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름여행 #4
이제 한 시간쯤 달려 후라노로 간다. 남편이 가는 길에 있는 주유소에서 자연스럽게 주유를 하겠다고 여러 군데 지나쳤다. 하지만 막상 기름을 넣을 때가 되자 주유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은 기름이 얼마 안 남게 되어서 고속도로에서 나와 작은 시골마을에서 기름을 넣었다. 주유소는 약간 떨린다. 왜냐면 나라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간단하게 잘 되었다. 유종 선택하고 카드를 넣은 뒤 주유를 하고 최종 결제가 완료되고 영수증을 받는 식이다. 호주나 미국은 기름을 넣고 가게에 들어가 기계번호를 말해서 결제를 하곤 했다. 일본은 우리나라 식이었다. 기름값 또한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그리고 이번 홋카이도 렌트 여행에서 남편에 특히 만족했던 점은 ETC라는 고속도로 요금 선불카드를 대여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하이패스 같은 기기를 빌리는 것인데, 여기에 미리 4일 치 요금을 결제해 놓았다. 그래서 고속도로 IC를 들어가는 것도 나가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멈춤 없이 개찰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몇 년 전에 큐슈에서 렌트 여행을 했는데 그때는 이런 서비스가 없어서 고속도로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차를 멈춰서 표를 뽑고 돈 지불하고 이런 불편이 많이 떠오르나 보다. 그때는 시어머니가 건강하셔서 조수석에 앉아서 남편 운전 보조를 해주시곤 했다. 나는 그때는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여기저기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오늘 후라노 지역은 내가 제일 기대하는 곳이다. 왜냐면 나는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좋아하는데 후라노는 꽃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많기 때문이다. 홋카이도 여행하면 눈 쌓인 겨울을 떠올리지만 여름의 홋카이도의 매력은 바로 오색의 꽃이 있다는 점이다. 정원을 좋아하는 나는 이 지역의 질서 정연한 꽃밭사진을 핸드폰에 저장해 놓고 우리 집 마당을 이렇게 해보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결국 실패했지만 따라 하고 싶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팜토미타의 채색의 꽃밭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라벤더는 다 수확을 해서 줄기밖에 남지 않았다. 대신 옆 행복의 꽃밭으로 넘어가니 조금이나마 남은 라벤더가 있었고. 안젤로니아나 붓들레아 같은 알록달록한 일년초를 여기저기 심어놔서 그래도 상상하던 꽃밭은 볼 수 있었다. 초록이 흩날리는 가로수와 그림 같은 집까지 꿈같은 공간이었다. 이곳은 열심히 사진을 찍는 한국, 일본 아주머니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라벤더가 많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진한 라벤더 향기가 가득했고 보라색 세상 같았다. 라벤더맛이 나는 보랏빛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라벤더 색, 라벤더 향, 라벤더 맛까지 오감으로 라벤더를 만나는 라벤더 세상 같았다. 남편은 꽃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부인의 인생샷을 남겨주겠다고 열정을 다해 사진을 찍어줬다. 아들은 내 짐을 들어주며 따라다녔다. 오늘 하루 우리 가족 한정 모델이 된 것 같았다.
그다음으로는 근처에 있는 다이세쓰잔 국립공원 전망대에 갔다. 나의 취향이 꽃이라면 남편의 취향은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구불구불한 산길 드라이브 코스로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어제 봤던 지옥계곡의 증기가 피어오르는 분화구와 비슷한 산 꼭대기가 보이고 앞으로는 비에이지역이 넓게 펼쳐진 탁 트인 전망대였다. 사실 오늘 본 많은 풍경이 몇 달 전에 다녀온 뉴질랜드 북섬을 떠올리게 했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갔을 때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심지어 고속도로와 시골마을의 모습도 두 나라가 매우 흡사했다. 단층 건물에 정돈되고 평화롭고 인적 드문 시골이 참 예뻤는데, 홋카이도에서도 이런 모습이 많이 보였다. 남편은 좁은 이차선 고속도로도 비슷하다며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그다음으로는 청의 호수에 갔다. 홋카이도를 잘 모르던 때도 이 푸른 호수의 이미지를 본 적이 있다. 맑고 신비로운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명성 때문인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줄이 너무 길어서 아쉽지만 포기했다.
그리고 사계채의 언덕으로 갔다. 내리자마자 거름냄새와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겼다. 여기도 꽃을 질서 정연하게 심어놓은 사진 스폿으로 팜토미타와 다르게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팜토미타가 기대보다 규모도 작고 라벤더가 없어서 못내 서운하기는 했는데, 여기는 내가 기대하던 꽃 블록버스터를 볼 수 있었다. 입장해 보니 넓은 언덕 두세 개가 다 꽃들로 뒤덮여 있었다. 꽃으로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배치가 인상적이면서 규모도 넓어서 끝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작게 보였다. 전 세계의 남녀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그냥 바라만 봐도 눈이 행복했다.
꽃은 해바라기, 안젤로니아, 샐비어, 메리골드 같은 우리나라 화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일년초였다. 하지만 색을 맞춰서 빽빽하게 심어놓으니 너무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특히 운 좋게도 8월 초 해바라기가 만개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수천 개의 해바라기 꽃이 옹기종기 모인 풍경이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듯 했다. 8월 초라서 라벤더는 놓쳤지만 피어난 해바라기는 볼 수 있어서 다행었다. 꽃은 짧기에 더 소중하다. 나도 어설프게나마 꽃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대량의 꽃과 땅을 이렇게 예쁘고 절도 있게 관리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잡초도 뽑아야 하고, 시든 꽃도 잘라줘야 하고, 꽃이 피는 시기조차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닌데 이곳은 기후와 관리의 승리인가 놀랍기만 했다. 모든 화단을 다 돌며 남편은 또 한 번 인생샷을 찍어주겠다고 애썼다. 이런 꿈 같은 풍경에서 웨딩 화보 정도는 찍어줘야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피곤해져서 마지막 남은 일정은 빠르게 돌았다. 너른 들판에 나무나 길 같은 것들이 다양한 이름이 붙여서 관광 스폿이 되어 있었다. 한 여름인 지금 보기에는 좀 소박하긴 했다. 아마 겨울에 눈 쌓인 가운데 보면 멋있는 곳인듯 했다. 그렇게 몇 군데를 돌고 숙소가 있는 아사히카와로 향했다.
아사히카와는 인구 25만의 작은 도시로 호텔이 많지 않아서 예약할 때 많이 애를 먹었다. 어쩔 수 없이 평소 예산보다 비싼 가격의 리조트로 방을 잡았다. 하루 밤 자는데 평소보다 많은 가격을 쓴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그런데 이방을 예약할 때 2명으로 예약을 해서 아들까지 3명이면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며 13만 원을 더 받아갔다. 쓰린 속도 모르고 아들은 공짜 아이스크림과 체험거리를 준다며 신났다. 여러 가지 어린이 친화 프로그램이 있는 리조트였다. 남편은 일본어가 유창한 덕에 호텔 직원에게 주변에 맛있는 가게가 어디인지도 알아왔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놓고, 미리 찾아놓은 징기즈칸 식당으로 갔다. 호텔에서도 그 집이 맛집이라고 인증해줬다. 징기스칸이란 홋카이도 향토요리로 양고기를 야채랑 구워 먹는 독특한 소스와 함께 먹는다고 한다. 다른 일본인들도 대기를 하고 있어서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차례를 기다렸다. 한국에서 맛집 줄 설 때와 비슷해서 꼭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곧 우리 차례가 되었고,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양고기 모둠 구이를 시켰다. 나는 생맥주를 시켜서 양고기와 구운야채과 곁들여 먹으니 잘 어울렸다. 고기가 너무 부드러워서 부위별로 여러 번 더 시켜서 먹었다. 여행책 설명을 봤을 땐 샤브샤브나 양념갈비 같은 느낌을 상상했는데, 그냥 양고기 구이였다. 양고기가 어린 양이라 부드럽고, 양고기 냄새가 딱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만 나서 남편 아들까지 다 잘 먹었다. 아들은 자기가 고기를 구워주고 싶다고 집게를 들고 적극적으로 고기 굽기를 도왔다. 먼저 비계로 불판을 닦고 양고기를 올리고 뒤집어서 익었나 확인했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는 쉬고 싶다고 하다가 아빠가 매번 고기를 굽는데 대단하다고 했다. 결국에는 자기가 끝까지 구웠다고 많이 뿌듯해했다. 함께 여행을 다니는 아들은 점점 할줄 아는게 많아진다.
맛있는걸 먹으니 기분이 풀어져서 비싼 가격에 온 리조트니 모든 걸 다 해야 된다고 지하에 목욕탕에 내려갔다. 이제 벌써 세번째라 대용장 사용 방법은 익숙하다. 먼저 씻고 열탕, 온탕을 오가며 몸을 녹였다. 목욕을 마치고 후식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각자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어느덧 여행의 반이 지났다. 떠나는 날이 벌써 아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