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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Mar 08. 2021

친환경이 아닌 안전성에서 찾는 국내 탈원전 정책의 당위

월성 1호기를 중심으로 톺아보는 탈원전 서사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

 월성 1호기는 1982년 가동을 시작한 원자력 발전소로 19년 12월 영구 정지 결정됐다. 본래 수명은 2012년에 이미 만료됐지만 박근혜 정권 때 5900억 원을 들여 노후 설비를 교체한 후 10년간 연장 운전을 승인 받았다. 그런데 17년 재가동 후 지속적으로 안전성 문제가 거론됐다. 특히 16년, 17년에 걸쳐 발생한 경주, 포항 지진이 탈원전 정책에 힘을 실어줬다. 이처럼 월성 1호기 폐쇄는 환경보다 안전의 맥락에서 생겨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탈원전을 공약으로 제시해 지금도 적극 실천 중이다. 그런데 영구 정지 결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제기됐다. 야당의 신청으로 감사가 들어갔고 지난해 10월 경제성이 지나치게 낮게 평가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경제성이 가지는 상대적 맥락을 고려해 사고위험비용이나 환경비용 등 외부효과 비용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결론이라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부 직원의 행동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는 명백한 범법행위로 결과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과정이 공정"했다고 볼 수 없다. 산업부 직원 중 일부는 444개의 파일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경위가 파악돼 12월 구속됐다. (최근 산업부 전 장관의 구속은 기각됐다.)


 탈원전의 당위는 절차상의 결함 의혹뿐만이 아니라 '친환경'이라는 흐름에 적합한지를 두고도 우려 섞인 논쟁이 일고 있다. 현재 탈원전은 그린 뉴딜, 탄소중립 등을 표방하는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런데 친환경과 탈원전의 연결고리가 견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첫째로, 원자력 발전의 빈자리를 재생에너지가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 화력 발전량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일례로 19년 폭염처럼 에너지 수요가 높을 땐 화력 발전 가동률을 높였다. (심지어 현재 7기의 석탄 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탈원전과 동시에 재생 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계획이 2030년까지 단계별로 수립돼있지만 실행률이 현재까지는 높지 않다. 또한 세계적으로 호주, 스웨덴 등처럼 화석 연료와의 비교 속에서 원자력 발전을 오히려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는 국가의 비율도 상당하고 탈원전을 선원한 국가가 4개(독일, 스위스, 벨기에, 한국)의 국가밖에 안 된다는 점도 비판의 근거로 쓰인다. 마지막으로, 태양에너지 발전을 위한 패널 설치가 삼림을 크게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회의적 시각을 강화한다. 일부 지역은 아예 산봉우리를 깎아 만들기도 했다. 현재 인허가 규정이 강화되며 태양광 발전소 신규 개발이 비교적 어려워졌으나 이미 허가받은 지역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태양광 패널 설치로 인한 삼림 개발은 올해 폭우로 인한 산사태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탈원전 논의는 친환경보다 안전성에서 시작했다. 월성 1호기 폐지라는 의제는 2011년 사고부터 진지하게 이야기됐다. 2011년 사고 확률이 1억분의 1이라고 공언하던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 "자연재해 앞에서 전문가들의 호언장담과 과학자들의 통계는 무의미했다." 그후로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세계의 공포는 일본과 가까운 한국에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 피해의 끝은 예측할 수 없으머 폐기물, 오염수 등의 처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에 남아있는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쏟아붓는 물과 주변 지하수가 더해져 매일 170여 톤의 방사능 오염수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해까지 발생한 오염수의 양은 도쿄돔 1개 규모에 이른다." 그리고 16년 경주, 17년 포항에 지진이 일어나며 그 공포는 고조됐다. 동시에 경주에 위치한 월성 1호기의 안전성 우려에 대한 공감대 또한 확산했다.


 친환경이라는 취지도 물론 있겠지만 우린 10년 전 사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탈원전이 추진됐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그 가능성이 적지만 한 번 일어나면 그 피해가 막강하다. '파멸'이나 '초토화'란 말이 과하지 않다. 그 피해를 줄이고자 월성 1호기 폐지가 진행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 처리 문제는 바다를 마주한 한국과도 직결된다. 게다가 16년 경주 지진으로 그 사고가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탈원전에 그 사건 사고는 지워져 있다. '안전성'보다 '친환경'과 '경제성'이 핵심 쟁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의제 설정은 탈원전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 센터장은 '친환경'과 '안전'을 모두 확보한 에너지원은 아직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빌 게이츠 또한 자신의 저서에서 “원자력은 매일 24시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원전만큼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 생산 방법은 없다”라고 제안했다.(기후재앙을 피하는 방법, 2021) 이처럼 탈원전은 '친환경' 담론에서 통일된 시각이 없는 탓에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우리가 원전 사고를 기억해야 하고 정책은 본래 취지대로 '안전성'을 더 강조하며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위험 관리는 위험이 발생하기 전에 준비해야 하고 탈원전은 위험 관리의 측면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전 피해 발생 시 생명에 대한 즉각적 위협과 더불어 장기적으로도 보건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영향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목적이 모든 수단이나 과정을 정당화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 정책이 목표를 실현하면서도 피해를 양산하지 않는지 계속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고 재생에너지 개발 속도에 맞추다 보면 계획보다 탈원전이 늦어질 수 있다. 정치적 의도가 아니고서야 서두를 이유는 없다. 탈원전의 속도를 가속하기 위해 절차상의 불법적 행동까지 저지를 필요 또한 아무리 생각해봐도 찾기 어렵다. 산업부 직원의 불법적 행위가 진실로 판결 나면 그 배후까지 밝혀 처벌받아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탈원전을 둘러싼 잡음이 방향성을 우회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느리게 가더라도 지향점은 변함없어야 한다. 탈원전은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원전 사고를 막기 위한 단 하나의 예방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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