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동시대 최고의 사타닉 록 밴드가 미트 로프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우선 제목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낚시’(?)한 것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동시대 최고의 사타닉 록 밴드가 미트 로프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는 수사는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분명 요란한 허풍처럼 들린다. 안타깝게도 과장스러운 수사는 ‘고스트의 새 앨범이 무슨 미트 로프 앨범 같다’는 것이 아니라, ‘고스트가 동시대 최고의 사타닉 록 밴드다’라는 쪽이다.
나는 고스트가 메인스트림에 소개되기 전부터 그들의 커리어를 지켜봤던, 그러니까 고스트가 2013년 2집 앨범 “Infestissumam”(2013, Sonet / Loma Vista)을 통해 특유의 미스테리하고, 파격적이고, 컬트적인 컨셉트로 2010년대 록 씬에 커다란 반향을 가져오기 이전부터 그들의 음악을 들었던 오래된 리스너다. 나는 반은 농담 반은 진담으로 “아마 내가 남한에서 최초로 고스트를 들은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다니기도 한다(?). 각설하고, 검은 로브와 가면으로 얼굴과 정체를 가린 채 빈센트 프라이스 풍의 B급 호러 영화를 뚫고 나온 으스스한 음악을 연주하던 이 괴상한 스웨덴 밴드가, 미국 최대의 메탈 웹진 『라우드와이어』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0년대를 상징하는 메탈 밴드’로 성장하는 과정은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마치 80년대의 메탈리카처럼 언더그라운드의 신화를 써내려 간 고스트는, 2010년대의 시작과 함께 막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록 키드였던 내가 20대의 끝을 바라보는 뮤지션이자 연구자로 성장하는 10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게 고스트가 “동시대에 가장 사타닉한 음악을 하는 밴드냐?” 라 묻는다면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차라리 “고스트가 2010년대에 얼터너티브가 아닌 옛날 록 음악으로 메인스트림에서 가장 거대하고 또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밴드냐?” 라고 묻는다면 모를까. 우선 고스트는 본격적인 블랙 메탈이나 블랙큰드 데스 메탈, 혹은 비슷한 익스트림 메탈을 하는 밴드가 아니다. 2010년대에 이런 문법을 경유하며 사타니즘적 이미지를 가장 완성도 높은 미학으로 선보였던 밴드로는, “내 몸에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천재 네르갈의 블랙큰드 데스 메탈 밴드 베헤모스가 있다. 가령 그들의 기념비적인 10집 앨범 “The Satanist”(2014, Nuclear Blast / Metal Blade / Mystic / JVC Kenwood Victor / EVP)에서, 라틴어와 사학을 전공한 네르갈은 콥스 페인팅과 피칠갑을 하고 나온 채 방언의 경계를 넘나드는 브루털 보컬을 내지르고 무지막지한 헤비니스를 자랑하는 리프와 반카톨릭적 서사가 담긴 가사를 구조적으로 쌓아가며 사타니즘적 이미지를 거대한 숭고미로 구축해 리스너를 ‘영적’으로 압도해 냈다. 더 옛날로 돌아가 보면, 바쏘리의 쿼쏜이나 메이헴의 유로니무스와 카운트 그라쉬니크, 혹은 80년대에 블랙 메탈을 처음으로 선보인 베놈 같은 ‘진짜 사탄의 자식들’이 있었다.
그러나 고스트의 음악은 이러한 부류와 처음부터 맥락이 달랐다. 고스트 표 록 음악에는 스크리밍이나 그로울링처럼 찢어지는 브루털 보컬도, 사람 하나 죽일 듯 무시무시하게 몰아치는 기타 리프도 없다. 고스트는 본질적으로 블랙 사바스나 ‘In-A-Gadda-Da-Vida’로 유명한 밴드 아이언 버터플라이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헤비 메탈과 프로토 둠 메탈, 하드 록의 향수에서 출발한 밴드다. 여기에 교회 파이프 오르간 같은 악기들로 특유의 분위기를 입히고, 교황의 미사복을 입은 채 해골 분장을 한 보컬 ‘파파 에메리투스’와 ‘이름 없는 망령들(Nameless Ghouls)’로 불리는 시커먼 사제복을 입은 세션들이 무대 위에서 사탄교 의식을 치르는 듯한 공연을 연극처럼 ‘수행’하는 것이 1집과 2집 시절 고스트가 사타니즘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정확히는 고스트가 유명세를 쌓아가며 이런 컬트적인 색채도 점점 옅어져 갔다. 으스스하고 등골 서늘한 호러 영화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집중했던 고스트는, 팝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반기독교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보다는 많은 이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인상적인 후렴과 리프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들의 뮤직 비디오는 초기의 B급 감성으로부터 이탈해 고예산의 화려함으로 무장하기 시작했고, 3집 “Meliora”(2015, Loma Vista)와 EP “Popestar”(2016, Loma Vista)에서 4집 “Prequelle”(2018, Loma Vista)로 이어지는 그들의 디스코그라피는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시기 발매되어 고스트의 커리어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두 싱글 ‘Cirice’와 ‘Square Hammer’는 2010년대 하드 록 최고의 기타 리프들을 담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고스트는 2010년대에 수천만의 유투브 뮤직 비디오 조회수와 백만 구독자를 기록하며 싱글들을 내는 족족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 1위로 보내버리는 메탈 밴드가 됐다. 빌보드 200에서 3위를 기록한 “Prequelle”을 대표하는 싱글 ‘Dance Macabre’는 교회가 아닌 무도회장을 배경으로 하는, 신나는 80년대 파티 록 음악이었다. 이 시기 싱글들의 팝적 호소력은 가히 대단했다.
고스트가 사타니즘적 이미지로부터 이탈해 가는 과정은, 고스트의 얼굴 마담 ‘파파 에메리투스’의 변천사 속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파파 에메리투스’는 ‘사탄교 교황’으로, 고스트를 결성한 록 뮤지션 토비아스 포지가 연기하는 ‘페르소나’다. 그런데 이 파파 에메리투스는 여러번 바뀌었다. 2012년에는 초대 파파 에메리투스가 은퇴하고 2대 파파 에메리투스가 임명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파파 에메리투스 2세는 “교회와 정부를 망치지 못했다”며 밴드에서 잘리고, 그의 동생인 파파 에메리투스 3세가 밴드의 보컬이 되었다. 파파 에메리투스 3세도 곧 목이 잘려 죽었고, 카르디널 코피아라는 다크 카바레 배우 풍의 캐릭터가 파파 에메리투스 4세의 자리를 이어 받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고스트가 만든 세계관 속의 설정 놀이고, 각각의 파파 에메리투스들은 모두 토비아스 포지가 연기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초기의 파파 에메리투스들이 교황의 미사복 코스튬과 해골 분장에 공을 들여 ‘사탄교 교황’이라는 이미지를 완성도 높게 만들어내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근래의 파파 에메리투스는 분장이 귀찮고 거추장스러운지 얼굴 화장도 간소하게 하고 복장도 사제를 연상시키는 거추장스러운 로브 대신 르네상스 풍의 정장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4년 만에 고스트의 신보 “IMPERA”가, 하나도 교황 같지 않은 파파 에메리투스 4세의 명의로 발매되었다. 역시나, 신보에서 고스트는 사타니즘적 이미지로부터 이탈해 팝적 호소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심하는 음악을 만들었던 지난 몇 년 간의 경향을 당혹스러울 정도로 밀어 붙인다. 블랙 메탈 분장을 한 헤비 메탈/하드 록 밴드였던 고스트의 새 앨범은, 마치 80년대의 저니 같은 아레나 록 밴드나 미트 로프의 “Bat Out of Hell”(1977, Cleveland International / Epic) 같은 사운드를 담고 있다. 퀸을 연상케 하는 오페라적 요소들과, 건반 악기와 기타 아르페지오에 힘을 줘서 만들어 낸 멜로디컬함이 앨범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나쁠까? 앨범의 트랙들을 하나하나 뜯어보자.
옛 파워 메탈의 비장미를 연상케 하는 짧은 인트로 연주곡 ‘Imperium’을 지나, 본격적으로 앨범의 포문을 여는 두 번째 트랙 ‘Kaisarion’이 시작되면 꽤나 당혹스럽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이게 고스트의 곡인지 아니면 2000년대 드림 시어터의 아무 앨범이나 기타리스트 존 페트루치의 솔로 앨범에서 꺼내온 재미 없는 수록곡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해맑고 당찬 메이저 코드 위주의 기타 리프가 쭉쭉 뻗어 나가다, 중간에는 기타 톤 메이킹에서부터 리프와 솔로 작곡법까지 모조리 2000년대 존 페트루치를 베껴 온 듯한(정확히는 존 페트루치의 솔로 연주곡 ‘Glasgow Kiss’의 한 부분 같은) 인스트루멘틀 브릿지가 등장한다. 존 페트루치와 드림 시어터가 “Metropolis Pt. 2: Scenes from a Memory”(1999, Elektra)나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2002, Elektra) 같은 장대한 앨범들을 만들 때 즐긴 것이 이러한 인스트루멘틀 브릿지와 기타 솔로 뒤에 코러스가 들어간 클린 톤 아르페지오와 잔잔한 보컬을 배치해 템포를 조절하는 것이었는데, ‘Kaisarion’은 이것도, 심지어 존 페트루치 기타의 클린 톤마저도 철저하게 카피해 온다. 냉정히 말해 고스트의 오리지널리티가 완전히 무너진 트랙이다.
그래서 ‘이게 맞나’ 싶어 정신이 없어질 즈음 세 번째 트랙 ‘Spillways’의 건반 리프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예상 외의 신선함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본 조비의 데뷔곡 ‘Runaway’를 연상시키는 중독성 있는 건반 리프와 이후로 뻗어 나오며 뒤섞이는 헤비한 리프와 보컬 후렴 그리고 기타 솔로는, 80년대 팝 메탈과 아레나 록의 향수를 고스트의 방식으로 매력적이게 복원해 낸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다음 트랙 ‘Call Me Little Sunshine’과 ‘Hunter’s Moon’은 싱글 컷을 하기 위해 작정하고 만들어 낸 것 같은 곡들이다. 고스트의 리프와 멜로디 메이킹 감각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Call Me Little Sunshine’은, “You will never walk alone, you can always reach me / You will never, ever walk alone”이라는, 공연장에서 따라 부르기에 완벽한 인상적인 후렴을 선보임과 동시에 고스트 표 하드 록 특유의 비장미를 놓치지 않는다. 비슷한 경향의 ‘Hunter’s Moon’은 고스트를 대표하는 ‘Square Hammer’나 ‘Rats’ 같은 싱글들이 구축했던 성공 공식을 안전하게 재현하고 있다.
정통 록 밴드의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는 듯한 트랙들도 눈에 띈다. 가령 근래 유행하는 레게톤 리듬을 심포닉 메탈의 극적인 요소와 질주하는 기타 리프로 재해석한 ‘Twenties’는 고스트의 이전 앨범들보다도 헤비한 사운드를 선보인다. 한 편 앨범의 문을 닫는 마지막 트랙 ‘Respite on the Spitalfields’는 확실한 기승전결의 대곡 지향적 구조를 7분 가까운 러닝타임 속에 풀어내다 앨범 인트로 트랙 ‘Imperium’의 리프를 수미상관처럼 가져 온다. 이는 우리가 사랑하던 80년대 메탈 밴드들이 선보이던, 음악의 형식미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하지만 46분의 러닝 타임 속에는, 이런 인상적인 순간들보다는 지루하고 진부한 앨범 필터들이 더 많다. 헤비니스를 포기하지는 못하겠지만 팝도 하고 싶은 토비아스 포지와 고스트는 이 사이에서 어중간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결국 “IMPERA”의 아킬레스건이다. 초기 고스트 음악이 선보였던 핍진성 있는 으스스함의 컬트적 매력이나 짜임새도, 3집이나 4집에서 작정하고 공들여 내놓은 싱글들의 대중성과 팝적 호소력도 제대로 성취해내지 못한 트랙들이 시간 낭비처럼 앨범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 편 밋밋한 프로듀싱과 믹싱은 앨범을 두 배로 지루하게 만든다. 앨범 발매일에 맞추어 고스트의 공식 유투브 채널에 공개된 신곡 쇼케이스 이벤트를 보면, 고스트는 원곡에는 빠진 코러스 백 보컬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역동적인 연주에 힘을 준 라이브를 선보이는데 이는 충분히 인상적이고 위력적이다. 그에 반해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곡들은 그저 깔끔하고 평면적으로만 들린다. 결론적으로 프로듀싱이 밴드 사운드라는 형식이 가진 생동감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이다.
고스트의 “IMPERA”는 메가데스의 “Cryptic Writings”(1997, Capitol) 같다. “Peace Sells… But Who’s Buying?”(1986, Capitol)과 “Rust in Peace”(1990, Capitol)에서 스래쉬 메탈의 장르적 요소들을 완성하고, 메인스트림으로 들어가며 만든 다음 앨범 “Countdown to Extinction”(1992, Capitol)에서 대중성을 겸비한 훌륭한 헤비 메탈 사운드를 선보였던 메가데스는, “Cryptic Writings”에서 지금의 고스트처럼 상업적 압박과 헤비니스에 대한 지향 사이의 어중간한 줄타기를 벌였다. 이후 메가데스는 “Risk”(1999, Capitol)라는 희대의 괴작 속에서 체질에 맞지도 않는 테크노 음악을 억지로 시도하다 완전히 무너지는데, 고스트가 비슷한 전철을 밟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번 앨범은 고스트 표 록 음악 정체성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IMPERA”, Ghost
2022년 3월 11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하드 록, 헤비 메탈, 아레나 록, 팝 록
레이블: Loma Vista
평점: 6.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