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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기억될 삿포로

홋카이도 여름여행 #6

by 꽃정원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밖이 이미 환해서 늦잠을 잔줄 알았다. 창밖의 티비타워를 보니 7시가 안 된 시간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났다가를 반복했다. 나중에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삿포로 여행 가이드가 '삿포로에서는 여름에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져서 저절로 아침형 인간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위도가 높은 곳이라서 이런 차이가 생긴가 보다. 나도 덕분에 아침을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숙소는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2박을 하는 숙소라 체크아웃 짐정리의 부담이 없이 가방을 가볍게 하고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삿포로 중심지에서 떨어진 외곽을 돌 거라서 서둘러 나가야 했다. 삿포로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을 걷는 코스이다.

남편이 길을 찾기로 해서, 남편을 따라가며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삿포로 중심가를 벗어나니 삿포로 시민들의 일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 올라야 꽃이 많이 보였다. 삿포로뿐만 아니라 홋카이도 전역에 많이 심어놔서 꽃 피기 전, 꽃 진 모습까지 온갖 상태의 올라야를 본 것 같다. 이렇게 잘 자라는 걸 보면 무난하게 잘 크는 종인가 본데 꽃이 하늘하늘 예뻐서 집 마당에도 심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걷다가 도요히라 천변으로 내려가 걸었다. 한국에서도 천변 조깅을 가끔 하는 터라 천변에서의 걷는 게 좋았다. 얕은 천과 주변의 초록 여름 식물들이 싱그러웠다. 달리기나 걷기를 하는 여유로운 삿포로 시민들도 보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걸어서 간 곳은 설인메그밀크우유 공장이었다. 남편이 예약한 그룹 투어를 참여할 것이다. 일본인 가이드가 전시실을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해줬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통에 아이도 나도 크게 집중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어로 된 요약본을 줘서 그나마 추측할 수 있었다. 원유를 받아서 우유, 치즈, 아이스크림으로 만드는 공정을 미니어처와 함께 상세히 설명해 줬다.

마지막은 실제 우유가 생산되는 공장의 일부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일상 속 다양한 물건들이 공장에서 어떤 과정을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면 흔한 물건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공장 영상을 가끔 보기도 하는데, 우유 또한 그랬다. 원유가 다양한 기계 장치와 포장을 거쳐 우리 곁에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한 시간의 투어가 끝나고 회사에서 나눠준 시원한 우유 200미리를 마시며 훈훈하게 투어가 마무리가 되었다.

그다음은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 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삿포로 맥주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홋카이도 개척시대의 역사와 함께 성장한 양조업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 시음과 기념품가게가 있었지만 사지는 않고 구경만 했다. 그래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사진도 찍으며 꼼꼼히 봤다.

박물관 바로 옆에 큰 쇼핑몰이 있어 즉흥적으로 점심을 여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워낙 해산물을 좋아해서 이번 여행에서 1일 1 카이센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회는 식당이나 마트나 비슷할 것 같아서 마트 식품 코너로 가봤다. 아니나 다를까 신선하고 다양한 회와 초밥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관광객이 많은 중심부 식품 코너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삿포로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 그런지 이쪽이 훨씬 더 저렴하고 다양하고 질이 좋았다. 회와 야끼소바, 옥수수까지 사고 점심으로 먹었다.

이렇게 두껍게 썰린 광어회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부드러워서 입에 넣으면 그냥 녹았다. 남편은 고깃배 위에서 숭덩숭덩 썰어서 먹는 그런 회 같다고 했다. 남편은 이 가격에 이런 회는 한국에서는 절대 못 먹는다며 길에서 가면서 먹을 회를 한번 더 샀다. 길에서 음식을 먹으며 가는 게 좀 창피했지만 청상의 맛의 회와 옥수수를 나눠먹으면서 걸어가니 걷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제 거의 여행 막바지에 왔는데 홋카이도는 나에게 맛으로 기억될 것 같다.

다시 삿포로 중심부로 돌아왔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포켓몬 센터에 갔다. 그렇게 크진 않은데 삿포로에서 유일하다 보니 관광객도 많고, 직원도 많고, 이벤트도 많이 열려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계산줄도 매장을 빙 두를 만큼 길었다.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들도 포켓몬을 보고 즐거워하는 듯했다. 아들은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퀴즈를 푸는 포켓몬 이벤트에 참여해서 상장을 받았고, 매장의 모든 포켓몬 인형, 카드, 굿즈를 다 둘러보았다. 사고 싶은 포켓몬 인형이 있었는데, 크기가 너무 작다고 사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다른 쇼핑몰에서 뽑기를 해서 드래곤볼 캐릭터 피겨를 하나 얻은 걸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아침부터 계속 걷고 서 있어서 쉬러 근처 카페에 갔다. 모던하고 넓은 카페였다. 그런데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삿포로에 머물 동안 비 예보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지역에서 나오거나 시간대가 달라서 비를 맞은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오늘도 맞을만한 수준으로 비가 내리고 실내가 지하나 아케이드 등 삿포로에는 비나 눈을 피할 시설이 많아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또 삿포로의 특징적인 것은 나는 길눈이 좋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삿포로의 네모난 구역은 방향 잡기가 힘들어서 은근히 헤매었다. 도시에서 길 찾기는 초반 방향을 잘 잡고 쭉 가면 되는데 모든 구역이 네모나다 보니 초반 길 찾기가 많이 헷갈렸다. 머릿속으로 위치 지도가 그려지기 마련인데 그거 끝까지 잘 안 돼서 속상했다.

삿포로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러 수프카레 집을 찾아갔다. 삿포로에 수프카레가 유명하다고 해서 먹어보기로 했다. 처음에 찾은 곳은 이미 대기줄이 길어서 포기하고 두 번째로 며칠 전에 삿포로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추천해 준 식당으로 갔다. 다행히 일찍 간 편이라 바로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닭다리 수프, 어른들은 야채수프를 주문했다. 정말 인도 카레 맛인데 수프 걸쭉한 제형이었다. 나는 평소 깊은 맛난 국물을 좋아하는데 매운 스프라 느끼함도 없어서 국물이 참 맛있게 먹었다. 구운 야채도 나오는데 푹 퍼진 게 아닌 먹기 좋고 아삭하게 구운 느낌이라 좋았다. 여행책에서 본 홋카이도 대표음식이라는 것들을 다 정복한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이런 맛집으로 가득한 스스키노 지역은 한국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늘도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맥주와 음료수를 몇 가지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다 같이 씻고 홋카이도 여행 어땠는지 소감을 나눴다. 창밖에 반짝반짝 빛나는 티브이타워의 불빛과 함께 홋카이도, 삿포로의 마지막 밤도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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