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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책 Dec 13. 2024

‘안나카레니나’가 이혼의 변(辨)이 될 수 있다니!

- 톨스토이 '안나까레니나'의 마지막 문장 

   모름지기 ‘부부의 일은 부부 밖에 모른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 역시 오랜 시간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으며 주변 여러 부부의 우여곡절을 지켜봐 왔기에 남의 이혼 문제에 가볍게 입을 대는 것은 매우 경솔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 경우는 ‘세기의 이혼’이 아닌가!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저 별들의 전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우연히 이 부부의 이혼 상고이유서에 톨스토이 ‘안나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인용됐다는 기사를 보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행복한 가정은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불행의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    

  

   언뜻 보면 불행한 가정의 구구절절한 속사정을 대변하는 것 같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면 그때는 이 첫 문장의 깊이를 다시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는 누구의 편을 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안나를 통해 톨스토이가 정의하고자 했던 결혼의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베고 자도 좋을 만큼의 두께를 자랑하는 ‘안나카레니나’를 책으로 읽기 두렵다면 영화로 만나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비비안 리와 소피 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연기한 안나는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스무 살 연상의 유명 정치인 카레닌과 타의 모범이 되는 결혼 생활을 이어오다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난 젊은 장교 브론스끼와 사랑에 빠진다. 나이 많은 정치인과의 결혼 생활이 도덕 교과서 같았다면 젊고 열정적인 브론스키와의 열애는 그녀를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만다.      


  사랑에 빠진 안나의 격정적인 감정을 새삼스럽게 복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격정적인 안나의 감정과 대조돼 침착하게 가정을 지키려 노력하는 남편 까레린의 이성은 놀랍도록 훌륭했다. 카레닌은 브론스끼에게 미치도록 빠져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안나에게 이런 충고를 한다.    


        

  “내가 하려던 얘기는 이런 거야.” 그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말을 계속했다.
 “끝까지 들어주기 바라. 당신도 알겠지만, 난 질투가 모욕적이고 비속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니까, 그것에 휘둘릴 생각은 결코 없어.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일정한 예법이라는 게 있어서 그것을 어기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되지. 오늘 일은 내가 눈치챈 게 아니라, 그 자리 분위기로 볼 때 모두 눈치채고 있었어. 당신이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게 행동을 했고, 그것을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난 당신 앞에서, 나 자신 앞에서, 하느님 앞에서, 당신에게 당신 의무를 일깨워 줄 책임이 있어. 우리 삶은 인간의 손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하나로 맺어져 있으니까 말이야. 이 결합을 부술 수 있는 것은 오직 죄악뿐이고, 그런 범죄는 무거운 벌로 다스려야 해.”    


 

   이 작품이 쓰일 당시 귀족 부인의 불륜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다만 모두가 눈감아줄 수 있는 수위는 상대 배우자와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 조심할 때까지였다. 이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사랑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나면 비밀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두 사람은 발 디딜 곳을 잃게 된다. 남편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한 안나는 아들과 남편을 버리고 브론스키와 모스크바로 애정의 도피를 한다. 그렇게 정부의 아이를 갖게 된 그녀는 새로 얻은 아이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끊임없이 남편 카레닌에게 이혼을 종용한다.     


 

“우리 사이는 지금까지처럼 유지될 수 없어요. 난 더는 당신의 아내로 지낼 수 없어요. 내가 그런...”
그녀가 말을 꺼내자 그는 심술궂고 차갑게 웃었다. 
“당신이 선택한 생활방식은 물론 당신의 이성에도 영향을 주고 있겠지. 내 경우는 존경인지 경멸인지, 즉 그 둘이 너무 커서... 요컨대 난 당신의 과거를 존경해. 그러나 현재는 경멸하지... 당신이 내 말에 대해서 내린 해석 따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그나저나 이해가 가지 않는군. 당신처럼 훌륭한 독립심을 가진 여성이 자기부정을 남편 앞에 직접 폭로하고, 그러고도 아무런 자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 수행을 왜 그렇게 꺼리느냔 말이야.”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세요!”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여기에서 그 사내를 만나는 일이 없을 것과 당신이 세상으로부터도 하인들에게서도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도록 처신하는 것... 즉 당신도 그 사내를 만나지 않을 것, 이것뿐이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오. 대신 당신은 아내로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아내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으니까 말이요. 내가 당신한테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뿐이오.”      

  


  사랑에 빠진 안나는 그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 이혼뿐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을 깨끗이 종료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브론스끼와 가정을 꾸리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러나 열정적인 그들의 사랑 사이에 미세한 분열이 번지고 있었다.       



   
    요즈음 더욱더 자주 일어나게 된 그녀의 이런 질투의 발작은 그를 두렵게 했고, 그녀에 대한 사랑도 점점 식게 하였다. 그는 질투의 원인이 자기에 대한 사랑임을 알고 있었고 그런 태도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도 썼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체 몇 차례나 그는 그녀의 사랑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해 왔던가,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인생의 어떤 행복보다도 사랑을 가장 중시하는 여자의 방식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뒤를 따라서 모스크바를 떠났던 무렵과 비교한다면, 그는 그러한 행복에서는 훨씬 멀어져 있었다. 그때 그는 자기가 불행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어쨌든 앞날의 행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는 최상의 행복이 이미 지나가 버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녀는 그가 처음 보았을 무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녀는 나쁜 쪽으로 변해있었다. 온몸은 옆으로 턱 퍼졌고, 조금 전 여배우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는 온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꽃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끝에 그것을 꺾어 버리고 나서야 자기 손 안에서 시들어 버려 더는 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는 꽃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때 자기 사랑이 훨씬 강렬했던 무렵에는 굳이 바란다면 자기 심장에서 그 사랑을 뽑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녀에게 조금도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것 같은 지금은 오히려 그녀와의 관계를 도저히 부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특별하고도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사랑이 시들어가자 그다음 남겨진 것은 처절한 파국뿐이었다. 톨스토이는 안나의 자살을 통해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이 사랑에 다른 결말이 있을 수 있었을까? 안나의 죽음 이후 소설은 레빈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는 브론스키를 짝사랑했던 끼지와 그녀를 짝사랑한 레빈인데 레빈은 여러모로 톨스토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방대한 소설의 마지막은 레빈의 독백이자 어쩌면 톨스토이가 전하고자 했던 그 말로 결말을 맺게 된다.      



앞으로도 난 전과 다름없이 마부인 이반에게 화를 내고, 여전히 쟁론을 하고 엉뚱한 때 내 사상을 표현하기도 할 것이다. 여전히 내 영혼의 지극히 거룩한 것과 남들 사이에는 (아내와의 사이에도) 장벽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변함없이 나의 공포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기도 하고 그것을 뉘우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 삶이, 내 온 생활이 내 몸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모든 순간순간이 지난날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내가 그 선의 의미를 내 삶의 순간순간마다 불어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라고 표현되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결혼은 사랑의 길고 긴 과정일 뿐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혼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연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혼의 원인이 불륜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불행한 결혼 생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아내는 것은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킬 것, 우리는 그걸 배우자에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순간이 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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