇴근에 음악이 없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지금 같은면 가방안에 책이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책과는 거리두기를 하던 녀석이었다.
그 회사는 점심을 항상 도시락으로 먹었다. 덕분에 우리 엄마는 새벽에 나가는 딸을 위해서 아침밥에 도시락까지 싸야 하는 수고를 하셨다. 애들 다 학교 졸업시키고 다시 싸는 도시락. 귀찮을 법도 한데 항상 다른 반찬을 싸 주셨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두부 반찬은 단골 메뉴였기도 하다.
환승한 5호선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정신없이 졸고 있을 때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 아 뭐야~ 무슨 냄새야?"
" 누가 안 씼고 탔노?"
" 이거 방귀 냄새 아냐?"
별의 별 상상으로 해대는 말들이 음악보다 더 크게 들려서 고개를 들었는데 그 냄새의 원인을 알아내기까지는 몇초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것은 나로부터 나는 냄.새 였기 때문이다
아....이런...오늘도 도시락 반찬에 아주 잘 익은 총각 김치를 ...넣어 주셨구나
내가 좋아하는 총각 김치를.....도시락엔 넣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그렇다. 내 도시락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 아주 잘 익다 못해 쉬어 가려는 총각김치!
총각김치가 먹을 때는 참 맛있는데 가끔 이렇게 도시락을 싸서 갖고 다니다 보면 쉰 냄새 혹은 방귀냄새 같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엄마에게 총각김치는 싸지 말라고 당부했었는데 우리 엄마는 내가 좋아하니 생각 안하고 넣으셨나 보다.
엄마는 그저 맛있게 먹을 딸만을 생각하셨겠지. 배 곪지 않고 밥 잘 챙겨먹고 일 다녀오는 딸만을 생각하셨던 거다. 홍어만큼의 냄새는 아니었어도 출근길 인파로 꽉찬 지하철에서의 냄새는 누군가에겐 사소한 짜증이 되어 밀려왔을 수도 있었겠다.
나는 모른척 하고 계속 자는척 했다. 뭐 총각김치 너희들은 안먹냐? 식으로 생각하며.
알아서 갈 사람 갈거고 나는 모르는 사람들이고~ 어른들이 그러지 않는가. 음식같고 장난치면 안된다고!
장난은 아니지만 음식냄새에 상상 더하기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신경쓸 만큼 내가 말짱한 정신도 아니었고
그러느니 조금더 눈을 붙이는게 행복한 일이었으니~
그날 점심은 아주 맛있었다. 유난히 더 맛있었다. 출근길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김치 냄새.
그건 엄마 생각이 스멀스멀 나오게 하는 좋은 냄새!
여전히 나는 총각김치를 좋아했고 우리 엄마는 그런 나에게 아직도 애기하신다.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