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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법의 정원 Dec 20. 2020

나는 왜 화가 나는 걸까?

     

내 목을 감싸는 작은 고사리손의 온기가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막내의 내음.

순간 마법에 풀려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그제야 집안 곳곳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건조기에서 꺼내놓은 빨랫더미들, 널브러져 있는 책, 내 눈엔 잡동사니로만 보이는 아이들의 장난감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들, 그리고 그곳에 두 아이들이 있었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눈에는 ‘또, 시작이군’이라는 한숨과 초월의 눈빛이 스쳐 지나간다.     

분명 아침에 나가면서 고정 레퍼토리처럼 빨래와 이것저것 정리를 부탁하고 나갔는데,

아침과 똑같은 상태의 어질러진 모습에 난 또 분노를 쏟아냈을 거다.

아니 조금만 더 태엽을 감아보니 현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나의 분노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현관 앞 신발들부터였다.

다섯 식구들 신발 하나씩만 해도 기본 10켤레는 깔고 간다.

대발인 아빠 신발은 누가 봐도 2인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운동화, 구두, 샌들, 축구화, 슬리퍼 등 종류별 신발처럼 내 마음도 무지개 조각보처럼

여러 가지 분노의 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미 섞이기 시작한 분노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광란의 질주가 시작됐다. 엄청난 소음과 굉음이 난무했다.

그 안에 나는 이미 없었다. 저주에 걸려 제정신이 아닌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막내의 고사리손 온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 살얼음 낀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을 거다.      

내 목을 감싸고 있던 막내는 천천히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작은 눈망울, 그리고 울먹이며 나지막이 입을 뗀다.   

  

“엄마, 엄마가 이렇게 화를 내면 내 마음속에 행복이 빠져나가서 슬퍼져”

    

행복이 빠져나간다는 아이의 말에 엉켜 있던 내 머릿속의 빨간 실이 다시 이어진 기분이 들었다.

아무런 말없이 그냥 막내를 꼭 껴안았다.

광란의 질주가 멈추고 평온한 도로 위 이제야 주위를 제대로 바라본다.    

 

도대체 난 왜 또 화를 내고 있었던 거지?

화가 나는 이유가 뭘까?

내 안의 화는 어디서 오는 걸까?      


처음엔 그저 내 컨디션 상태에 따른 감정의 기복이라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오는 피곤함과 고단함 거기에 한 달에 한 번씩 마법처럼 찾아오는 그 녀석들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주기를 계산해보고 마법이 시작되는 날 기준으로 일주일 전 정도가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는 날이 잦았음을

발견했다.

호르몬의 변화는 참 무섭다. 한 달에 한번 밖으로 나오는 호르몬은 내 분노까지 같이 내뱉었다.

내 몸 안에서 나오는 분노를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전파시키고 있었다.     

 

난 슈퍼 분노 전파 자였던 거다!     

 

그 전파력은 무시무시했다.

나의 홧덩어리들은 또 다른 홧덩어리를 만들어가며 우리 가족을 분노 바이러스 집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 속담에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윗사람이 먼저 바르게 행동해야 아랫사람도 본받아 잘한다는 뜻이다.     

우리 집은 그 반대의 속담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도 흐리다.     


슈퍼 분노 전파자의 파급력은 큰 아이에게, 큰 아이는 작은 아이에게, 작은 아이는 막내에게,

막내는 다시 큰 아이에게,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빙빙 돌고 있었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랬다. 내 모습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투영되어 있었다.

늘 짜증내고 욱하고 화내고 소리치고 다그치고 분노로 대폭발 하는 일상들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닮고 싶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부분을 가장 닮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을 보고 나는 뒷걸음칠 치며 유체 이탈하듯 내 모습에서 빠져나와 버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닌데?

어떻게 하면 다시 수습할 수 있을까?

뒤로 감기가 가능한 테이프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후회와 죄책감에 나는 몸서리쳤다.   


  

아이 셋. 분명 숫자적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육아다.

그리고 아이와 나의 나이는 거꾸로 가고 있다.

아이는 점점 몸과 마음이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그 반대로 점점 몸과 마음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버거움은 30대엔 젊음으로 정신을 지탱할 수 있었다.

40대 중반으로 접어드니 육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소모되는 아이들과의 관계가

더 이상 정신을 지탱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의 그릇된 행동들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고 나니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회복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시작은 항상 나부터였다.

그 시작점을 바꿔야 한다.

나부터 바로 서야겠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노의 궤도가 수정됐다. 분노가 표출되는 그곳에서 다시 바로 잡고 싶었다.


그곳은 바로 “나=내 안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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