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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여름 온천

홋카이도 여름여행 #3

by 꽃정원

오늘은 하코다테에서 노보리베츠로 간다. 차로 달려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홋카이도 전체 크기는 남한의 80% 정도로 비슷해서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데 두세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가는 동안 산도 보고, 바다도 보고, 예쁜 시골 풍경도 보는게 재미 있어서 그렇게 지루하진 않았다.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에서 자유여행의 묘미가 나온다.


노보리베츠는 홋카이도 남쪽의 작은 시골 마을이고 온천이 많은 관광단지는 산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속도로 IC를 나오자 입구에는 커다란 도깨비 모양 동상이 있어서 신기했다. 산길을 타고 안으로 들어가니 큰 온천시설이 나타났다. 동네 분위기가 오래된 관광단지라는 인상을 받았다.

산길을 따라 쭉들어가니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맑은 청록색 온천수와 증기가 피어오르는 연못이 나왔다. 이곳은 오유누마 라는 곳으로 물 온도가 약 50도, 바닥은 130도 가까이 되는 뜨거운 황천탕이라고 한다. 달걀 썩는 것 같은 옅은 유황냄새가 나긴 했으나 야외라서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연못에서 산길을 따라서 걸어 지옥온천 트레킹 입구에 갔다. 많은 한국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초등학생 아이가 유황냄새를 힘들어하고 더운 한낮의 날씨와 뉴질랜드 로토루아 와이오타푸 지열공원에서 다양한 화산 지형을 봤던 터라 지옥 온천 트레킹은 하지 않고 다시 차로 돌아갔다.

노보리베츠의 료칸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이 동네에는 다양한 료칸 시설이 있는데, 료칸이란 다다미방과 온천과 가이세키가 있는 숙박시설이다. 이 호텔은 규모도 크고 저녁에 대게 무한 리필 부페가 있다고 해서 골랐따. 호텔에 체크인을 하니 유카타를 골라갈 수 있었다. 방은 오래된 듯했지만 다다미방과 벽장이 일본 전통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모두 유카타를 입고, 닌자를 좋아하는 아이는 특히나 더 신나서 사진도 찍고 닌자 은신술을 흉내냈다.

호텔 지하의 대욕장으로 갔다. 역시 남자와 여자가 분리되어 있다. 노천탕을 비롯해 열개가 넘는 온천탕이 있었다. 전통 료칸에 왔으니 두시간 있다 보자고 하고 헤어졌다. 한 여름이라 쉽지 않았지만 몸에 좋을 것같은 뿌연 온천물에 최대한 몸을 담그고 있었다. 여러가지 주문을 외우며 최대한 오래 버티다가 미지근한 탕으로 가서 몸을 풀고, 다시 뜨거운 탕으로 갔다가 저온탕으로 가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몸으 피로가 쫙 풀리는 기분 이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직원이 의자를 치우고 이불을 깔아 놓았다.


저녁으로는 기대하던 7시 대게 무한리필 뷔페에 갔다. 우리 나라 결혼식 피로연 같은 익숙한 분위기 였다. 대게가 짜지 않아서 살이 꽉차 있어서 아들은 신나게 껍데기를 부시고 바르고 먹었다. 해산물이 풍부한 홋카이도이기에 가능한 식사였다. 아들은 천국을 만났는지, 나중에 자기가 크면 아빠 엄마를 데리고 효도여행을 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어른들은 회를 위주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왔다. 몸은 풀리고 배는 부르고 노곤해진 몸 때문인지 바로 거부할 수 없는 잠에 들었다.

다음날 또 아침 온천을 한번 더 하고, 이번 여행의 유일한 조식도 먹을 수 있었다. 아침에도 복작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음식을 담아 나갔다. 아들은 시리얼과 빵으로 서양식, 남편은 완벽한 일식 나는 일식반, 양식반으로 각자 개성이 달랐다. 작은 공기에 밥을 담고 명란과 낫토와 반숙달걀을 올렸다. 미소된장까지 함께하니 한상이 완벽했다. 일본에서 일년간 교환학생 경험이 있는 남편은 일식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일식은 밥이 메인이고 반찬들은 밥을 더 맛있게 돕는 역할이라고 설명해줬다. 바로 옆 테이블에 밥 공기를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비슷한 외모에 참 다른 문화를 느꼈다. 어찌 됐든 나는 아침식사로는 밥보다 빵이 더 좋다.


온천세를 내고 체크아웃을 했다. 일본 주차 요원이 차빼는 것을 도와주는데 "오라이 오라이"라고 하는 말이 정확히 들려서 놀라우면서 웃겼다. 내가 한국에서 들어도 보고 해보기도 한 말인데, 학교에서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이어서 쓰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 일본 현지에서 일본인들이 익숙한 발음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일본어가 맞구나 싶었다. 호텔 직원이 초등학생들과 "짱깸뽀!"라고 하며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도 들었다. 나에게 일본어는 완벽한 외국어지만 그 순간만큼은 말이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에게 일본어는 여전히 역사적 상처와 연결돼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벼운 말' 속에서 서로가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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