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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Mar 08. 2022

리뷰: Avril Lavigne – Love Sux

#14.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 둡시다

  에이브릴 라빈이 돌아왔다. 그것도 20년 전 음악을 들고 돌아왔다. 노래 제목에 들어가는 알파벳 ‘S’는 무조건 ‘Z’로 바꾸고 ‘Sk8er Boi’처럼 숫자를 집어 넣어야 멋있어 보이던 시절, 짙은 아이 마스카라와 시커먼 매니큐어, 피어싱과 스키니 진으로 무장한 십대들이 화장으로 가짜 자해흔을 만들고 쿨 에이드 분말 주스를 마시며 스케이트를 타거나 닌텐도를 하던 이모(Emo) 키드들의 시절 말이다. 


  20년. 공교롭게도 올해는 에이브릴 라빈이 데뷔 앨범 “Let Go”(2002, Arista)를 내놓은 지 20년이 되는 해다. 캐나다 시골 출신의 열 일곱 틴에이저 에이브릴 라빈은 이로서 2000년대 초반 우울한 십대들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단숨에 올라섰다. 그러나 청소년 우울증과 기성과의 불화를 아웃사이더적 기질로 이미지화하는 것은 꽤나 소모적인 일이기 때문에, 라빈은 3집 “The Best Damn Thing”(2007, RCA)에서부터 쉽고 신나는 로큰롤 바이브와 뒤섞은 버블검 팝, 틴 팝 문법으로 우회해 가기 시작했다. 싱글 ‘Girlfriend’는 빌보드 핫 100 차트의 정상에 올랐고, 이 시점에서 에이브릴 라빈은 거리가 아닌 타블로이드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한 명의 셀레브리티였다. 몇 년이 지나며 팝 펑크를 소비하던 틴에이저 이모 키드들은 나이를 먹고 사춘기적 하위문화로부터 이탈해 갔고, 무브먼트적 성격조차 갖고 있지 않던 팝 펑크 씬 자체의 열기가 시들해졌다.  


  세월이 흐르며 흔한 기성 팝 스타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 그리고 한동안 라임병이라는 희귀 질환으로 인해 활동을 쉬었던 에이브릴 라빈을 현재로 소환해 낸 것은 올리비아 로드리고다. 작년 한 해 “SOUR”(2021, Geffen)라는 데뷔 앨범으로 팝 씬을 뒤흔들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의 서사와 음악적 성향은, 20년 전 “Let Go”로 활동하던 시절의 에이브릴 라빈과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2003년 생으로 아직 만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팬데믹의 적막 속 삶이 뒤흔들리는 사춘기의 끝자락을 건너가며 느끼는 감정들에 시원하고 직설적인 불평불만을 쏟아내기 위해 20년 전 팝 펑크를 자신의 문법으로 가져 왔다. 첫 싱글 ‘drivers license’는 2022년의 ‘Sk8er Boi’가 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의 꼭대기를 정복했고, 사람들은 팝 펑크라는 장르의 이름 뒤에 ‘리바이벌’이라는 수사를 붙였다. 아주 순식간에, 머신 건 켈리 같은 래퍼 출신 뮤지션들마저 이모 음악으로 전향해 ‘Emo Girl’ 같은 곡을 내는 시대가 되었다. 복고 유행과 레트로-페티시즘은 이제 8-90년대생들의 문화 코드에까지 손을 벌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춘기적 팝 펑크의 원조였던 에이브릴 라빈이 현재로 소환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2020년 11월부터 작업을 시작해 2021년 1월에는 이미 앨범의 녹음을 마쳐 두었던 에이브릴 라빈이 작년 한해를 뒤흔들었던 올리비아 로드리고 발 팝 펑크 유행을 예측해서 신보를 전략적으로 구상한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쩌다 보니 “Let Go”를 2022년으로 소환한 듯한 새 앨범 “Love Sux”는 ‘이모의 귀환’이라는 시류에 놀라운 우연처럼 올라 타게 되었다. 


  “Let Go”를 2022년으로 소환한 것 같다는 묘사는 이 앨범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좋게 이야기하면 그렇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이게 전부다. 말하자면 메탈리카의 “Death Magnetic”(2008, Warner Bros.) 같은 것이다. 1집에서부터 4집까지의 커리어를 통해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려 간 컬트적 신화를 통해 메인스트림 최고의 록 스타가 되었던 메탈리카는, 멤버들 본인들도 “sell-out”(팔아먹기 위한 작업)이라고 표현했던 두 앨범 “Load”(1996, Elektra)와 “Reload”(1997, Elektra) 시기 장르적 방황을 거치다 “St. Anger”(2003, Elektra)라는 희대의 괴작을 내놓은 끝에, 팬들이 그리워하던 초기 디스코그라피의 헤비니스를 갈무리하는 앨범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1집부터 4집 혹은 5집까지 메탈리카가 멋지게 구사해내던 리프 중심의 빌드업, 대곡 지향적 구조 따위를 옛 추억에 잠겨 그저 되풀이하기만 한다면… 그러한 문법들을 정식화해내고 가장 이념형적인 형태로 선보였던 옛 앨범들을 들으면 되지 굳이 “Death Magnetic”을 그것도 새 세대의 리스너들이 사서 들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Love Sux” 역시도 비슷한 자기복제의 딜레마 위에 서 있다. 메탈이 소위 ‘dad-rock'(꼰대 록) 음악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트렌드와 상관 없이 옛 팬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등장한 “Death Magnetic”과 달리 “Love Sux”는 팝 펑크가 리바이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시류의 한가운데에 휩쓸리는 시점에 발매된 앨범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당위로도 내용의 진부함을 해소할 수는 없다.  


  오프닝 트랙 ‘Cannonball’에서부터 우리가 익히 들어 왔고 알고 있는 호쾌하고 청량감 넘치는 팝 펑크 사운드가 펼쳐진다. 킬링 타임 영화들처럼 그럭저럭 신나게 듣고 잊어버릴 수 있는, 에이브릴 라빈 본인부터 파라모어, 그린 데이 따위가 구사하던 바로 그 사운드다. 하지만 똑같은 분위기의 트랙들이 30분 넘게 주구장창 이어진다면? 


  앨범은 택시 미터기 속 말처럼 시종일관 다그닥 다그닥 달려가는 파워 코드 리프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것들 중 하나도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Sk8er boi’처럼 상징적인 리프와 가사로 무장하고 ‘송가’가 될 힘을 발휘하는 트랙이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Let Go”의 감성을 현재로 소환하고 발전적인 형태로 풀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나중에 뒤늦게 공개된 “Let Go”의 B 사이드 같다. 되려 좋지 않은 의미로 뇌리에 깊게 박히는 것은, 블랙 베어가 피처링한 ‘Love It When You Hate Me’다. 팝 펑크의 조촐한 밴드 사운드와 기타 리프로 시작하다, 어떤 유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잘라 붙여 갖다 놓은 듯한 유사 트랩 비트가 깔리기 시작한다. 이건 비의 그 악명 높은 싱글 ‘깡’이 선보였던 맥락 없음을 떠올리게 한다. 


  30여분 남짓한 청취 경험은 끔찍하지도 황홀하지도 않다. 대개는 그 트랙이 그 트랙 같은 앨범 속에서, 나는 비평적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팝 펑크가 현재로 소환되는 2022년, 원조 팝 펑크 스타 에이브릴 라빈의 생존 신고 정도로 생각하고 넘기면 되지 않을까.



“Love Sux”, Avril Lavigne


2022년 2월 25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팝 펑크, 이모 팝
레이블: Elektra, DTA
평점: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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