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산업군에서 성장 기회를 발견한 참기름 스타트업
고소하면서 풍미가 우수한 참기름과 들기름은 한식 메뉴에서 감칠맛을 더해주는 식재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름의 제조법이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100년 넘게 변화 없는 제조법으로 계속 전해져 내려왔다는 점 알고 계셨나요? 모두가 당연하게만 여겼던 기름 제조법에 의문을 품고 제조법 개선을 통해, 더욱 맛있고 품질 좋은 식용 기름을 공급하고자 애써 온 청년이 있습니다. 바로 쿠엔즈버킷의 박정용 대표입니다.
박정용 대표는 참기름 사업을 시작하기 전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국내 유명 백화점의 식품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식품 관련 명인이나 상품을 발굴하는 일을 하던 도중, 박 대표는 식용 기름 산업이 전반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는 점과 소비자에게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이러한 눈속임이 가능했던 이유는 참기름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저렴한 수입산 깨를 몰래 섞어도 기름으로 추출되고 나면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기름 업계에서는 공급자가 참기름의 원산지나 유통기한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저가의 기름인 콩기름이나 식용유와 같이 다른 상품을 첨가하여 양을 불리는 등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도 적지 않게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식용 기름 산업의 문제점을 관찰하면서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계기로 자신만의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박 대표는 창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방앗간에 취직하여 6개월 동안 참기름 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후 기존 제조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과 함께 2012년 프리미엄 참기름 브랜드 ‘쿠엔즈버킷(queens bucket)’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최고의 참기름 압착 기계와 원료를 찾아다녔고, 일 년 후 쿠엔즈버킷은 자사만의 참기름 압착 방식을 개발하고, 이를 뒷받침할 원적외선 저온 볶음 기계를 장착하게 됩니다.
쿠엔즈버킷은 기존의 고존 압착 방식에서 차별화를 둔 ‘저온 압착 참기름’을 개발했습니다. 기존의 고온 방식으로 깨를 볶아 압착하면 기름양이 많이 추출되어 공급자에게는 유리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참깨가 타면서 생기는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포함된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식용유나 여타 기름이 섞여 있어도 육안으로 구분하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반면 쿠엔즈버킷이 개발한 저온 압착 방식으로 깨를 볶고 추출하면 재료가 타는 일도 없고 참기름 원재료의 맛과 향이 더욱 길게 보존됩니다.
저온 압착 참기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원료인 ‘깨’입니다. 깨를 재배하고 저장하며 볶아서 마침내 기름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고소하고 신선한 깨의 맛을 유지하는 작업이 핵심인데요. 이를 위해 쿠엔즈버킷은 사업 초기 깨를 재배할 때도 100가지가 넘는 품종을 테스트하면서 최적의 품종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또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과 협력을 하여 원료 저장 방법을 연구하는 등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쿠엔즈버킷은 저온 압착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에 기름을 추출하고 남은 참깻묵을 활용한 아이템도 구상할 수 있었습니다. 고온 상태에서 남은 참깻묵은 검게 타서 버릴 수 밖에 없지만 낮은 온도에서의 참깻묵은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쿠엔즈버킷은 참깻묵에 피부에 좋은 영양소가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페이스 오일과 마스크팩으로 탄생시켰으며, 그 외에도 가축사료나 땅콩버터 등 다양한 종류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점차 사업이 확장하면서 쿠엔즈버킷은 2019년 4월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근처에 회사의 도심형 공장이자 방앗간을 건립하였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독특해 보이는 이 도심형 방앗간은 회사의 브랜드 홍보를 톡톡히 도맡고 있는데요. 회사의 위치를 동대문으로 정한 것에는 일본인과 중국인 등의 관광객 유입이 많은 곳에서 참기름을 한국의 대표적인 식재료로 널리 알리려는 의도였습니다. 이 공간은 한국 여행 정보 사이트에서 월간 인기 랭킹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하루에 20~30명 가량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여 추출 방식의 신선함을 직접 경험해보고, 제품도 많이 구매하고 있습니다.
됫박을 쌓아 올린 듯한 개성 있는 외관을 소유한 건물 내부에는 카페를 만들어 참깨 스콘, 쿠키와 빵 등을 맛볼 수 있고 자사의 제품을 활용한 다채로운 요리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또한 방문객들은 참기름 생산 시설에서 참기름 제조 기계가 작동하고 기름이 착유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쿠엔즈버킷의 도심형 방앗간은 참기름을 오감으로 즐기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쿠엔즈버킷은 해외 프리미엄 오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스타트업의 제품은 뉴욕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유명 레스토랑에서 사용되고 있는데요. 은은하면서 미묘한 풍미 덕분에 세계적인 셰프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해외 언론 블룸버그에서는 참기름이 식물성 오일 중 오메가3 비율이 가장 높은 건강한 식품이며, 풍미가 훌륭해 버터나 올리브 오일을 대신할만한 식재료로 소개된 적도 있습니다.
현재 쿠엔즈버킷은 참기름 반응이 가장 좋은 미국을 비롯하여 홍콩과 싱가포르에 수출하고 있는데, 해외에서 판매되는 참기름은 우리나라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고급 레스토랑과 프리미엄 식품매장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올리브유가 세계적인 웰빙 식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쿠엔즈버킷의 참기름도 기존의 관행방식 탈피를 통한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K-food, K-culture의 붐과 더불러 고급 식용 기름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습니다.
요즘 쿠엔즈버킷은 수요는 많은데 착유기의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서 밀려오는 주문을 모두 수용하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 스타트업은 현대 백화점, 신세계 백화점, 갤러리아 백화점, 반얀트리 호텔 등의 식품관에 입점하여 참기름 한 병에 39,000원, 들기름은 25,000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기존의 식용 기름보다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강남 참기름’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열띤 호응과 입소문을 얻고 있습니다.
쿠엔즈버킷은 기존 참기름 시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여타 방앗간 제품과 비슷해 보이는 참기름이더라도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둘 수 있었습니다. 쿠엔즈버킷은 사업 초기에 참기름은 다 똑같다는 인식 때문에 투자를 받기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또한 일 년 넘도록 압착 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기계와 씨름하면서 기존의 쉬운 길 대신에 새로운 기름 추출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시대는 변화되어 가지만 정체되어 있던 식용 기름 시장에서 페인포인트(pain point)를 발견하여 소비자에게 깔끔하고 건강한 참기름을 공급하는 쿠엔즈버킷의 활약이 더욱 기대됩니다.
혁신의 대상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그것의 대상으로는 첨단 기술과 고부가가치 기반의 사업이 많이 거론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경험적 노하우와 맞물렸던 문제 의식을 끝까지 파고들어, 엣지(edge)있는 첨단 기술의 제품은 아니어도 얼마든지 또 다른 혁신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쿠엔즈버킷은 증명해낸 것 같습니다.
이번에 다룬 쿠앤즈버킷의 사례는 식용기름 중 하나인 참기름이 얼마나 개선과 혁신의 여지가 있는지 그 자체보다, 우리가 무심코 간과했었거나 또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그 너머의 가치를 보지 못했던 한정된 기회 인식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면서 이야기 나누어볼까요?
우선 쿠엔즈버킷은 한 기업가의 혁신역량으로 탄생된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Dess & Lumpkin(2005)에 따르면, 혁신역량은 새 아이디어가 제품에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구현하는 역량이자, 새로운 기회의 탐색을 통해 기존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쿠앤즈버킷이야말로 혁신역량의 모범적인 비즈니스 사례이자 미래의 예비 창업가들에게 실질적으로 줄 수 있는 기업가정신의 외연화된 상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기존의 제품 개선은 물론 관행까지 변화시킨 한 창업가의 기업가정신은 의도한 혁신을 넘어 또 다른 기회로까지 파생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한번 묻겠습니다. 전통적 식재료로서의 이미지 뒤에, 무한한 제품 혁신의 기회를 담고 있는 제품에는 참기를 말고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비단 식품의 경우에만 한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러분만의 문제 의식에서 포착된 제품의 개선점은 점진적인 혁신 변화의 과정을 통해 그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혁신역량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Where? 대한민국 서울
When? 2012년
What? 믿을수 있고 건강한 프리미엄 식용 참기름 생산
Who? 박정용
Why? 기존 관행의 참기름 제조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글로벌 제품화
How? 저온 압착 방식을 개발과 제조, 유통 프로세스의 혁신을 통해
동대문 한복판에서 찾은 미식 참기름, 푸드 스타트업 쿠엔즈버킷, 매경프리미엄, 2019/08/23
[창조가&혁신가 |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 참기름으로 올리브유와 한판 대결, 중앙시사매거진, 2016/12/12
‘스컹크 냄새난다’ 기피하던 외국인들까지 사로잡고 20억, 조선닷컴, 2019/09/06
[넥스트K] 올리브유 대신할 'K기름'…뉴욕 미슐랭서 쓰는 참기름, 한국경제, 2020/09/04
미슐랭 셰프들도 반한 코리안 오일 참기름… 저온 압착 신제조법으로 프리미엄 참기름 개발해 18억 매출 <박적용 쿠엔즈버킷 대표>, 네이버 FARM판 공식 블로그 ‘더농부’, 2019/06/03
조미료가 아닌 천연 식품을 만드는 기름집 - 쿠엔즈버킷, 행복이 가득한 집, 20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