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그대들에게
“이런 책을 도대체 누가, 왜 쓰는지 궁금해서 빌려 왔어.”
한국 괴물 백과를 읽으며 말했다.
“나는 그런 책을 누가 읽는지가 더 궁금한데...”
그의 말에 이 책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들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시작은 K-요괴 도감이었다. 전래동화든 누구의 입을 통해서든 한 번은 들어본 듯한 요괴들이 지면에 등장한다. 첫 페이지에는 의기양양한 프로필 사진, 간략한 소개와 열두 컷 만화가 이어진다. 더불어 요괴력은 얼마나 되는지, 물리치는 방법은 무엇인지, 심지어 그들의 MBTI까지 면밀하게 분석해낸다. 구전설화인 것을 감안해서 다양한 전개를 제시하고 화살표를 따라 각자의 선택에 결과를 맡겨보기도 한다. 더러 무시무시하거나 불운을 가져올 것 같은 요괴들도 있지만 물리치는 방법과 달아나는 묘책도 있으니 전혀 두렵지 않다. 사실은 몹시 두려울 테니 미리 준비하는 마음을 먹는다. 마음을 홀리는 우비 요괴, 그슨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2인 1조의 달걀귀신, 삼국시대부터 평창올림픽까지 활약한 인면조, 치명적일 수도 사랑스러울 수도 있는 온갖 요괴들의 향연이다.
한국 괴물 백과는 아이패드 드로잉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총류 0의 세계는 바다만큼 넓고 다양하다. 여름바다 파란색 커버의 책 등에는 허리가 굽은 구미호의 형상이 금빛으로 그려져 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지면에 괴물의 형상과 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요괴에 대한 두려움의 가장자리를 둥글게 처리해주는 K-요 괴도 감는 결이 다르다. 구전되거나 기록된 묘사와 서술에 집중한다. 현실과 상상 그사이 경계가 좁아지다 멀어지는 추의 운동을 반복한다.
경남 김해의 강수선생은 뒤통수에 뼈 또는 뿔이 높이 솟아있다. 말재주가 좋고 읽고 쓰는 일에 능하다. 군산에는 걸어 다니는 산인 ‘공주산’이 있고, 사람의 비밀과 마음을 잘 알아채는 자염 장부는 기둥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 숨는다. 어딘가 모르게 귀엽거나 몹시 두려운 페이지들 사이에서는 운동하는 추를 와락 움켜쥐고, 책장을 열었다가 덮었다 반복한다. 머리가 없는 ‘무두귀’가 등장하면 큰 숨을 내쉬며 책을 조심스럽게 덮는다. 나의 영역 밖이다.
선릉에서 서문을 쓴 작가는 그저 재미로 신비한 이야기를 모아보려 한 일이 여기까지 오게 하고 생각지 못한 수많은 길로 자신을 이끌어준, 이 모든 것이 신비롭다고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영감을 받은 책들과 계기, 근사한 집필의 목표도 있었겠지만, 7페이지 분량의 서문에서 유독 크게 보이는 글자는 ‘그저 재미’였다. 누군가는 꿈에 요괴가 나올까, 내복약의 복용량처럼 분량을 정해두고 책을 읽을 것이고, 벌건 대낮에도 벽 모퉁이와 천장 네 모서리를 곁눈질할 텐데 말이다. 또는 아예 서가에서 책을 꺼내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제 만난 친구가 내가 만든 그림책을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보는 모습을, 엉덩이를 반쯤 허공에 띄운 채로 황송하게 관람했다. 맹렬하게 고개를 저어대는 남편에게 기가 죽어 있던 참이다. ‘너만 아는 이야기를 네가 아는 방식으로 써 내려간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곤 한다. 물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어느 방향에서는 허공을 가로지르며 맹렬히 날아온다. 크고 작은 고민과 겸손한 마음이 오뚝이처럼 머리를 바닥에 거듭 찍어댄다. 누구에게든 관대하고 너른 언덕처럼 말해주지만, 돌아서 나를 마주하면 한 뼘짜리 절벽에 서 있다.
’이대로 괜찮은지, 이게 최선인지 ‘ 궁서체로 질문한다.
그럴 때마다 [한국 괴물 백과]와 [K-요괴 도감]은 나에게 든든한 어깨를 내어줄 것이다.
아마도 어깨 치기에 더 가까울 테지만 도깨비불처럼 정신이 번뜩 들지도 모른다.
“뭐 어때, 자식아. 일단 너부터 재미있고, 고개를 끄덕여줄 단 한 명만 더 있어도 엉덩이는 들썩일 거야.”
#한국괴물백과
#K-요괴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