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름 여행 #1
7시 20분 삿포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과정은 스펙터클했다. 지방에 사는 지라 12시 30분 공항버스를 타고 시간 넉넉하게 인천공항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출발 30분 뒤인 새벽 1시에 공항버스가 고장 났다. 비몽 사몽으로 다음 차를 기다려서 합승을 했다. 기사님이 빠른 속도로 인천으로 내달리셨다. 너무 빨라서 버스가 뜰 것 같았다. 게다가 보통 들르던 김포공항도 안 들린다고 한다. 계획보다 1시간 빠른 새벽 3시 반에 인천공항 1 터미널에 도착했다. 잠을 버스에서 대충 2시간 밖에 못 잔 채로 공항에 가니 매우 피곤했다. 하지만 줄 서서 짐 부치고 출국 수속하니 4시 30분이 되어 있었다. 게이트 의자에서 눈을 붙이고 푸드코트 열자마자 쌀국수를 먹고 7시 20분 삿포로행 제주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원래 비행기를 타면 내내 게임을 하는 아들도 잠들었다. 세명 모두 비행기에서 진정한 잠을 잤다. 다들 비행기에서 좀 자서 체력은 회복되었다.
비행기는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고 간단한 입국 수속을 밟았다. 삿포로로 가는 쾌속 기차표를 끊는데 아빠가 일본어를 할 줄 아니 엄마의 느슨한 준비에도 별 탈 없이 삿포로역에 도착했다. 일본인이 일본말을 하면 전혀 모르겠고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도 헷갈린다. 길에 쓰여있는 각종 일본어도 읽을 수 있는 게 없어서 당황스럽다. 하지만 아빠는 일본어에 문턱이 없어서 일본여행이 또 다른 국내여행 같다고 하니 일본여행에 대한 온도차가 참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오가 다 되어서 숙소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엄마가 간단하게 구글맵에서 찾은 식당이다. 각자 먹고 싶은 카이센동을 시켰다. 나는 회를 좋아해서 먹고 싶은 게 딱 하나 카이센동이었다. 여러 맛집을 찾아봤는데 가격이 저렴하진 않았는데 여기는 점심 특선이라 좀 저렴한 가격인 것 같아서 주문했다. 아들은 자기가 먹고 싶은 게, 연어, 새우만 올라간 회덮밥을 먹었다. 남편은 생선회 두 종류 말로 된 회덮밥을 먹었다. 점원이 음식을 서빙하면서 무슨 종류의 회가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 회가 살살 녹는 게 역시 본토의 맛이었다. 다들 맛있게 먹었다.
근처 숙소로 갔다. 1시쯤이었지만 다행히 체크인이 되었다. 아빠는 일본어로 모든 대화를 하고 카운터에 전화 사용을 부탁해서 박물관 투어 예약까지 했다. 방은 침대 3개 방으로 좁은 편이었다. 캐리어를 펼쳐놓고 필요 없는 짐을 놓고 얼른 밖으로 나섰다. 앞으로 삿포로 일정에 비예보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화창하고 시원한 날씨라 오늘 야외활동을 다 하겠다고 각오했다. 여행책에서 우리나라보다 10도가 낮다고 했다. 긴 청바지에 반팔티 그리고 추울 때를 대비해 카디건을 챙겼다.
거리에 나서니 확실히 더위가 한국의 강력한 더위와는 다르다. 볕도 더 약하고 바람도 선선한 듯하다. 햇살이 좀 순하게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먼저 홋카이도 옛 도청을 향해 걸었다. 여행책에는 도청이 공사 중이라고 했는데 마침 지난주에 공사를 마치고 개관했다. 들어가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서 밀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밀크 아이스크림이 정말 깊고 고소한 달콤한 맛이어서 신기했다. 맛을 음미하게 되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아들은 사은품 뽑기에만 관심이 가 있다.
그리고 계속 거리를 걷는데 화단이 참 예뻤다. 꽃들이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는 일년초들인데 정갈하고 심지어 색이 더 진해서 유난히 빛나보였다. 잎도 푸르고 건강한 게 신기했다. 현재 더위를 겨우 버티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친 식물들이 떠올랐다. 식물들은 일본이 원산지인 건가 아니면 우리나라보다 견딜만한 더위여서 꽃이 건강한 건지 의문이 들정도로 꽃들이 쌩쌩했다. 길에서 다양한 색을 끊임없이 마주치게 되어서 눈이 즐거웠다.
그다음으로는 시계탑을 지나 오도리 공원에 갔다. 시계탑 앞에서 모두들 찍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도리 공원에서 사 온 옥수수 버터 구이를 먹었다. 유튜브에서 본 영상에서 오도리 공원 옥수수가 유명하다고 해서 꼭 먹어보고 싶었다. 한 입 먹었는데, 옥수수가 달고 부드러워서 녹아내렸다.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앞으로 매일 홋카이도 옥수수를 사 먹었다.
몇 블록 내려가서 맥주 축제 현장에 갔다. 다양한 맥주 브랜드들이 커다란 천막을 치고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맥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한 테이블을 잡아 보기로 했다. 맥주브랜드가 세 종류였는데, 홋카이도에 왔으니 삿포로 부스로 갔다. 제일 큰 엄청난 대형 천막 부스 안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떠들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첫 잔으로 흑맥주와 꼬치구이를 시켰다. 맛이 깔끔하고 시원했다. 두 번째는 라거맥주를 시켰는데 이것 또한 깔끔하고 진했다. 대낮에 공원에서 이렇게 노상 맥주를 마시는 게 참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다음으로 스스노키 구역까지 쭉걸 었다. 유명한 니카상 사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메가돈키호테에 들어갔다. 캐릭터를 좋아하는 아들이 앞장서서 3층 캐릭터 구역을 전부 훑었다. 없는게 없는 잡화점 같았다. 나는 잠 못 잔 것과 맥주 마신 것이 겹쳐서 다리와 허리가 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 구경하고 백화점에서 유니클로 티도 샀다. 수많은 브랜드와 쇼핑몰이 있었고, 편의시설이 있는 삿포로는 서울에 온 것처럼 볼 것도 많고 살 것도 많은 도시였다.
마지막으로 저녁밥은 식당 말고 포장해서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하 식품 코너 두 군데를 돌아서 괜찮은 초밥과 컵라면을 사서 호텔로 돌아갔다.
이 호텔에 대욕장이 있다고 해서 다들 저녁을 먹고 짐을 챙겨 욕장으로 내려갔다. 남편과 아들은 남탕에, 나는 여탕에 갔다. 탈의실이 있고, 앉아서 씻는 구역과 큰 탕이 하나 있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물이 콸콸 나와서 정말 기분 좋게 씻었다. 일본에 이런 대욕장 시설이 많아서 방의 욕실은 사용할 일이 아예 없었다. 여행 전날 무리해서 달리기를 했더니 다리 인대가 좀 아팠는데 그것이 뜨거운 물 안에서 풀리기를 바라며 5분 정도 물 안에 들어가 스트레칭을 했다. 하지만 공항에 가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낮에 맥주를 마시고 뜨거운 물 목욕까지 하니 몸이 제대로 풀려 버렸다. 침대에 눕자마자 언제 잠들었는 지도 모르게 기절해 버렸다. 삿포로에서 이틀 치 잠을 몰아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