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
그런 책이 있다. 남들이 벌써 다 읽었다고 하는 그 책을 나만 안 읽고 버틸 수가 없어서 억지로 붙들어 보게 되는 책 말이다. 하지만 이게 왜 그토록 명작이라고 찬사를 받는지 결국엔 나만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중에 (사실은 그런 책들이 너무너무 많지만...) ‘노인과 바다’가 있었다.
살다 보면 지독한 비행운의 시기가 무한 반복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던 매우 어린 나이였다. 노인이 왜 잡히지도 않는 고기를 잡으러 매일 출근 도장 찍듯이 바다로 나가는지 이해할 턱이 없었다. 노인이 마주한 망망대해를 한 번 상상해보지도 않고 책장을 덮었다.
그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엄마, 이건 좀 아니지 않아? ”
중학교에 막 입학한 아이가 과제 때문에 ‘노인과 바다’를 읽다가 나에게 건너왔다. 부족한 어휘력 때문에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 낼 재간이 없는 아이는 그냥 마구 짜증을 냈다.
“결말이 왜 이래?”
아이의 볼멘소리에 피식 웃음이 났지만 그래도 엄마니까, 침착하게 아는 체를 해봤다.
“인생이 그런 거야. 그렇게 막막한 거라고.”
나는 우선 아이에게 헤밍웨이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그는 수렵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음악을 사랑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부모의 불화 때문에 불안하고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 대신 감성이 풍부한 문학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헤밍웨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할아버지처럼 군인이 되고 싶어서 군대에 자원하지만 시력이 나쁜 탓에 거절당하고 기자가 됐다. 그러고도 군인에 대한 동경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운전병으로 자원해 결국엔 다리 부상을 입은 채로 명예제대를 하고 만다. 그러자 이번에는 종군 기자로 전쟁에 참전한다. 그는 무려 네 번의 전쟁을 목격했다.
그러는 틈틈이 헤밍웨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큰 명성을 쌓아간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휴전의 시기에 접어들자 그의 방황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지만 평단의 반응은 인색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헤밍웨이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가진 작가라기보단 글을 좀 쓸 줄 아는 기자 취급을 받았다. 그는 글을 쓰다 답답해지면 아프리카에서 사자나 코끼리를 사냥하거나 권투와 낚시를 즐기다 결국 쿠바의 아바나에 정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쓴 작품이 바로‘노인과 바다’다.
무려 십 년에 걸쳐 팔십 번이 넘는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세상에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 속 지독히 운이 없는 ‘살라오’의 시기를 견디고 있는 노인 산타 아고는 어쩌면 그 시절의 헤밍웨이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노인이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다 85일 만에 거대한 청새치 한 마리를 사력을 다 해 잡는다. 하지만 이내 허무하게 모두 빼앗기고 힘없이 돌아와 다시 잠이 들어 꿈에서 사자를 만난다.
“나중에 조금 더 커서 읽어봐, 그땐 이해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질 거야.”
아이는 내 말을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때만 해도 그 책을 다시 펼쳐 드는 사람이 내가 될 줄 몰랐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노인과 바다’를 마치 골수까지 빼먹을 작정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씹고 또 씹으며 열정적으로 읽게 될 줄은 진정 난 몰랐었다.
스무 해 가까이해 오던 라디오 작가를 그만두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이 다 써버린 치약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더 이상 한 방울도 나올 것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텅 비어 버렸다.
대나무의 한 마디가 완결된 것처럼 내 인생의 한 장이 마무리됐으니 이제는 새로운 삶에 도전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세상에 쉬운 일은 없겠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었으니 못해 낼 일도 없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집 근처 초등학교 조리실무사에 덜컥 붙었다. 칼 같은 근무시간, 명확한 월급 게다가 일 년에 두 번이나 방학도 있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경험도 능력도 백지상태인 나를 기꺼이 받아준 분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자고 매일 아침 출근길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길의 나의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이라도 된 양 무거워졌다.
가장 큰 문제는 평생 자판기만 두드려 댄 내 손목이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채소를 썰고 무거운 밥솥을 들고 두툼한 식판을 나르는 것도 벅찼지만 무엇보다 삽으로 고기를 볶아내는 일은 정말 무서웠다. 학생과 교직원을 포함한 700여 명 분량의 고기는 내가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맞서 보아도 꿈쩍하지 않는 태산 그 자체였다. 선배님들이 몸의 반동과 손목 스냅으로 쉽게 쉽게 조리하는 요령들을 가르쳐 주었지만 내 손의 삽은 번번이 헛손질로 무너졌고 결국 어떤 일이 있어도 음식을 태워선 안 된다는 급식실의 철칙이 나로 인해 흔들리는 사태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여러 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과 꼭 해내야만 한다는 절박한 책임감으로 도전을 거듭했지만 아, 도저히 이 태산을 이겨낼 수 없을 거라는 체념이 들자 왈칵 사는 게 무서워졌다. 그때 그 노인 산티아고가 생각났다.
평생을 어부로 살아와 놓고선 석 달 가까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고된 하루 끝에 누렸던 맥주 한 잔의 사치도 포기하고 자신을 친할아버지처럼 따르던 수습 어부 마놀린도 떠나보내야 했을 때 그도 무섭게 외로웠을까... 꿈결처럼 말도 안 되는 청새치를 잡았을 때 그리고 이내 그걸 허망하게 잃었을 때, 그의 마음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지지 않았을까...
하나의 문이 닫혔으니 이제 내게 새로운 문이 열릴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두려워지는 마음을 다잡았는데, 결국 나는 새로운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마친 후 그만두었다. 심하게 부끄러웠다. 이제 나는 무얼 하며 살아야 하나... 사는 게 겁났다.
혹시나 이런 내 마음을 위로해 줄 문장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노인과 바다’를 열심히 읽었는데, 헤밍웨이는 내가 듣고 싶은 않았던 그 말만을 남겨놓았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태어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죽을 수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삶에 결코 패배는 없다고 자신하던 노인도 실은 뼈대만 남은 청새치를 보고는 그만 무릎이 풀리고 만다. 하지만 그런 절망과 마주하고서도 노인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노인과 바다’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길 왼쪽의 오두막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에 빠져 있었다. 여전히 엎드린 채였다. 소년도 그의 곁에 앉아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
젊은 시절 딱 한 번 배에서 멀리 초원 위의 사자들을 본 적이 있었던 노인은 그 꿈만 같은 장면을 가끔 꿈속에서 만나왔다. 그 비현실적인 꿈은 노인에게 기꺼이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노인은 청새치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와 사자를 꿈꾸기 위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유행가의 가사처럼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훅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가 우리에게 꿈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는 오랫동안 꿈에 대해서 잊고 살아왔었다. 그러느라 내 속이 텅 비어 가는 것도 모른 채 살아왔던 것 같다. 나에게 꿈을 꾸어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