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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Feb 20. 2022

리뷰: Big Thief – Dragon...

#9. 목가성과 아방가르드 사이, 그 놀라운 균형

  옛 컨트리 음악과 20세기 초-중반 컨템포러리 포크 음악, 그리고 얼터너티브 유행 이후 오늘날 흔히 접할 수 있는 인디 포크 음악들은 그것들의 맥락도 형식도 특징도 모두 다르다. 아마도 우디 거스리나 피트 시거를 그리워하며 본 이베어를 찾아 듣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물론 저스틴 버논의 덤덤한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는 옛 포크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특히 카녜 웨스트와의 교류 이후 발매된 두 장의 본 이베어 정규 앨범 “22, A Million”(2016, Jagjaguwar)과 “i, i”(2019, Jagjaguwar)에서는, 다양한 소음들이 간섭하고 경합하는 가운데 차갑게 깔린 전자 악기의 타악기 라인 위에서 버논의 이러한 포크 감성이 새로이 재배열된다. 본 이베어는 이를 통해 결국, 기존에 포크라는 이름이 가리키던 것들로부터 완전히 이탈한다. 한동안 유행하던 ‘프릭(freak) 포크’나 ‘안티 포크’라는 이름의 장르들은, 포크 음악에서 활용하던 어쿠스틱, 언플러그드 악기들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포크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민요적이고 전통적인, 요컨대 과거회귀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아방가르드적이다.


  포크로부터 도망치는 포크 음악들의 시대에 빅 시프라는 밴드의 음악은 유독 돋보인다. 2015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 빅 시프의 일관된 지향은 복고의 로맨티시즘이었다. 데뷔 앨범 “Masterpiece”(2016, Saddle Creek)와 “Capicity”(2017, Saddle Creek)는 유년기의 추억을 소환하는 필름 사진들을 앨범 커버로 들고 나온 채, 옛 어쿠스틱 포크 음악과 로-파이 음악의 절묘한 교차점에서 그 둘이 공통적으로 갖는 노스탤지어의 미학을 끄집어 냈다. 그들은 시골 집에서 먼지가 쌓인 일기장을 꺼내 읽는 듯한 목가적인 느낌과 요즈음 인디 음악의 세련됨을 동시에 선사한다. 빅 시프는 시대에 따라 구분되는 포크, 컨트리 음악의 방법론과 감정을 아우를 줄 아는 밴드다.


  빅 시프의 인상적인 ‘균형잡기’는 이번 신보 “Dragon New Warm Mountain I Believe in You”에서 빛을 발한다. 뉴욕 주 교외에서 애리조나, 로키 산맥 등등 미국 곳곳을 떠돌며 작업한 새 앨범은 무려 1시간 20분의 더블 앨범으로 완성되어 나왔다. 기타 한 대로 승부하는 단순한 포크 앨범이었다면 1시간 2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분명 지루하고 따분할 것이다. 하지만 “Dragon New Warm Mountain I Believe in You”는 예상 이상의 사운드를 선보이며 우리의 상상력을 따돌리고 전진한다.


  컨트리 밴드의 잔잔한 연주 위에 에이드리언 렌커의 아련하고 시적인 보컬로 문을 여는 첫 트랙 ‘Change’ 까지만 해도, 앨범은 잔잔하고 편안한 이지 리스닝의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윽고 전개되는 ‘Time Escaping’의 충격적인 폴리리듬을 마주하면 뒤통수가 얼얼해진다. ‘Spud Infinity’처럼 피들과 밴조 사운드를 앞세운 고전적이고 신나는 컨트리 송이 나오다가, 드림 팝 밴드 메이지 스타를 연상시키는 짙은 잔향과 풍부하고 몽환적인 인스트루멘털 및 보컬로 압도하는 ‘Dragon New Warm Mountain I Believe in You’ 같은 트랙이 나오기도 하고, 리프를 탄탄하게 쌓아가며 기타의 오버드라이브와 퍼즈 톤을 환상적으로 활용하는 ‘Little Things’, 하프로 만든 리프 위에 앰비언트 팝의 감각을 부여한 ‘Heavy Bend’ 같은 이리저리 튀는 넘버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트랙들은 난잡하게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포크의 전제인 온정적 감성과 따뜻함, 그리고 90년대 영국 슈게이즈와 드림 팝 씬이 가졌던 애수를 지시하는 옅은 징후로 연결되어 간다.


  빅 시프의 인스트루멘털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9번 트랙 ‘Flower of Blood’다. 노이즈 록과 슈게이즈 기타리스트들이 연출했던 소리의 질감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야수적 서정성의 밴드 사운드는 감정을 격렬히 쌓아가고 폭발시킨다. 하지만 ‘Flower of Blood’의 여운을 관능적 분위기로 끌고 가는 ‘Blurred View’ 이후, 후반부의 트랙들은 전반부에 비해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포크와 얼터너티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온갖 장르적 레퍼런스를 종횡하던 전반부보다는 절제된 감정의 포크 발라드들이 전개되는데 이것은 다소 단조롭다. 하지만 더블 앨범이라는 방대한 분량이 사족으로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빅 시프의 디스코그라피가 전개될 수록 로-파이 페티시즘에 대한 의존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은데, 대신 노이즈 록과 슈게이즈를 위시한 얼터너티브 록 문법을 전방위적으로 받아들이며 사운드의 수준을 끌어 올리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Dragon New Warm Mountain I Believe in You”에서 확인되는 록과 기타 팝 사운드 그리고 포크 사운드의 절묘한 경합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앞으로 빅 시프가 펼쳐 보일 음악들에 대한 잠재성에도 큰 기대를 걸게 만든다.



“Dragon New Warm Mountain I Believe in You”, Big Thief


2022년 2월 11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인디 포크, 포크 , 얼터너티브 
레이블: 4AD
평점: 8.1/10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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