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결코 불행해지지 않겠어
어떤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기억이 난다.
'세상을 물들이는 악은 언제나 불행한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행복한 사람은 남에게 결코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결국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인 셈이다. 세계 평화라는 거대 담론으로 나아갈 것도 없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 불행해지니 말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시기에 딸을 어떻게 대했는지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 바빠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불행했던 시절이 딸에게 가장 미안하다. 불행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변의 가장 약한 대상에게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자식이다. 그래서 불행한 엄마들이 자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힘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인숙의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중에서
책을 읽다 만난 이 문구가 너무나 공감이 되어 몇 자 적어 본다.
나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 생각의 씨앗이 어딘가로부터 주워들어 심어진 건지 아니면 스스로 살며 경험에서 터득된 건지 근원은 확실치 않으나 꽤나 오래전부터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물심양면으로 노력해 왔던 것 같다. 불행에 빠져 남들에게 민폐 끼치거나 심통 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나만의 멋진 이상형이 있었고, 그 모습에 조금이라도 가까워보려고 나는 부단히도 강박적으로 살아왔다.
악은 실로 불행한 이로부터 움터온다. 불행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식에게 정신적 학대를 가한다. 의도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나게도. 나는 엄마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보고 있다. 냉정하고 가차없는 딸인 나는 엄마에 대해 가혹하고 매몰찬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나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엄마 입장에서 부당하고 억울할지를. 하지만 지금보다도 더 시간이 지나고 지나 세상에 대한 내 관점과 태도가 한참 더 성숙하고 나서야 아마도 나는 엄마에게 너그러워질 것이다.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닌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철이 덜 들었다고 한다면 나는 깨끗이 인정하겠다.
© aaronburden, 출처 Unsplash
나는 아직도 사춘기 시절 다 떨쳐냈어야 할 질풍노도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작 그 시절에는 사춘기적 히스테리나 방황을 일도 표출할 형편도 사정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시절 내가 들끓는 성장통을 가감 없이 들어낸들 알아주거나 받아줄 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 시절 더 어른스러웠고, 모든 걸 이해했다. 아니 이해했다기보다는 포기했었다. 내 상황에서 그나마 최선인 것을 스스로 찾아 해낼 수밖에는 없었다. 달리 내게 무엇이 선택 가능했을까.
덕분에 나는 이후로 오랫동안 아주 잘 살아냈다. 순간순간마다는 죽는소리를 해대긴 했어도 마음속 진정한 빛을 잃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욕망의 불꽃을 활활 태우며 그런대로 꽤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살았다. 결코 내가 싫지 않았다. 남들은 20대가 어둠의 터널이었다고들 하던데, 나에게는 가장 찬란한 시절이었다. 30대가 되고 나서야 사는 게 한결 편안해졌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소외감이 느껴졌다. 내 인생은 30대부터 꺾인 셈이었다. 나 스스로는 그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갖은 합리화로 이것저것 가져다 붙여보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누구보다 내가 알고 있다. 20대 때 가 가장 좋았어.
© sametomorrow, 출처 Unsplash
육체적으로 정점이었기에 하는 소리가 아니다. 30대 때 가 차라리 나는 체력적으로나 외모적으로 정점이었다면 정점이었다. 20대 때는 오히려 아직 갈고 닦이지 않은 부족한 세련미와 앳돼 보이다 못해 애기애기한 외모, 말라깽이 병자 같은 빈약한 몸매와 체력으로 어딘가 2프로 부족했다. 지금에 와서도 차라리 마흔이 되어서야 나는 겉모습이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온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베이비 페이스라고 하나? 나이보다 유독 어려 보이거나 아기 같은 외모를 가진 그런 사람을? 우리 집안 유전인 듯하다. 우리 아들도 아기 시절 얼굴이 초등학교 되어서도 그대로인 것을 보고 깨달았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외모의 사람은 차라리 중년이 되고서야 육체적 성장이 완결에 이르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 혼란스런 영혼의 사춘기는 서른 다섯 쯤 부터 찾아왔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뒤늦게 말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다들 얼마간의 산후우울증과 심리적 격변을 겪는 법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특히나 뒤늦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나타났다는 게 참으로 애석하다. 주변 친구들은 출산 후 오히려 멀었던 엄마와 가까워지거나 그제서야 진짜 철이 드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은 충분히 이해했고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부모의 그늘이 도리어 드리워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일까? 세상에 대한 불만과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도 살면서 처음으로 진짜 느끼게 되었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갖지 않았던 내 재능이나 의지력에 대한 의심. 내 환경에 대한 비관. 차라리 정말 숨도 돌릴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초라한 현실 속에서는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아 깊게 들여다볼 수 없었던 처지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 뒤늦게 밀려들었다. 나는 여기까지 오는데도 그렇게나 허우적대며 힘들게 돌아돌아 왔건만, 누구는 그럴 필요가 없게 도착하기도 한다는 현실이 난생처음 힘들고 화가 난 것이다. 그동안 그런 비관적 생각을 해볼 여유도 없었던 건 너무도 절박한 상황 속에 있다 보니 내 뇌가 나를 진통 효과로 속여준 것이었다. 긍정적인 신념만이 나를 나락에서 구원해 줄 유일한 동아줄이었던 것이다.
내 기억에 엄마는 항상 불행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가족들의 드문 행복이나 즐거움에 초를 치거나 찬물을 끼얹는 훼방꾼이었다. 스스로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겠지만 스스로 불행함에 빠져있어 자신도 모르게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따금씩 스스로 엄마처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섬뜩할 때가 있다. 나는 당당하게 지금 내 사는 모습이 좋고 행복하다고 말을 못 하겠다. 그래서 가끔 못마땅한 내가 미워 불행의 강물에 허우적거리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역정을 내기도 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에게 돌아간다. 불행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그런 엄마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선언을 못하겠다.
나도 모르게 내 불행의 독기를 아이에게 내뿜고 있으면 어쩌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그래서 애쓰며 바둥거린다.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미친 듯 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몸부림도 쳐본다.
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임을 알기에. 내가 행복해져야 이 세상과 수많은 이들에게 온기를 전하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음을 알기에.
나는 반드시 행복해지련다.
반드시.
모든 일의 신비를 받아들여. 딱히 의미를 찾지 마. 당위를 요구하지 마. '왜 내가?'라고 묻지 마.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야. 우리는 뭐든 이해하려 하지만, 결코 이해하지 못해. 과거에도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해.
더글러스 케네디의 '빅 퀘스천' 중에서
© gabrielalenius, 출처 Unsplash