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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Jan 24. 2022

리뷰: Earl Sweatshirt - SICK!

#3. 팬데믹의 잿빛 이면을 감각하는, 음악의 사회성에 관한 고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주도로 2008년 LA에서 결성된 힙합 크루 오드 퓨처는, 프랭크 오션의 탈퇴 그리고 타일러와 얼 스웻셔츠 사이의 불화설 등등 말도 탈도 많은 크루의 역사와 나중으로 가면 소원해진 관계성 속에 2018년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오드 퓨쳐가 얼터너티브라는 방법론을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에 이식하며 남긴 족적들은 어떤 동시대성을 간직한 채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고, 오드 퓨처를 거쳐간 뮤지션들은 여전히 대중음악의 중심 혹은 전위에 서 있다.  


  오드 퓨처의 중심이었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그의 안티테제처럼 여겨졌던 얼 스웻셔츠의 디스코그라피도 그러하다. 애증으로 엮인 둘의 관계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각각의 뮤지션들을 겹쳐 보았을 때 드러나는 흑백의 대비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마치 동시대 힙합이라는 빙산을, 수면 위에 드러난 모습과 수면 아래로 심연처럼 뻗친 모습으로 나누어 보는 것 같다. 타일러는 랩이라는 방법론에 천착하기보다는 네오 사이키델리아의 환각적인 감각과 신스 사운드의 질감을 전방위적으로 활용하며 과거와 미래, 팝과 록 그리고 힙합을 절묘하게 교차하였을 때 드러나는 새로운 대중음악의 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얼 스웻셔츠는 자신이 가진 2010년대 최고의 리릭시스트로서의 자질을 십분 활용하며, 힙합 장르음악의 끝없는 동굴을 파고 들어간다. 진중함과 그로테스크함은 얼 스웻셔츠를 관통하는 이미지다.


  작년 최고의 랩 앨범이었던 타일러의 “CALL ME IF YOU GET LOST”(2021, Columbia)와 얼 스웻셔츠의 신보 “SICK!”도 이러한 이항대립적 관계 속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 같다. 타일러는 웨스트사이드 건을 들으며 다시금 랩을 중심에 둔 힙합 앨범을 작업하고자 했지만 그것이 세상의 아픔을 혼자 들이마시는 스토리텔러가 되겠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CALL ME IF YOU GET LOST”에서 새롭게 등장한 페르소나 ‘타일러 보들레르’는 팬데믹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팬데믹 이전의 ‘정상’적 생활양식을 찬란하게 복권시키기 위한 기획이었다. 빠리를 산보하며 도시의 인상을 관찰하는 샤를 보들레르의 이미지를 빌려 와 성공한 뮤지션으로서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자기 자신을 묘사하는 데에 활용되는 타일러 보들레르는, 럭셔리 호텔과 요트 따위의 호화로운 사치를 즐기며 팬데믹의 단절과 고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로운 세계 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얼 스웻셔츠의 신보는 “SICK!”이라는 앨범 제목처럼 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상흔에 집중하고, 아픈 것을 아프다고 이야기한다.


  전작 “Some Rap Songs”(2018, Tan Cressida/Columbia)의 샘플링들이 연출하는 것이 사운드의 번뜩이는 다채로움이었다면, 간결해진 “SICK!”의 사운드메이킹은 초기작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어두움과 먹먹함을 다시금, 다만 정제된 형태로 소환해 낸다. 이 방면에서 트랙들이 가진 리프들은 탁월하다. 스틸팬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2010’, 사이키델릭한 우울을 연출하는 ‘Vision’, 하드코어한 힘을 가진 ‘Titanic’ 등 인상적인 사운드 텍스처를 선보이는 트랙들이 2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속에 탄탄하게 짜여지고 배치되어 있다. 타이틀 트랙 ‘Sick!’은 사운드클라우드의 멈블이나 트랩 유행을 연상시키며 웅얼거리지만 동시에 그런 조류의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게를 연출한다. 나이지리아의 아프로비트 뮤지션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펠라 쿠티의 육성을 샘플링한 아웃트로는 치열한 고민을 통해 빚어진 “SICK!”의 주제의식을 관통한다.


  “So really, art is what is happening at a particular time of a people's development or underdevelopment, you see. So I think, as far as Africa is concerned, music cannot be for enjoyment, music has to be for revolution. Really working with the people, enlightening the people and doing your duty as a citizen to play music and act and do something about the system. If you feel bad about it, do something about it…”
  “그래서… 예술은 사람들이 진보해 가거나 혹은 그렇지 못한 특정한 시기에 벌어지는 것이지. 나는 적어도 아프리카에 관한 한 음악은 유희 거리가 아니라 혁명에 복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진정으로 사람들 속에서 작동하고, 사람들을 계몽하고, 음악을 하는 것으로 시민의 의무를 다하며 구조에 맞서 어떤 행동을 해야지. 만약 네가 유감을 느낀다면, 이에 대해 뭐라도 행동을 해야 해…”


   물론 “SICK!”은 어떠한 강령을 담고 있거나 선언적인 성격을 내세우는 앨범이 아니다. 여기에서 얼 스웻셔츠가 하는 것은 ‘뱉어내기’에 가깝다. 이 즉자적인 증언들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단절과 고립이 우울이라는 병증으로 드러난다는 것 뿐이다. 아직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는 다다르지 않은 얼 스웻셔츠의 내적 투쟁을 다룬 이 진술서를 읽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러티브에 자아를 투영하고 비교해 보며 이 고독의 시기 우리의 사유가 어느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SICK!", Earl Sweatshirt
2022년 1월 14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얼터너티브 힙합, 앱스트랙트 힙합, 익스페리멘털 힙합, 컨셔스 힙합
레이블: Tan Cressida, Warner
평점: 7.9/10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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