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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Aug 06. 2024

펜타포트 2024, 사적이고 뒤늦은 후기

내년이면 펜타포트가 2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나는 페스티벌이라는 포맷에 자본이 몰리고 현대카드가 시장에 뛰어들며 파이가 비대해진 2010년대 초, 정확히는 중3이던 2013년부터 페스티벌을 다녔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막대한 투자에 비해 돌아오는 게 적고, 기획 운영 측면에서 테크니컬한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는 걸 깨닫고서는 2년만에 시장에서 발을 뺐다. 여름 페스티벌 시장의 아티스트 몸값만 올려놓고, 시장을 슬그머니 빠져나와 섭외와 관중 및 베뉴 관리가 훨씬 수월한 단독 콘서트 시장으로 도망쳤다. 사람들이 헤드라이너 이름값 때문에 페스티벌을 가는 시대였기 때문에, 자본의 입장에서 수지타산을 따져보면 그게 맞았다. 다른 대규모 페스티벌도 201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문을 닫았다. 그 시절 페스티벌 시장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봤던 이벤트는 라디오헤드를 불렀던 2012년 지산 밖에 없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카더라도 있다.


하지만 펜타포트는 주최가 바뀌고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어찌저찌 살아 남았다. 살아남은 놈이 강한 놈이다. 헤드라이너의 이름값에 의존하지 않고도 좋은 공연들을 구성하려는 방향성의 정립도 이러한 생존에 필요했던 것 같은데, 그런 맥락에서 개인적으로는 헤드라이너 무대 이후 심야 공연으로 남한의 훌륭한 인디 뮤지션들의 무대를 꾸민 2016년 펜타포트가 제일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위저를 보러 간게 아니라, 단편선과 전범선과 술탄 오브 더 디스코에 춤을 추러 16년도 펜타포트에 갔고, 새벽의 관중들은 그들의 문법이 익숙하던 익숙하지 않던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페스티벌이 ‘공연을 보는 문화’에서 ‘현장의 분위기를 즐기는 문화’로 바뀌어 가는 기류는, 코로나 이후였던 2022년 펜타포트에서 보복소비 심리와 맞물려 ‘그저 놀고 싶어서 놀러 온’ 10만 관중의 존재를 통해 오롯이 드러났다. 펜타포트는 이를 통해 유지와 흥행을 위한 안정적인 소비자 모델을 새롭게 찾은 듯 보였다. 그리고 올해의 펜타포트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여러 시스템적 한계와, 이전보다 진보한 지점을 여럿 보여준 듯 싶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주최측의 온열 질환 대책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폭염의 햇빛만 내리쬐는 야외에서 기나긴 생수 부스 줄을 보며 한숨을 쉬는 것 말고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서드 스테이지를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실내 냉방 공간으로 만들었고, 곳곳에 유사한 ‘더위 대피소’ 격의 공간들을 배치해 뒀다. 살수차가 냉수도 열심히 뿌려줬다.


하지만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속에, 동아시아에서 여름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게 맞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여름 바캉스 시즌을 끼고 형성된 유럽과 영미권의 페스티벌 문화는, 한 여름에도 푹푹 찌지는 않는 서안 해양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의 생활양식에 맞춰 발전해 왔다. 그들의 여름 날씨와 우리의 여름 날씨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 만 관중이 열사병으로 쓰러지지 않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더 많은 냉방 장비를 돌려야 하고 하염없이 물을 뿌려 대야 한다. 서구권의 페스티벌과 동아시아의 페스티벌의 탄소 배출량은 이런 지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 사막 한 가운데서 기획되는 코첼라는 여름이 아니라 4월에 행사를 치른다. 일본의 후지나 섬머소닉, 그리고 이들과 연계하는 남한의 페스티벌 시장이 ‘여름 이벤트’로서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하위문화 향유자들의 교차로로서 펜타포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다. 펜타포트의 라인업이 다변화되면서 다양한 장르문화의 팬들이 페스티벌로 유입됐다. “디스토션이 없으면 록이 아니라는” 나이 지긋한 올드스쿨 메탈 팬, 얼터너티브와 인디 향유자, 하드코어 펑크 커뮤니티의 펑스들, 아이돌 팬, 대중음악의 라이트 팬 등등이 베뉴에 모습을 비추었다. 하지만 이들이 유기적으로 부딪히기보다는 서로가 섬이 되어 ‘같은 장소에서 다른 것만 보는’ 것만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상이한 공연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주최 측의 공연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뒤섞여 트러블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예컨대 하드코어 펑크 공연에서는 퍼포머가 관중들을 무대 위로 뛰어 올라오게 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허물고 한 문화의 경계 속 ‘동지’로 현장의 모두를 재구성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리고 펜타포트의 첫 날 헤드라이너는 포스트 하드코어의 떠오르는 스타가 된 턴스타일이었는데, 턴스타일이 무대 위로 관중들을 불러내는 것에 대한 여러 문제제기들이 공연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주최 측이 이런 일이 벌어질 걸 모르고 섭외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과도한 락 놀이 자제’라는 괴상한 경고문과 함께, 시큐리티들은 관중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관중을 ‘통제’하기 위한 존재로 돌변했다. 아티스트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 관중들과 상호작용하는 것도 금지했고, 메탈의 변천사를 40년 간 함께 한 세풀투라의 고별 공연에서 관중들이 스스로 안전을 신경 쓰며 서클 핏을 만들고 슬램과 모슁을 하려는것도 막았다. 정작 슬램과 모슁이 어울리지 않는 무대에서 무뢰배 같은 관중들이 제멋대로 슬램을 하려는 건 신경 쓰지 않아 여럿이 휘말리고 방해를 받았다.


한편 아이돌 액트들의 공연 역시 여러모로 문제적이었다. 한 편으로는 “어떻게 아이돌 밴드가 록 페스티벌에 나오냐”는, ‘록’이라는 기호를 이상하게 우상처럼 숭배하는 순수주의자들의 ‘떼쓰기’가, 다른 한 편으로는 아이돌 단독 공연 문화에 익숙한 팬들이 다른 아티스트들의 공연이나 안전은 고려하지 않고 3일 내내 펜스 앞에 줄서기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메인 스테이지와 서브 스테이지의 음향이 뒤섞이며,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고 이것이 팬덤 간의 인터넷 싸움으로 번지는 일들도 있었다. 20만원 주고 3일권을 사놓고서는 좋아하는 액트만 보고 빠지는 관중들에게, 다른 좋은 경험들을 놓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라고 했지만 마지막 날에 세풀투라까지 보고 잔나비는 패스한 채 집에 가기는 했다 ㅋㅋㅋㅋㅋ) 페티시즘을 충족하기 위한 공연문화가 아니라 체험을 위한 공연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무대들은 끝내주게 좋았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일을 하느라 저녁부터 공연을 봤고, 마지막 날은 처음부터 공연을 봤다. 그래서 꼭 챙겨보려고 했던 메탈 액트들… 램넌츠 오브 폴른,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미역수염을 다 놓쳐버렸지만 그래도 좋은 공연들을 많이 봤다.


첫째 날은 얼트 거장들을 보며 공부하는 시간 같았다.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일본의 포스트-록/매스 록 거장 toe는 연주의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소닉 유스라는 전설적인 과거를 뒤로 하고, 트랩 비트 위에서 노이즈 메이킹을 시도하는 올해 최고의 아방가르드 앨범을가져 온 일흔의 거장 킴 고든의 무대는 압도적이었다. (앨범이 발매된 지난 4월 대중음악웹진 온음에서 이 앨범을 다뤘었다 - https://www.tonplein.com/review/kim-gordon-『the-collective』/) 하지만 이 실험가에게 소닉 유스의 곡을 연주해달라고 계속해서 얘기하는 관중들에게는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이 없음을 느꼈다. 이미 소닉 유스 시절부터도, 킴 고든의 음악은 소음의 다양한 양태를 마주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하기 위한 것이었지 히트 곡 파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둘째 날에도 저녁에 도착해 라이드의 무대부터 보았다. 비록 파란노을은 놓쳤지만… 슬로다이브와 함께 영국 슈게이즈를 일궈 낸 라이드는 꼭 보고 싶었는데, 신발만 보고 연주하는 밴드의 무대에서 가장 질서정연하고도 즐거우며, 환대 받는 듯한 느낌의 서클 핏을 즐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만 슈게이즈 특유의 노이즈 월이 거대하게 세워져 관중을 압도하지는 못했고 그래서 음향에 아쉬움이 남았다. 한 편 재작년 단독공연으로 한 번 봤었던 잭 화이트는 조그마한 실내 스테이지와는 또다른 경험을 선사하며 스케일 위에서 날뛰는 기타 기인의모습을 선보였다. 오프라인 한정으로 바이닐로만 공개했던 신보 No Name이 온라인으로 공개되자마자 선보인 공연이었는데, 개인적으로 2집 이후 블루스와 록이라는 두 장르문법의 근본 위에 가장 탄탄히 세워진 앨범이라고 생각했고 라이브 역시 그러한 토대 위에서 질주했다. 다만 아쉬웠던 건 셋리스트. 잭 화이트는 셋리스트를 즉흥적으로 가져가는 아티스트지만 대개 첫 곡으로 신보의 트랙이나 Icky Thump 따위의 곡들, 그리고 앵콜 곡으로는 라쿤터스 시절의 앤썸 Steady, as She Goes와 Seven Nation Army를 선보이는데, 더워서 힘들었는지 이번에는 Steady, as She Goes를 생략한 채 공연을 10분 일찍 끝냈다.


마지막 날에도 재미있는 액트들이 많았다. 실리카겔 멤버 김춘추의 프로젝트 놀이도감은 관악기의 활용을 통해 본 이베어를 연상케 하는 따뜻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그렸다. 예전 소규모 클럽에서 보았을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보컬에 힘도 안 들어가고 리프의 전개도 맥이 빠졌던 세일러 허니문은, 조금 더 큰 공연장에서 음압으로 관중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자 펑크 전사이자 노이즈 메이킹의 달인이 됐다. 세이수미야 명불허전이었고, 서프 록의 세례를 받은 밴드인 만큼 뜨거운 태양 아래서 흐늘흐늘거리며 즐기기 딱이었다. 올해로 환갑이 되셨다는 이상은 선생님의 무대에 2-30대 관객들이 떼창을 하는 광경은 묘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세풀투라. 브라질에서 조그만 익스트림 메탈 밴드로 시작해, 영미권과 독일 바깥에서 스래쉬의 문법을 다시 쓰고, 90년대에 들어서는 그루브 메탈의 박자 감각과 브라질 민족 음악의 타악 활용을 이식해 자신들만의 경로를 제시했던 밴드. “세풀투라를 만들었던 카발레라 형제가 없으니 재미 없을 것이다”라는 말들이 무색하게, 사운드체크에서부터 무식하게 쏟아져나오는 블래스트비트와 공격적인 리프들은 어마어마했다. 고별 투어 무대이니만큼 셋리스트도 그들의 방대한 역사를 골고루 아우르는 알짜배기였는데, 초기에 시도하던 데스 메탈의 흔적이 남아 있는 Schizophrenia에서부터, 스래쉬 클래식이 된 Arise, 본격적으로 그루브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Chaos A.D.의 전설적인 넘버 Refuse/Resist, 그리고 익스트림 메탈 씬에서 가장 ‘독특한’ 명반 Roots의 명곡들로 꾸민 마무리까지, 흥분과 도취의 메탈 여행을 떠났다 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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