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유 컴패니언 Dec 09. 2022

오늘도 내 마음속의 먼지를 털어냅니다.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이다. 

-법정 스님, 《무소유》, p.33-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 이런저런 마음이 꼬리를 물고 한꺼번에 밀려올 때가 있다. 안개처럼 뿌옇고 찜찜한 느낌이다. 최근에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 어떤 방향이든 결정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부모님의 건강 걱정, 어떤 사람의 이미지와 생각 등등. 그럴 때 나는 열 번 중의 한 번은 그냥 머리를 몇 번 흔들고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대부분은 누운 채로 스트레칭을 하고 앉아서 마음을 정리정돈(整理整頓) 하는 시간을 갖는다. 20분에서 여유가 있을 때는 1시간 정도 할 때도 있다. 이런 패턴은 내가 40대 초반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회복한 후에 자리 잡은 방식이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 하루를 그냥 순조롭고 담담하게 보냈다는 느낌이 올라온다. 그렇지만 간혹 가다가 긴장되고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이 올라올 때도 있다.    


나는 저녁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30분 정도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살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면서 내 마음속에 들어온 먼지가 있다. 대부분 내가 기대하고 원했던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남은 것들이다. 인정받고 싶고, 무시당하지 않고 싶은 바람과 욕구를 완전히 채우지 못해서다. 배우자, 가족, 친구, 지인 등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다는 이유다. 내가 한 말을 한 귀로 흘려버려 하찮게 만들었다고 허탈해한다. 내가 한 말을 바로 반박당했다고 어쩔 줄 모르고 당혹해한다. 나를 먼저 불러주기를 바랐는데 다른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찜찜한 느낌을 마주하기 싫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한다. 내 마음속의 먼지는 이렇게 쌓인다.     


요즘 TV에서 의뢰인의 요청으로 집안을 정리·정돈해주는 프로그램이 반응을 얻고 있다. tvN의 《신박한 정리》프로그램이다. 정리·정돈이 왜 필요한지 의뢰인과 시청자들이 저절로 깨닫게 한다. 프로그램을 마칠 때면 ‘이렇게도 넓고 깨끗하구나’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이게 내가 살던 집인가 할 정도로 깜짝 놀라게 된다. ‘다시 그전의 상태로 돌아갈 거냐?’라고 물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한 번 깨끗하게 정리·정돈된 상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집에 들여올 때는 반드시 필요성을 점검하겠다고 한다. 한 번 집안에 들여놓은 물건은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공간을 차지한다. 처음에는 관심을 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잊어버린다. 서서히 쌓여 간다.    


집안의 공간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사람이 움직일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집안이 편안하지 않은 느낌이다. 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도 올라온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집에 이사 간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조금만 지나면 똑같은 행태가 반복된다. 집안 공간을 정리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 공간을 정리하는 것과 같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구석구석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부터 신중하게 가려내야 한다. 필요 없는 것은 마음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욕구와 감정을 충분히 애도해 준다. 그래야 미련이 남지 않는다. 쓰지 않을 물건들을 가려내어 버리고 나면 숨어있던 공간이 드러난다.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를 말끔히 쓸어낸다. 필요한 물건들의 먼지도 털어내고 씻고 닦아준다. 시야가 넓어지고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집안 분위기는 집주인의 마음을 닮는다고 할 수 있다. 집주인의 마음속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면, 집안의 공간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반대로 집안을 정리·정돈하는 법을 배워서 직접 해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도 말끔해진다. 내가 사는 집을 정리·정돈하듯이 내 마음속도 정리할 수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내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조차 모른다. 마음속이 갑갑하고 무겁다는 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속을 열고 눈으로 볼 수 없다. 마음속의 먼지를 보고, 털어내고 닦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내 마음속 공간은 우주와 같이 넓고 크지만, 티끌 하나도 들어갈 틈이 없을 때도 있다. 생각과 감정의 먼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머리는 띵해지고 숨이 가빠진다. 가슴이 조이고 온몸이 긴장된다. 당장 해결하고 싶다는 충동의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보는 눈이 좁아진다. 귀는 닫힌다. 마음의 문을 잠그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때가 많다. 내 체면을 유지해야 하니까. 관계를 이어가고 싶으니까. 해소하지 않고 남겨둔 사건은 마음속에 기억으로 저장된다. 기억은 각종 먼지를 품고 있다. 나의 감각과 감정, 생각, 기분, 동기, 욕구, 기대, 바람, 원(願), 이미지, 연상 기억이다. 이런 먼지는 털어내지 않으면 더 많은 먼지를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점점 먼지가 더 쌓인다.     


낮에 돌발적인 상황에 맞닥뜨릴 때는 할 수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외출하고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먼지와 오염물질들이 묻어있다. 마음속에는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것이 슬쩍 자리를 잡는다. 괜히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휴대폰 화면을 넘긴다. 누군가는 냉장고를 열 것이다. 책을 집어 들거나 음악을 듣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무언가 일거리를 만든다. 화난 일이 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화난 일이 없어지거나 기억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기억에 묻어있던 먼지가 깔끔하게 닦인 것도 아니다. 주의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다른 데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즉 내 마음속의 무대, 의식 공간에서 화난 기억에 묻었던 먼지가 밀려났기 때문이다.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도 그럴 때는 내 마음속에 정리·정돈이 안 되어 어지럽다는 증거다.     


기억에 묻어있는 먼지가 불쾌하고 두려워서 마주하는 것을 주저한다. 내 마음속에 들어온 먼지를 보이지 않는 곳에 꽁꽁 덮어둔다. 구석구석에 먼지 더미들이 쌓여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먼지 폭탄이 두렵고 보기 싫어서 외면하는 걸 되풀이한다. 예를 들어 TV에서 내가 응징하고 싶은 사람이 나올 때 반사적으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의 그림자만 봐도 속이 울렁거린다. 무력감, 좌절감, 분노, 답답함이 올라온다. 정작 응징하고 싶은 욕구와 충동은 올라오는 데 그럴 힘이 지금 없다. 먼지 폭탄이 터지기 전에 내 마음의 주의(Attention)를 다른 데로 돌린다. 각자 자신만의 안전 기지로 숨는다. 담배, 술, 음료일 수도 있고 운동, 음악 듣기, 잠을 자는 것일 수도 있다. 괜히 짜증을 내기도 한다.     


상대방으로부터 직접 또는 TV에서 들은 말 한마디에 마음속이 왜 부글부글 끓어오를까?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속의 기억에 묻어있던 먼지 폭탄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이 먼지 폭탄을 제거하지 않으면 점점 폭탄이 터지는 일이 많아진다. 먼지가 폭탄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털어내고 닦아내야 한다. 내 마음속에 쌓인 먼지는 저장되어있는 기억에 붙어있다. 그 기억을 의도적으로 불러와서 털어내고 닦아낸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불쑥 나타나는 기억도 밀쳐내지 않는다. 저절로 올라왔음에 감사하면서 먼지를 털어낸다. 어떤 기억에 묻어있는 먼지라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 때 털어낼 수 있다. 내가 또렷하게 보겠다는 의도를 품는 게 중요하다. 먼지를 마주하면서 지켜보는 수고는 편안함을 느끼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내가 내 마음속의 먼지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의식 공간(마음의 무대)이다. 맑은 하늘에 비구름이 몰려와서 뒤덮을 때도 하늘은 온전히 구름을 그냥 받아낸다. 구름이 역할을 다할 때까지 밀쳐내지도 붙잡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는다. 하늘에 먼지가 쌓이지 않는 이유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보듯이. 내 마음의 무대인 의식 공간에 올라온 기억에 묻어있는 먼지를 그냥 바라본다. 너무 멀어 먼지가 보이지도 않거나 너무 가까워서 먼지 속에 파묻히지 않아야 한다. 내 마음의 무대에 올라온 먼지를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올라올 만한 사연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기억에 묻어있는 먼지들이니까. 올라오면 ‘올라왔구나’, ‘그렇구나 ’, ‘그랬구나’하고 말이다.      


먼지를 털어내다 보면 정말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게 나타난다. 그것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하! 이것이 부족하다고 채워 달라고 하는구나.’라고 마음속으로 또박또박 읊어준다.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하게 닦아서 기억이 명료하게 정리되는 방법이다. 이것이 지혜로운 온전한 이해이다. 마음속에 쌓인 먼지를 내가 성장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로 바꾸는 연금술이다. 마음속 정리를 하기 전에 내 주변 공간부터 정리하면 더 쉬울 수 있다. 한번 마음속을 정리 정돈하고 나면 예전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마음이 편안함, 여유로움, 융통성, 뿌듯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 주말, 한 달, 그리고 정기적으로 내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는 시간을 내어보는 건 어떨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