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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리 Apr 11. 2023

출근길

스멀스멀 총각김치 

20대 초반 열일을 하던 나는 집이 인천이었음에도 서울 중곡동의 사무실까지 출퇴근을 했었다.

무려 2시간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녔었는데 새벽 5시반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6시반에는 나가야 겨우 도착하는 여정의 반복이었다.


왜 먼곳까지 다녔을까?

사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회사가 있었다.

그곳에서 정말 착실하게 직원으로서의 소임을 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사가 서울 본사로 들어간단다.

'안녕히 가세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소쿨하게 나오려고 했던 나였다.

어린 나이에 이 회사 아니어도 갈곳 많을거라 생각했던 철딱서니 없고 패기만 그득했던 20대였으니!!!

어디로 튈지 모르고 자기 주관 확실한 x세대의 표본이지 않았을까 싶다.



"미쓰리! 서울 본사로 출근하면 안 될까? 월급 올려주고 교통비 지원해 줄께. 그리고 출. 퇴근 시간 조정해줄께요~멀리서 다니는 거니 그런 특혜는 주는게 당연한 거고~"

부장님의 제안은 몇날 몇일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였다. 이런 특혜를 준다는데 왜 안가? 바로 나온 나의 대답은 "네 알겠습니다" 였다. 주관이 뚜렷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돈이 더 좋았거나!!!!


그렇게 시작된 부평에서 중곡동까지의 여정, 가끔 성수동도 간다.

지금은 지하철 신설 노선이 많아서 더욱 빨라졌지만 그땐 1호선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고 또 어찌어찌 가야 했던 길. 내 가방엔 CD플레이어와 장착된 CD외에 좋아하는 몇장의 CD 그리고 건전지는 필수였다. 장기 출퇴근에 음악이 없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지금 같은면 가방안에 책이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책과는 거리두기를 하던 녀석이었다. 



그 회사는 점심을 항상 도시락으로 먹었다. 덕분에 우리 엄마는 새벽에 나가는 딸을 위해서 아침밥에 도시락까지 싸야 하는 수고를 하셨다. 애들 다 학교 졸업시키고 다시 싸는 도시락. 귀찮을 법도 한데 항상 다른 반찬을 싸 주셨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두부 반찬은 단골 메뉴였기도 하다. 



환승한 5호선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정신없이 졸고 있을 때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 아 뭐야~ 무슨 냄새야?" 

" 누가 안 씼고 탔노?"                                                                                    

" 이거 방귀 냄새 아냐?"

별의 별 상상으로 해대는 말들이 음악보다 더 크게 들려서 고개를 들었는데  그 냄새의 원인을 알아내기까지는 몇초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것은 나로부터 나는 냄.새 였기 때문이다


아....이런...오늘도 도시락 반찬에 아주 잘 익은 총각 김치를 ...넣어 주셨구나

내가 좋아하는 총각 김치를.....도시락엔 넣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그렇다. 내 도시락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 아주 잘 익다 못해 쉬어 가려는 총각김치!

총각김치가 먹을 때는 참 맛있는데 가끔 이렇게 도시락을 싸서 갖고 다니다 보면 쉰 냄새 혹은 방귀냄새 같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엄마에게 총각김치는 싸지 말라고 당부했었는데 우리 엄마는 내가 좋아하니 생각 안하고 넣으셨나 보다.


엄마는 그저 맛있게 먹을 딸만을 생각하셨겠지. 배 곪지 않고 밥 잘 챙겨먹고 일 다녀오는 딸만을 생각하셨던 거다. 홍어만큼의 냄새는 아니었어도 출근길 인파로 꽉찬 지하철에서의 냄새는 누군가에겐 사소한 짜증이 되어 밀려왔을 수도 있었겠다.


나는 모른척 하고 계속 자는척 했다. 뭐 총각김치 너희들은 안먹냐? 식으로 생각하며.

알아서 갈 사람 갈거고 나는 모르는 사람들이고~ 어른들이 그러지 않는가. 음식같고 장난치면 안된다고!

장난은 아니지만 음식냄새에 상상 더하기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신경쓸 만큼 내가 말짱한 정신도 아니었고

그러느니 조금더 눈을 붙이는게 행복한 일이었으니~



그날 점심은 아주 맛있었다. 유난히 더 맛있었다. 출근길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김치 냄새.

그건 엄마 생각이 스멀스멀 나오게 하는 좋은 냄새!

여전히 나는 총각김치를 좋아했고 우리 엄마는 그런 나에게 아직도 애기하신다.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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