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LKIVE Apr 20. 2020

#A8. 안양천 어디까지 가봤니?

'깔따구 대란'과 '고2의 반란'

안양1동 진흥아파트에 살면서 가장 많이 걸어 다녔던 길을 소개한다. 바로 애물단지에서 보물단지로 바뀐 안양천이다. 우리집 현관문을 열고 아파트 뒷길을 따라 나가면 바로 안양천이다. 우리 동네는 안양천 상류다. 청계산에서 흘러오는 학의천과 의왕에서 시작하는 지류였던 안양천이 쌍개울에서 만나 넓어진다. 이 개울은 한강까지 자전거도로, 도보와 함께 뻗어간다.


공장 오, 폐수를 하천에 흘러 보내던 시절에는 악취가 심해서, 안양천 바로 옆에 있던 진흥아파트 단지를 기피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분리 하수를 시작하고 시민과 시행정의 노력으로 물이 맑아졌다. 안양천변의 주차장도 없애고 그 자리에 나무와 꽃을 심으며 주변 환경이 좋아지니  철새도 날아오고, 물고기들도 많아졌다. 너구리도 본 적 있다.  날이 좋으면 안양천은 한강까지 가는 자전거 라이더들부터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운동하는 시민들로 북적북적하다. 시원한 바람과 풀내음은 덤이다.

안양천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깔따구 대란'과 '고2의 반란'이다.

'깔따구 대란'은 2000~2002년 사이로 기억한다. 안양천이 완벽하게 정화되기 전이다. 깔따구 유충이 안양천에서 대량 번식을 해 진흥아파트 외벽, 복도, 창문 전체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얼마나 많았냐면, 당시에 아버지가 민방위 훈련으로  동사무소에서 안양천 깔따구 퇴치작업을 하고 오셨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때 유충을 줄이기 위해 잉어를 풀었고, 오리도 풀었다. 지금은 깔따구가 뭐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한 마리도 안 보인다. 그때 풀었던 잉어는 엄청난 번식력과 사람들이 던져주는 팝콘과 과자로 배를 채워 비대해졌다.  


'고2의 반란'의 주인공은 ‘나’. 한창 밖에 나가 놀고 싶은 나이 열여덟. 주말에도 학원을 가야 되는데 집에서 쉬고 싶었다. 학교-학원-집-학교-학원-집 이 얼마나 삭막한 스케줄인가. 당시 질풍노도의 시기로  학원도, 엄마의 공부해야지라는 말도 나에겐 정말 힘들었다. 어딘가 묶여있는 것 같은 게 답답했었나 보다.

어느 5월 토요일, 오늘은 학원을 쉬고 싶다고 보이콧을 선언 했고, 안된다는 엄마와 대판 싸웠다. 5월 중순의 토요일 2시였는데, 무작정 집에 있는 자전거를 끌고 안양천으로 나갔다. 자전거는 기어도 없는 청소년용 자전거였고, 안양천 자전거길은 그늘이 없었다. 지갑도 핸드폰도 없이 나왔다. 멀리 떨어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반팔에 차림에 모자만 눌러쓰고 한강을 향해 달렸다.

달리다 보니 신이 났다. 30분이 지나자 땀이 났다. 그래도 좋았다. 날 좋은 주말 오후에 얼마 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인가. 표지판에 한강이 있었다. 이왕 나온 거 끝까지 가보자하고 달렸다. 자전거길에 한강까지 이어져있다는 것만 알았지 얼마나 걸리는 줄도 모르고 호기롭게 달렸다. 금천동, 목동을 지나 1시간 10분 만에 한강에 도착했다.

도착의 기쁨도 잠시. 현실은 햇빛에 그을려서 따갑기 시작한 팔, 삐그덕 거리는 자전거, 아려오는 허벅지로 고통스러웠다. 모든 것을 버리고 걸어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나는 호기로운 일탈로 양 팔에 경미한 화상을 얻었다. 교복 긴팔 블라우스가 피부에 닿으면 따가워서 걷어올리고 다녔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한다. 그 후로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간 적도, 가볼까 생각 한 적도 없다.

집이 안양천 바로 옆이다 보니 학교 야간 자율학습 끝나고, 저녁에 학원 끝나고, 바람 쐴 겸 천변을 따라 걸어서 집에 가기도 했다. 안양천은 10대인 나에게 소소한 일탈의 장소였다. 친구들과 안양천 곳곳에 설치된 쉼터에 앉아 고민상담도 하고, 치킨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집에서 안양천을 따라 한강 쪽으로 걷다 보면 유명한 충훈부 벚꽃길도 만날 수 있고, 안양 예술공원도 연결되어 있다. 반대방향인 인덕원 쪽으로 걸으면 평촌 학운공원이랑 이어져 있어 그 길도 좋다.


우리집 앞 안양천은 걷기 참 좋다. 주변 큰 도로에서 벗어나 새소리, 물 흘러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요즘은 봄이라 개나리, 버드나무, 민들레 다양한 봄꽃들이 피고, 초록빛 새싹들이 언제 겨울이었냐는 듯 안양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안양천은 역시 올해도 연둣빛 새싹을 올리고, 꽃을 피우며 제 몫을 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A7. 복도식 아파트는 힐링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