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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Mar 16. 2022

리뷰: Conway – God Don’t Make…

#16. 그리셀다 붐 뱁 사운드가 간직한 자기진술의 힘

  “과거회귀적 아방가르드”, “레트로-아방가르드”라는 역설적인 위치에서 요즈음 힙합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그리셀다 레코즈 멤버들의 행보는 화려하다. 물론 그들은 오드 퓨처가 아니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프랭크 오션을 필두로 한 얼터너티브 힙합 크루 오드 퓨처가 10년 전 쯤 힙합 시장 안팎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웨스트사이드 건의 그리셀다가 동시대 대중음악시장에 전방위적 위력을 떨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셀다의 MC들은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놀라운 일관성과 집중력을 보여주며, 스포티파이 탑 100 힙합 차트 따위에 질린 오늘의 리스너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지각 변동’을 감각할 수 있다. 


  그리셀다 레코즈는 은근히 많은 릴리즈들을 찍어내는, 다작을 하는 레이블이다. 정규 앨범은 그렇다 쳐도 믹스테잎은 정말 주구장창 쏟아져 나오는데, 지난 10년 간 그리셀다 레이블의 명의로 나온 믹스테잎만(정규 앨범과 EP를 뺀 믹스테잎만) 무려 26장이다. 이 정도가 되면 믹스테잎의 이름을 기억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여하튼 이런 꾸준함 속에서 그리셀다 레코즈는 묵직하고 둔탁한 붐 뱁 사운드에의 향수에 몽환적인 코카인 랩 텍스처를 더해 자기들만의 매력적인 문법을 확립했고, 에미넴이 세운 메이저 레이블 셰이디 레코즈와의 계약까지 따낼 수 있었다. 그리셀다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만… 이렇게 꾸준하게 쏟아져 나오는 그리셀다 사운드, 이제는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이 와중에 콘웨이 더 머신의 정규 2집 “God Don’t Make Mistakes”가 셰이디 레코즈를 경유해 발매된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콘웨이 더 머신은 아이티계 래퍼 마크 하미와 함께 그리셀다 사운드의 핵심을 구축해 온 MC로, 그리셀다의 수장 웨스트사이드 건의 이복 형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콘웨이가 셰이디 레코즈를 통한 메이저 데뷔 앨범을 준비한다는 계획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은 2019년이다. 이게 장장 3년에 걸쳐, 2022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고 발매가 된다니, “콘웨이가 얼마나 철저히 이를 갈며 완성도 높은 앨범을 준비했을까?”에 대한 기대는 이미 뜨거웠다. 


  하지만 한 편으로 우리는, 재작년과 작년, 웨스트사이드 건의 “Pray for Paris”(2020, Griselda / EMPIRE)와 마크 하미의 천재적인 “Pray for Haiti”(2020, Griselda)를 통해 그리셀다 사운드의 정점을 보았다. 이 시점에 뒤따라 나오게 된 콘웨이의 신보가 과연 무엇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앨범에 대한 기대의 뒤꽁무니를 쫓아 왔다. 심지어 앨범 발매 나흘 전에는 콘웨이가 “이번 앨범을 끝으로 그리셀다와 셰이디 레코즈를 떠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셀다 바깥에서 음악을 하게 된 콘웨이가 “God Don’t Make Mistakes”를 통해 앞으로 선보일 커리어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까지 생겨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베일을 벗은 “God Don’t Make Mistakes”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00 bpm을 넘어가지 않는, 둔탁한 킥-스네어 드럼 루프가 맴도는 붐 뱁 사운드는 그리셀다의 다른 모든 릴리즈들처럼 “God Don’t Make Mistakes”를 장악하고 있다. 붐 뱁 비트 위에 리버브와 앰비언스에 힘을 준 믹싱을 끼얹어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Pray for Haiti”와는 또 다르게, 붐 뱁 자체의 오리지널리티에 더욱 천착하는 앨범이 만들어졌다. “하, 이런 그리셀다 붐 뱁 사운드는 이제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위에서도 던졌던 불평불만이 목 끝까지 올라온다. 그런데 역시나 그리셀다의 다른 모든 릴리즈처럼, 그러한 문법을 너무나 매끄럽고 유려하게, 완성도 높게 그려내서 불평불만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잘 해서 짜증나고, 짜증나게 잘 한다. 잭 데 라 로차를 연상시키는 높은 피치의 랩 톤이 은근히 거슬리는 이복 동생 웨스트사이드 건과는 다르게, 콘웨이의 랩은 무게의 중심도 잘 잡고 완급 조절에도 능해서 인스트루멘틀 속에 녹아든 악기들 중 하나처럼 편안하게 들린다.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동료들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두 번째 트랙 ‘Tear Gas’에서는 이제 거장 반열에 오른 남부의 두 래퍼 릭 로즈와 릴 웨인이 거장다운 랩을 선보인다. 특히 릴 웨인이 인상적인데, 전성기 시절의 고질이었던 특유의 하이 톤을 덜어낸 근래 릴 웨인의 랩은 작년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트랙 ‘HOT WIND BLOWS’의 피처링에서 보여준 것처럼 원숙미를 뽐내며 리듬 속에 완벽히 녹아 든다. 프로듀서들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리셀다 소속의 대린저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 할 일을 했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King’s Disease II”(2021, Mass Appeal / The Orchard)와 “Magic”(2021, Mass Appeal)에서 나스와의 완벽한 합을 보여주기 시작한 히트-보이도 기여를 했다. 알케미스트는 3번 트랙 ‘Piano Love’에서 등골 서늘한 마피오소적 분위기를 훌륭히 연출해 냈다. 


  시종일관 어둑어둑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붐 뱁 사운드 속에서, 콘웨이는 섣불리 꺼내기 힘든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 간다. 그는 오프닝 트랙 ‘Lock Load’에서부터 총에 맞았던 이야기를 꺼낸다. 스스로 겪고 있는 우울 장애와 신경증, 거리에서 마약을 팔던 불안한 과거, 아들의 죽음과 자살한 사촌이 콘웨이 더 머신의 랩 속에 등장한다. 비참함보다는 씁쓸함이 맴도는 러닝 타임 속에서 앨범은 마지막 트랙 ‘God Don’t Make Mistakes’를 향해 달려간다. 여기에서 콘웨이는 자신의 끔찍한 생애사에 여러 가정들을 대입해 본다. “내가 여전히 거리에서 마약을 팔고 있다면?” “감옥에 있더라면?” 같은 질문들 끝에, 콘웨이는 현재에 도착한다. 알케미스트와 협업하고, 에미넴과 계약한 래퍼가 된 지금으로, 콘웨이 더 머신은 끔찍한 삶을 거치며 마침내 당도한다. “God Don’t Make Mistakes”라는 앨범 제목, 그리고 트랙 제목은 여기서 커다란 무게를 가지고 되돌아온다. “주님께서는 실수를 하지 않으신다”라는 운명론적 사고 속, 콘웨이 더 머신은 덤덤히 토해내는 듯한 자기진술을 끝으로 과거를 청산한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그의 커리어가 갖는 새로운 시작점을, 이러한 애티튜드에서 포착할 수 있을지 모른다.



“God Don’t Make Mistakes”, Conway the Machine


2022년 2월 25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이스트 코스트 힙합, 붐 뱁, 컨셔스 힙합
레이블: Shady Records, Griselda, Drumwork Music Group
평점: 7.4/10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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