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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컴패니언 Jan 02. 2023

배려(配慮)할 줄 아는 나!

내가 살려고 하면 남을 죽이지 말고, 남을 살림으로써 나도 살아야 한다. 남이 없으면 본래 나라는 것도 없다.

                                                                   -노 자-     


나이 50이 되면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할 것 중에 ‘배려(配慮)’가 있다. “아래층에 사는 사람인데요. 쿵쿵거리는 소리가 많이 납니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 예민합니다. 조용히 좀 해주세요”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찾아왔다. 이전에 살던 사람은 그렇지 않았는데, 필자인 내가 이사 온 이후로 소리가 많이 들린다고 했다. 내 얼굴에서 화끈거리는 느낌이 올라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이 사람이 제대로 알고 이야기 하나?’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나는 ‘우리는 소리 나게 걸어 다니지도 않고 물건을 던지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쿵쿵거리는 소리가 우리 집에서 들리는 소리였는지 다시 물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우리 집이라고 했다. 나는 화가 났다.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지적받는다’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따지려고 했지만, 아내가 말렸다. 아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우리가 조심하겠다’라고 하고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사람이 번지수를 잘못짚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 반이 지났다. 우리 집은 애들도 다 커서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낮에 집에 있는 사람은 아내뿐이다. 나와 아내는 집에서 뛰어다닐 일도 없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식탁 의자 책상 의자, 거실 소파 등 모든 가구 받침대에 쿠션 덮개를 씌웠다. 실내화까지 신고 다닌다. 따져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자 더 화가 났다. 내가 이사를 오고 난 후 늦은 밤에 헬스 기구로 운동을 하는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고함을 치는 소리도 자주 들렸다. 아래층 같기도 하고 어느 집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소음 문제를 신고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내 마음대로 조용하게 살 수는 없지 뭐!’라고 받아들였다. 또 소리가 많이 들리면 ‘24시간 내내 그러지는 않겠지?’ ‘또 하는구나, 하다가 말겠지’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라도 시끄러우면 신고를 하겠지?’ ‘내가 예민해서 그러지는 않는지 좀 더 지켜보자’라고 나를 다독거렸다. 한동안 소리가 나다가 잠잠하다가 또 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는 중에 아래층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조심해달라고 점잖게 요구한 것이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그 사람으로부터 잘못했다고 지적을 받은 꼴이다. 내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느닷없이 구정물을 맞은 기분이다. 내 안에서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올라왔다. 시시비비를 가려 응징하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왔다.    

       

나는 그 사람에게 운동기구 사용하는 소리나 갑자기 발작하는 소리는 안 들리는지 묻고 싶었다. 나와 아래층 사람이 갈등을 빚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엘리베이터 안에 게시물이 붙었다. 누군가의 무례한 행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사람이 쓴 당부였다.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피아노 치는 사람이 있는데, 수험생이 있으니 조심해달라’ ‘운동기구 사용하는 소리가 들린다.’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라는 글씨다. 이후로 나는 집안에서 혹시 발소리가 나지 않기 위해 내 행동을 검열한다. 그럴수록 나는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도 없이 마음껏 소리치고 웃고 떠들고 싶은 마음이다. 같은 공간에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고립되거나 쫓겨난다.       

   

나이 50이 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하는 배려를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진정한 배려란 어떤 것일까? 왜 배려를 해야 할까? 남에게 폐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일까? 자신은 남을 배려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배려는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상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지나치게 굽신거리는 것이 아니다. 사전에서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고 정의한다. 배려는 서로의 갈등을 줄이고 내 삶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안전장치다. 살맛 나는 세상을 느끼게 하는 핵심 처방전이다. 자기 자신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결점도 있고 실수도 한다. 상대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약하고 실수도 하는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이 배려의 핵심이다.     

     

배려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때 싹튼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채워진 따뜻하고 친절한 에너지는 저절로 남에 대한 배려의 에너지로 이동한다. 배려는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남에게 그냥 주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인정하면 안전함과 평화로움을 느낀다. 자기 자신이 안전하고 평화로움을 느끼면 남에게도 안전하고 평화로운 행동을 하게 된다. 배려는 이런 것이다. 배려와 관련되는 사자성어가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측은지심은 자기 자신과 남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마음이다. 역지사지는 자신의 마음속에 상대의 처지를 비추어보는 것이다. 배려는 측은지심과 역지사지를 행동으로 옮길 때 드러난다.          

또한 배려는 지켜야 할 공중도덕 의무와 예의·예절을 포함한다. 자신도 모르게 아파트, 공원, 지하철이나 식당 등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 적이 없는가?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 없는 눈치와 비난을 들은 적은 없는가? 자기 자신을 뒤돌아볼 일이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하는 행동은 나쁜 습관이다.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공공장소에서 하는 것이다. 알고도 그런 행동을 하면 무례하고 건방진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 간의 배려로 만들어진 평화로운 분위기를 일부러 망치는 꼴이 된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면 배려를 익혀야 한다.      

     

나이 50이 되면 외롭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과 남에 대한 배려를 익혀야 한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남에게 상처가 되고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 자신의 배우자와 자식, 그리고 부모, 형제가 상처 입을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배려의 에너지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배우고 돈을 많이 벌어도 자기 자신을 살리지 못한다. 배우자와 자식, 그리고 가까운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사는 심리적 구두쇠가 된다.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와 같은 삶을 산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소홀하게 행동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한 진정한 배려는 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은 칭송받을 일이다. 그보다 더 먼저 배려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의 행동은 가식이다.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인정 많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지금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 그리고 욕구가 올라오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연민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을 향한 배려다. 자신을 향한 배려를 충분히 채우면 자신의 주변으로 배려의 에너지는 저절로 퍼져나간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배우자에서 부모, 자식, 형제, 친구, 이웃으로 당당하게 배려를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나이 50에 필자인 나는 많은 걸 얻기도 하고 잃기도 했다. 남과의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애를 썼다.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내가 우선 살고 봐야 한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내 코가 석 자라서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나는 40대와 50대에 입은 깊은 상처를 치유하면서 알아차렸다. 내가 나에 대해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기 자신을 배려하지 못하는데 남을 배려할 수 있을까? 배려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지친다. 측은지심과 역지사지는 그냥 되지 않는다. 몇 번은 억지로 애를 쓰면서 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왜 나만 그래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자신만 손해 본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심리학에서 배려는 ‘친사회적 행위’ 또는 ‘이타적 행위(altruistic behavior)’에 속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배려를 더 많이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런 친사회적 행위를 하는 이면에는 생리심리학적 기제(mechanism)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물질적 보상과 상관없이 정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숨은 동기에 의해 자발적으로 기꺼이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배려 등의 친사회적 행위를 하고 나서 얻는 신체적·심리적 건강의 이득이 많다고 한다. 그들의 신체통증이 완화되고 불안과 우울 등 부정적 정서가 줄어들었다. 또한 나이 든 사람들의 웰빙에도 친사회적 행위가 이득이 된다고 말한다.     

그들의 친사회적 행동은 소속감과 이웃에 대한 신뢰, 지각된 행복, 삶의 만족 등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뇌신경과학 연구에서도 이런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과정을 뒷받침해준다. 사람들의 친사회적 행위에 관련된 뇌 네트워크 영역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기꺼이 자발적으로 하는 친사회적 행위는 자기 자신에게 보상하는 행위가 된다. 자기 자신이 희생이 아닌 기꺼이 하는 배려심을 낼수록 자신의 행복과 건강에 더 많은 이득이 돌아온다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자기 자신이 좀 더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배려는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도 살고 상대방도 함께 사는 지혜다. 배려를 위해서 우선 자기 자신부터 점검해야 한다.     


또한 친사회적 행위와 연계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려면 타인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내면 경험(생각, 감정, 욕구)을 적극적으로 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삶의 어떤 조건에 처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향한 연민과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몸의 감각, 생각, 감정, 욕구를 알아차리고 받아주어야 한다. 배려라는 말에 얽매어 자신이 먼저 지쳐서 소진되지 않아야 한다. 진정으로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당당하고 생기가 넘친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가식 없이 당당하기 때문이다. 배려는 자기 자신과 남들 사이에 정(情)을 느끼게 한다. 50이 이후의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엮어가기를 바란다면 미리 배려의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면 배려가 필요하다.     

     

(Tip!) 자기 자신의 내면에 배려심 키우기 훈련

자신의 내면 경험을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받아들이면 저절로 남이 처한 상황과 마음을 알아차리고 배려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이것이 진정한 배려다. 자신의 잘난 점도 인정하고, 결점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성취한 것에 대해서는 성취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조건에 감사함을 표한다. 마음속으로 중계방송하듯이 읊조리거나, 종이에 글로 쓰면 된다. 자신이 실패하고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한다. 마음속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안아주고 위로해준다. ‘수고했다.’ ‘할 만큼 했다.’ ‘얼마나 힘들었나?’라고 다독거려 준다. 그리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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